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급법 의무조항 선급금 포기 각서까지 강요, 산재·치료비 원청 책임 ‘나 몰라라’... 공정위 조사 착수
또한 공정위는 B 사가 시공현장에서 하청업체 직원들이 다칠 경우 원청에서 처리해야 할 산업재해(산재)나 치료비 지급까지 거절하고 하청업체에게 떠넘겼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세종시에 위치한 공정거래위원회 전경. 사진=임준선 기자
원청 B 사의 하청업체를 20년 간 해왔다고 주장하는 A 사는 이러한 관행들을 감내할 수 없어 지난 5월 공정위에 원청을 하도급법 위반 혐의로 신고했고, 수십억원 대 민사소송까지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복수의 하청업체들에 따르면 B 사는 하청업체들에게 공사를 맡기면서 선급금 지급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하청업체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비용으로 공사를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정위 소관 법령인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은 원청이 하청업체에게 선급금을 지급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하도급법 6조 1항은 원청은 제조·수리·시공 또는 용역 등을 위탁할 때 하청업체가 업무를 시작할 수 있도록 15일 이내 선급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또한 같은 조 2항은 원청이 하청업체에게 선급금을 15일 이후에 지급할 때에는 그 초과기간에 대해 연 40% 이내에 연체 금리를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A 사가 공정위에 접수한 신고 내용에 따르면 B 사 담당자는 구두상으로 선급금을 지급하지 않는 대신 공사대금 정산 때 반영해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B 사는 현장 사정상 자금 부족 등을 이유로 선급금 등을 지급할 수 없다는 식이었다.
A 사 관계자는 “당사는 설립 이후 장기간 B 사와 거래해 왔다. B 사로부터 하청을 받았을 때 선급금을 받아 본 적이 별로 없었다. B 사는 당사에게 선급금 포기각서를 쓰게 하면서 이에 응하지 않으면 하도급 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고 강요한 적이 많다”며 “다수의 B 사 하청업체들도 하도급법에 명시된 선급금을 받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공정위는 A 사의 신고를 받은 후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하도급법에서 명시한 규정이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현재 이 사건을 조사 중이다. 다만 조사 내용에 대해선 밝힐 수 없다”며 “원청의 선급금 포기 강요는 하도급법에서 정한 명백한 불법 행위다”라고 말했다.
원청의 선급금 포기 강요가 적발될 경우 하도급법은 원청에게 하도급 대금의 2배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A 사 신고 내용에 따르면 B 사는 마땅히 부담해야 할 비용을 하청업체에게 떠넘겼다. 현행법상 원청의 공사 현장에서 하청업체 근로자가 다쳤을 경우 원청이 치료비 및 산재가 명백할 경우에는 산재 처리를 해줘야 한다. 그러나 B 사는 산재 사고 발생 사실을 은폐하도록 강요했고, 현장에서 다친 하청업체 근로자들에게 치료비까지 전가시켰다.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징수 등에 관한 법률’(보험료징수법)은 9조에서 건설업은 원수급인(원청)을 하청업체의 사업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보험료징수법은 원청 건설현장에서 하청업체 근로자가 다쳤다면 원청은 산재보험 가입자로서 일괄 적용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하도급법은 제3조의 4에서 원청이 하청업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거나 제한하는 계약조건(부당한 특약)을 설정해서는 안 된다고 의무화 했다. 산재 은폐 강요와 치료비 떠넘기가 이에 해당한다는 게 A 사의 주장이다.
A 사 관계자는 “하청업체 직원의 산재은폐 강요와 치료비 전가는 부당한 특약으로 볼 수밖에 없다. 지난해 B 사가 진행 중인 공사현장에서 무려 10명의 근로자가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보도돼 알고 있다”며 “B 사가 하청업체 근로자들의 부상을 전가하는 것은 입찰과 관련한 적격심사에서 벌점이나 입찰 제한을 받지 않기 위한 술수라고 본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B 사 관계자는 “공정위에서 하청업체 신고와 관련해 조사 중인 것은 맞다. 현재로서 당사는 공정위 조사에 성실히 임할 뿐 구체적인 입장을 밝힐 수 없다”며 “당사의 입장을 밝힐 경우 공정위가 조사 방해로 간주할 수 있다. 공정위 조사 결과와 조치가 나오면 그에 맞춰 대응하겠다”고 해명했다.
장익창 기자 sanbad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