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겨냥 댄스 그룹 활동 저조+‘듣는 음악’ 다시 강세…‘서머 송’ 대중 기대감 줄어들어
‘빨간맛’으로 화제를 모았던 걸그룹 레드벨벳도 2019년 여름은 신통치 않았다. 사진=고성준 기자
#‘여름 그룹’과 ‘서머 송’의 실종
여름방학 및 바캉스 시즌과 맞물린 7∼8월에는 전통적으로 댄스 음악이 강했다. 그룹 쿨, 클론을 비롯해 걸그룹 씨스타, 트와이스, AOA, 레드벨벳 등이 여름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 시기 각 가요기획사들은 여름 시장을 겨냥한 시원한 느낌의 서머 송을 발표하며 ‘여름 특수’를 누리기 위해 노력했다. 휴가 시즌에는 전국 각지에서 관련 행사가 열리고 이 때는 당연히 서머 송으로 무장한 아이돌 가수들이 섭외 1순위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눈에 띄는 서머 송이 없다. ‘빨간 맛’ 등으로 화제를 모았던 걸그룹 레드벨벳이 최근 신곡 ‘음파음파’를 발표했지만 별다른 반향을 불러 일으키지 못했다. 26일 기준 ‘음파음파’는 24위에 머물러 있다. 두터운 팬덤을 자랑하는 보이그룹의 경우도 방탄소년단이 일찌감치 발표한 ‘작은 것들을 위한 시’(22위)가 유일하게 50위권 안에 들었다.
유력 아이돌 그룹이 여름 시장에 신보를 발표하지 않은 것도 음원 차트에서 아이돌 그룹이 보이지 않는 이유다. 방탄소년단 외에도 엑소, 아이콘, 위너, 갓세븐 등 내로라하는 보이그룹 등은 군입대를 비롯해 여러가지 이유로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걸그룹 중 가장 위력이 강한 트와이스 역시 9월말 컴백을 앞두고 여름 시장에서는 한 템포 쉬어갔다. 같은 소속사에 몸담고 있는 후배 걸그룹 있지가 새 앨범을 발표한 상황에서 굳이 ‘집안 싸움’을 벌이지 않겠다는 계산이라 볼 수 있다.
걸그룹 ITZY의 ‘ICY’가 그나마 2019년 ‘서머송’의 맥을 잇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여름 시장의 경제성도 예전만 못하다. 최근 국내·외 정세 뿐만 아니라 각종 경제 지표가 나빠지며 기업들은 행사 및 이벤트를 줄이고 있다. 결과적으로 휴가 시즌에 맞춰 가수들이 무대에 오를 기회도 줄었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나눠 먹을 파이의 크기가 줄고 있기 때문에 각 가요기획사 입장에서도 무리하게 여름 컴백을 추진하지 않은 것 같다”며 “요즘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사회적 분위기가 무거워 흥겨운 댄스곡을 선택하는 이들이 줄었다는 것도 여름 시장에 맞춘 기획 앨범 발표를 꺼리는 이유”라고 말했다.
#발라드의 역습, ‘듣는 음악’&‘부르는 음악’의 부활
음원차트에서 발라드가 강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올해 상반기부터였다. 장혜진과 바이브가 함께 부른 ‘술이 문제야’를 비롯해 송하예의 ‘니 소식’, 황인욱의 ‘포장마차’, 임재현의 ‘사랑에 연습이 있었다면’, 다비치의 ‘너에게 못했던 내 마지막 말은’ 등이 돌아가며 음원차트 1위를 기록하며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차트 상단에서 끌어내렸다.
여기에 여름의 시작과 함께 등장한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호텔 델루나’가 화룡점정을 찍었다. 배우 아이유, 여진구가 주연을 맡은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끌며 삽입된 OST 역시 엄청난 폭발력을 보였다. 8월 26일 기준으로 차트를 점령한 폴킴의 ‘안녕’(1위), 거미의 ‘기억해줘요 내 모든 날과 그때’(2위), 펀치의 ‘Done For Me’(4위), 태연의 ‘그대라는 시’(5위), 벤의 ‘내 목소리 들리니’(6위), 헤이즈의 ‘내 맘을 볼 수 있나요’(10위)가 모두 이 드라마의 OST다.
방탄소년단. 사진=일요신문DB
이는 대중이 음악을 즐기는 트렌드가 바뀌었다는 증거다. 음반의 시대에는 ‘듣는 음악’이 주류를 이뤘다. CD나 카세트테이프를 사서 듣고 또 들었다. 하지만 음원의 시대와 함께 아이돌 그룹들이 득세하면서 ‘보는 음악’이 대세로 자리매김했다. 그들의 화려한 퍼포먼스가 대중의 눈을 즐겁게 했고, 현란한 뮤직비디오가 함께 제작돼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다.
하지만 복고 바람과 함께 듣는 음악은 다시금 힘을 얻고 있다. 여기에는 달라진 노래방 문화가 단단히 한몫한다. 과거 노래방은 단체 회식의 상징과 같은 곳이었다. 원치 않는 술자리 후 상사와 합석해야 하는 노래방은 불편한 자리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코인노래방이 등장하고 ‘혼코노’(‘혼자서 코인 노래방’의 준말)가 새로운 놀이 문화로 등장하며 대중은 ‘부르는 음악’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평소 이어폰으로 즐겨 듣던 노래를 코인 노래방에 홀로 혹은 마음에 맞는 친구 1∼2명과 가서 마음껏 부르는 문화가 움튼 셈이다.
20대 직장인 이수빈 씨는 “회사 상사들과 노래방에 가면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억지로 트로트를 부르거나 댄스곡을 선택해 흥을 돋워야 했다”며 “하지만 코인노래방에서는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를 마음껏 부른다. 발라드만 불러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음악을 찾아 들을 때도 내가 노래방에서 도전해볼 수 있는 곡 위주로 선곡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발라드의 인기를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그 배경에는 발라드 가수들의 남다른 홍보법이 있다. 그들은 굳이 아이돌 가수의 팬들이 득실대는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을 찾지 않는다. 과거 ‘별이 빛나는 밤에’와 같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발라드가 알려졌듯, SNS 상에서 수많은 팔로어를 거느린 발라드 전문 음악 채널을 먼저 찾는다. 이곳에서는 기존 발라드 외에도 괜찮은 신곡을 자주 소개한다. 몇몇 유명 채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새로 나온 발라드를 알리고 ‘노래가 좋다’는 입소문이 돌면 실제로 음원사이트 차트 순위가 급상승한다.
또 다른 가요계 관계자는 “대중이 노래를 찾고 즐기는 방식 자체가 달라진 것”이라며 “판에 박힌 듯 비슷한 아이돌 그룹과 차별성이 없는 노래를 잇따라 발표한 것이 아이돌 가수들의 음악을 외면하게 된 이유”라고 분석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