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환경 변화로 ‘마르게, 더 마르게’ 추구는 계속…“내 가수는 내가 보호한다” 팬덤 덕에 스케줄 조정 이뤄지기도
걸그룹 오마이걸은 연이은 멤버들의 건강 이상으로 오는 9월 28~29일 예정됐던 단독콘서트 일정을 연기했다. 사진=박정훈 기자
최근 문제가 된 걸그룹은 오마이걸이었다. 멤버 가운데 지호가 지난 8월 31일 공연에 앞선 리허설에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급기야 병원으로 직행한 것이다. 분노한 팬덤은 곧바로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SNS로 “WM엔터테인먼트(오마이걸의 소속사)는 콘서트를 취소하라”며 단체 행동에 나섰다. 오마이걸은 9월 28~29일 단독 콘서트가 예정돼 있었다.
소속사의 주장대로라면 단순히 “감기몸살로 인한 컨디션 불량”이었을 뿐인데, 팬덤은 왜 분노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는 오마이걸의 무리한 스케줄로 쌓인 불만이 터진 탓이었다.
오마이걸의 경우는 데뷔 1년 후인 2016년부터 도약하기 시작하면서 이 시기를 기점으로 ‘살인적인 스케줄’이란 지적이 일기 시작했다. 이 시기 3월 미니 3집 컴백, 5월 미니 3집 리패키지 컴백, 8월 썸머 스페셜 싱글 등 2~3개월 텀을 두고 1년 간 세 번이나 활동을 재개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갑작스럽게 과다해진 스케줄에 멤버 승희가 과호흡증후군으로 실신하는가 하면, 비니 역시 건강이상을 호소했다. 진이의 경우는 활동 막바지에 거식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으며 2017년 결국 그룹을 탈퇴하게 됐다. 팬덤이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무리한 스케줄로 건강이상을 호소하는 걸그룹은 비단 오마이걸 뿐만이 아니다. 특히 지난해는 ‘걸그룹 수난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이아의 간판 역할을 했던 정채연은 지난해 10월 감기몸살과 급체 증상으로 행사에 불참했다. AOA의 설현 역시 과호흡 증상으로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아이즈원의 권은비도 갑작스런 컨디션 난조를 호소하며 팬사인회 행사에 불참해 팬들의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EXID의 멤버 솔지는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소속사의 과도한 스케줄을 비판한 바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갑상선기능항진증 진단을 받고 약 2년간 무대를 떠나 있어야 했던 EXID의 솔지는 대놓고 소속사의 무리한 스케줄 강행을 지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MBC 아이돌라디오에 출연한 그는 “복귀 당시 (소속사가) 처음엔 분명히 ‘스케줄시 잘 시간을 충분히 주겠다‘는 말을 해서 믿고 복귀를 했는데 복귀하고 나서 4시간씩만 자게 되고, 어떤 날은 1시간 밖에 못 잔 적도 있다”고 폭로했다. 아직 건강이 좋지 않은 멤버를 혹사시켰다는 팬덤의 성토가 이어졌으나 소속사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아 논란을 키우기도 했다.
걸그룹의 건강 적신호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2000년대 중후반부터 정상급 걸그룹까지 과도한 다이어트와 살인적인 스케줄로 대중들의 걱정어린 시선을 받아 왔다. 일부 언론매체에서는 직접 아이돌 멤버들을 대상으로 컨디션 관리 관련 의견을 취합하고 소속사를 성토하는 방송을 내보내 대중들에게 아이돌 산업의 어두운 측면을 알렸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예기획사 홍보팀장은 “소녀시대, 원더걸스 등으로 대표되는 걸그룹 2세대부터 강박적인 마름을 상품가치라는 이름으로 추구한 것은 사실이고, 보이그룹 보다 걸그룹에게 더 가혹한 것도 사실”이라며 “특히 컴백을 앞둔 상황이면 고체 음식을 거의 못 먹게 한다고 보면 된다. 멀건 스프 한 종지 먹고,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고 새벽부터 밤까지 행사를 뛰니 철인이라도 버틸 수 없는 것”이라고 짚었다.
AOA의 설현 역시 지난해 연말 무대 행사 중 과호흡을 호소해 팬들을 걱정시켰다. 사진=박정훈 기자
이와 관련한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자 일부 소속사에서는 “우리 멤버들에겐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게 한다”며 해명 아닌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관계자들 사이에선 “보여주기 용에 불과하다”는 냉소적인 시선이 오가고 있다. “당장 멤버들을 모니터링해서 볼살이 쪘네, 허벅지 사이에 틈이 사라졌네, 턱살이 접히네 조목조목 지적하는 게 소속사와 매니저들이 하는 일”이라는 게 그들의 이야기다.
이처럼 문제를 인지하면서도 현재로썬 어쩔 도리가 없다는 현실론도 존재한다. 또 다른 연예기획사의 아이돌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옛날처럼 지면용 카메라 사진이나 어느 정도 편집이 가능한 지상파 TV 카메라에만 찍히던 것과 달리 요즘은 실시간 송출과 피드백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조금이라도 살 찐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 잡히는 순간부터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제일 빠른 시간에 살을 뺄 수 있는 방법이 굶는 것이고, 굶은 상태로 무대를 뛰니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것”이라고 짚었다.
한편으로는 팬덤이 직접 가수의 보호에 나서면서 아이돌 산업의 내부 기류가 바뀌는 것이 긍정적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앞선 관계자는 “이전에는 큰 소속사에서도 ‘일단 굶기고 (무대를) 뛰게 해라’는 걸 철칙처럼 지켰었는데 요즘은 팬덤이 직접 사태 공론화에 나서거나 집단 보이콧 등의 단체 행동으로 소속사를 압박해 살인적인 일정을 수정하게 하는 등 성공적인 결과를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과도한 다이어트는 외부에서 실제로 확인하기 어려워 왈가왈부할 수 없기 때문에 고쳐나가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소속사가 최소한 ‘지금 굶기고 뛰게 하는 것’보다 ‘굶겼지만 적절하게 휴식을 취한 뒤 뛰게 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걸 팬덤의 단체 행동으로 학습하게 된 것은 긍정적인 변화”라고 덧붙였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