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대교체한 새 총수들, 회장직 물려받기 전부터 상속세에 관심 쏠린 이유
올해 세대교체가 공식화 된 대기업은 LG그룹, 두산그룹, 한진그룹 등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19년 자산 5조 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결과 발표’를 통해 이들 그룹의 동일인을 변경했다. 동일인이란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그룹 총수를 의미한다.
올해 변경된 새 총수들은 그룹 회장직을 물려받기 전부터 상속세로 관심을 받았다. 지난해 새 총수로 지정되며 세대교체의 신호탄을 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 회장과 달리, 이번에 회장에 오른 총수들은 공통적으로 선대 회장의 별세 등으로 변경된 만큼 지분 승계까지 곧바로 이뤄져야해서다.
현행법상 상속세율은 상속액이 30억 원을 초과하면 50%로 책정된다. 최대주주 주식을 상속받으면 추가로 일명 ‘경영권 프리미엄’이 얹어지는데, 시가의 20~30%를 할증한다. 기존 상속세율에 할증까지 포함하면 상속세율은 최대 65%까지 늘어난다. 새 총수들이 물려받는 지분 규모와 재산 등을 감안하면 상속세 규모가 천문학적인 수준에 달하는 만큼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 거세진 세대교체 바람, 깊어진 상속세 고민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공정위가 지난 1987년 총수 지정을 시작한 이후 33년 만에 처음으로 지정한 4세 총수다. 지난해 5월 고(故) 구본무 회장이 타계한 이후 지주사인 ㈜LG의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구 회장은 오랫동안 승계를 준비해온 만큼 지주사 지분을 꾸준히 늘려왔다. 기존 보유 지분 6.2%에 고 구본무 회장으로부터 지분 8.8%(1512만 2169주)을 물려받으면서 최대주주에 올랐다.
구 회장과 다른 상속인들은 9000억여 원의 상속세를 부담해야한다. 현재까지 국내 최대 규모다. 이 가운데 구 회장 본인이 내야하는 상속세는 7161억 원이다. 전체 상속세를 연부연납제도를 통해 5년 동안 나눠 납부하기로 했다. 지난해 말 그룹 자회사 판토스 지분을 매각 등을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상속세 1차분 1536억 원을 냈다. 나머지는 주식담보대출 등을 받아 납부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두산그룹도 지난 3월 별세한 박용곤 명예회장에 이어 박정원 회장을 새 총수로 교체했다. 박 회장은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박두병 창업 회장의 맏손자다. 박두병 회장의 부친인 박승직 창업주부터 따지면 역시 4세대 총수다.
두산그룹은 지난 7월 말 박용곤 명예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보통 주식 28만 9165주와 종류주식 1만 2543주를 박정원 회장과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 박혜원 두산매거진 부회장 등 자녀들에게 상속됐다고 밝혔다. 박정원 두산 회장에게는 보통주 14만 4583주와 종류주 6272주를, 박지원 두산 부회장에게는 보통주 9만 6388주, 종류주 4181주, 박혜원 두산매거진 부회장에게는 보통주 4만 8194주와 종류주 2090주가 상속됐다.
다만 상속 이후에도 개인별 지분율 상승폭이 작다. 박정원 회장 등 오너일가가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두산 지분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상속세를 마련해서다. 박 회장과 박지원 부회장, 박혜원 부회장은 각각 지분 13만 170주, 8만 6780주, 4만 3390주를 시간 외 매매로 처분했다. 이들이 처분한 주식 수는 총 26만 340주로, 박용곤 명예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28만 9165주와 큰 차이가 없다. 재계 관계자는 “두산 오너 일가는 지주사 지분을 고르게 나눠 갖고 있었는데, 이번 지분 처분으로 상속 이후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게 됐다”고 말했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갑작스레 지난 4월 조양호 전 회장이 별세한 한진그룹 오너일가는 고민이 깊다. 상속세 신고 기한은 오는 10월까지로 아직 시간이 남아 있어 구체적인 상속 규모나 방식은 확정되지 않았다. 다만 새 총수에 오른 조원태 회장이 고 조양호 전 회장이 보유한 한진칼 지분 (17.84%, 약 4000억 원 평가)을 물려받으려면 세율 50%로 단순 계산해도 상속세가 약 2000억 원에 이른다.
한진 오너일가는 LG, 두산 총수들과 달리 지분 매각이 쉽지 않다. 조 회장이 보유한 한진칼 지분은 2.34%다. 올해 초부터 오너 일가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KCGI가 한진칼 지분을 꾸준히 늘리면서 현재 15.98%를 보유하고 있다. 상속세 마련을 위해 주식을 섣불리 매각하면 자칫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다. 다만 업계에선 조 회장 등 오너 일가가 상속세 재원 마련 자체는 가능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상속세 연부연납 제도를 활용하고 그룹 지배구조에 영향이 없는 지분 매각, 보유 및 상속지분의 담보대출, 개인 보유 부동산 처분 등이 거론된다.
삼성과 현대차, 롯데그룹 등은 잠재적인 상속세 부담을 안고 있다. 특히 삼성과 현대차가 납부할 상속세는 조 단위다. 삼성은 현재 순환출자는 모두 해소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과 모친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등을 물려받으려면 약 8~9조 원대의 상속세를 납부해야 한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 현대모비스 지분을 그대로 상속하면 상속세는 약 2조 원 대로 추정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현대차는 순환출자 고리 해소 작업 중이다. 지배구조 개편 방향이 정해지는 게 먼저다”라고 말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 다시 고개드는 해묵은 상속세 부과 방식 논란
재계 세대교체와 상속이 맞물리면서 상속세 부과 방식에 대한 해묵은 지적도 최근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과도한 상속세가 기업 성장을 위축시키고, 편법 증여 등 부작용도 심각하다는 주장이다. 실제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프랑스(60%), 일본(55%)에 이어 3위다. ‘경영권 프리미엄’인 최대주주 상속세율 할증까지 더하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지분을 물려받기 위해 지분을 팔아야하는 상황”이라며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3대째 이후엔 상속세 부담을 위해 기업을 고스란히 시장에 내놔야 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고 지적했다.
반면 상속세를 완화하면 ‘부의 대물림’을 용이하게 해줄 뿐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상속세율이 높아도 각종 공제 혜택으로 인해 실효세율은 28.6%로 낮은 수준”이라며 “상속세 공제 수준을 축소하고 가업 상속 공제는 비상장기업이나 중소기업으로 좁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상속세 관련 의견을 수렴해 최근 2019년 세법개정안을 확정하고 최근 국회로 넘겼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내년부터 국내 기업 최대주주들은 상속, 증여세 부담을 일부 덜게 된다. 자산규모 5000억 원을 넘지 않는 중소기업은 상속세 할증세가 사라지고, 대기업은 최대주주 지분율에 관계없이 할증률이 20%로 단일화된다. 상속, 증여세 실질 최고세율이 낮아지는 건 1993년 최대주주 할증 제도 도입 이후 처음이다.
다만 재계에선 최대주주 지분율이 50%이상이어야 할증률이 낮아지는데, 현재 이러한 기업은 거의 없는 만큼 근본적으로 상속세율을 손봐야하는 입장이다. 반대로 시민단체 등은 추가 혜택을 더 준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어 국회 논의 과정에서 갈등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