확대되고 있는 보이콧 재팬 이미지
일반인들의 적극적인 일본제 불매운동과 비교해 모터사이클 업계의 고민은 꽤 깊습니다. 국내 상황뿐만 아니라 글로벌 모터사이클 마켓에서 일본제의 브랜드의 강세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한 남성이 일제 수입 이륜차 불매운동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일본제를 선택해야 하는가? 사용하던 일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다면 일제 대신 미제나 유럽제를 대체하는 것은 옳은가? 하는 식의 논의가 최근 온오프라인 동호회의 뜨거운 감자로 회원들의 논쟁의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대체재로 국산 브랜드와 모델이 거론되지는 않습니다. 왜일까요?
우리가 모터사이클이라고 부르는 이륜차는 125cc 이하 원동기와 250cc 이상 대형 모터사이클로 나눕니다. 기본적으로 면허 체계상 1종 보통이나 2종 보통 운전면허 소지자가 별도의 면허 없이 운행할 수 있는 125cc 이하 원동기(2종 보통 자동 면허 소지자는 125cc 이하 스쿠터만 가능)는 진입장벽이 낮아 시민의 발이자 배달 요원들의 운송수단이 됩니다.
배달요원들의 활용도가 높은 125cc 이하 스쿠터
우리나라 모터사이클 시장은 연 10만 대 규모이며 이 중 125cc 이하 소형 모델의 비중이 90퍼센트 이상입니다. 이륜차의 대부분이 레저 목적이라기보다 일상생활에 가까운 소형 스쿠터나 오토바이로 치킨이나 자장면 혹은 화물을 실어 나르는 비즈니스용 이거나, 통근이나 통학을 위한 시티 커뮤터라는 이야기입니다.
대표적인 국내 이륜차 브랜드는 대림 오토바이와 KR모터스입니다. 과거 90년대 30만 대 시장까지 확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습니다. 하지만 내수 시장에 안주한 나머지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지 못했고 결국 오늘날에 이르게 됩니다.
대림 시티베스트115. 시티에이스 100과 달리 중국 하오주에서 생산되고 있다
두 브랜드 모두 대형 모델을 개발하며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리기는 했지만 아쉽게도 기술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해 자연스럽게 도태되었고, 그나마 잘 팔리던 소형 모델들도 R&D에 소홀해 현재는 이렇다 할 독자모델을 구축하지 못했습니다. 그마저도 최근에는 생산 기지를 중국으로 옮겨 완성차를 수입하거나 값싼 외산 모델을 들여와 판매하는 전략으로 연명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KR모터스 독자 기술로 개발된 V트윈 크루저 미라쥬 650
이런 상황에서 외산 브랜드의 강세가 지속되었습니다. 일본 브랜드는 높은 제품력과 다소 낮아진 가격으로 경쟁력을 갖추어 시장을 공략하고 있고, 중국산 제품은 값싼 가격으로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수를 띄워 시장을 잠식해가고 있습니다.
현재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을까요? 모터스포츠 기술을 경쟁하는 250cc 이상 대형 이륜차 시장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보다, 일상 친화적인 소형 이륜차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전략이라는 것을 가정한다면 아직 승산은 있습니다. 최근 125cc 이하 스쿠터 시장에서 전기 동력이 내연기관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새로운 전기 스쿠터 개발 및 보급에 그치지 않고 스마트 앱을 기반으로 공유경제 플랫폼을 접목시키는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이면서 성공한 사례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할리데이비슨 전기바이크 라이브와이어에는 삼성 SDI 배터리가 장착된다
전기 스쿠터 핵심 기술인 배터리나 모터는 국내 기업의 기술로 독자 개발이 가능한 이점이 있고, 과거 축적되어온 내연기관 제작 노하우와 견주는 것이 아닌 새로운 판에서 싸우는 것이기에 해볼 만합니다. 실제로 KR모터스는 지난 7월 현대케피코와 전동 이륜차 관련 통합 솔루션 개발 및 공급을 위한 MOU를 채결하기도 했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케피코는 현대·기아차의 파워트레인 제어기 및 친환경 자동차 제어기의 60% 이상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공급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전기 스포츠 바이크 브랜드 에네르지카. 본격적인 모터사이클 느낌이다
아직까지 전기 이륜차 시장에서 패권을 잡은 대형 브랜드가 없는 것도 기회 중 하나입니다. 이탈리아의 에네르지카 미국의 제로모터사이클 등 전기차 브랜드가 시장을 리드하는 형국으로, 모터사이클 전통 강자인 BMW나 할리데이비슨이 최근에야 전기 이륜차를 시장에 내놓았거나 생산 예정입니다.
배터리 교환식 네트워크로 미래 모빌리티 전략을 구축하고 있는 대만의 고고로
소형 시장은 더욱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배터리 교환식 네트워크를 구축해 도시 단위의 모빌리티 솔루션을 제공하는 대만의 고고로나 중국의 자본과 생산기지를 기반으로 세계 시장에 어필하고 있는 니우 정도의 브랜드가 전기 스쿠터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기존 내연기관에서 전기 동력으로 재빠르게 태세를 전환하고 있는 킴코 등이 눈길을 끕니다.
이 밖에도 다양한 국가와 브랜드에서 새로운 전기 스쿠터 브랜드와 신모델이 탄생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규모 면에서 대형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듯 보입니다. 위기를 기회 삼아 지금부터라도 전기 이륜차 시장에 공격적으로 대응할 때, 전기동력 시장에서 선점 우위를 차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민우 월간 모터바이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