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팽한 입장차 장기화 조짐…미국GM 파업도 변수로 등장
인천 부평 한국GM 1공장과 2공장 생산 라인과 한국GM 창원공장 차체 조립 라인이 일제히 멈췄다. 회사 공장이 멈춰선 건 1997년 대우자동차 시절 이후 22년 만이고, 2002년 제너럴모터스(GM)가 회사를 인수한 이후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군산공장 폐쇄와 GM본사-산업은행의 회생 합의 직후부터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갈등이 절정에 달한 모양새다.
글로벌 GM이 지난 5월 31일 폐쇄 결정한 한국GM 군산공장. 연합뉴스
노조는 지난 9월 9일부터 11일까지 사흘간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노조 집행부는 파업 첫날 오전 6시부터 조합원들의 공장 출입을 전면 금지했는데, 출근을 원천 차단하는 파업은 자동차 업계에서도 이례적이었다. 노조는 추석연휴 기간에도 특근을 거부했고, 오는 18일엔 쟁의대책위원회를 열고 파업 연장 여부와 투쟁 수위를 논의하기로 했다.
노조의 전면파업은 통상 최후의 수단으로 통한다. 한국 GM 노사는 현재 임금협상을 둘러싸고 평행선을 달린다. 노조는 올해 임금협상에서 기본급 12만 3526원(기본급의 5.65%) 인상, 성과급·격려금 1인당 약 1650만 원 지급 등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임금을 동결하고 매년 받아오던 1000만 원 규모의 성과급도 포기했던 만큼 올해는 반드시 보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국GM 노조를 보는 업계 시각은 곱지 않다. 사실상 중환자실에 누워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와중에 무리한 임금인상을 요구하면서 전면파업이라는 강경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지적이다. 현재 회사 측은 이번 사흘간의 파업과 지난 8월 중순부터 진행된 부분 파업, 잔업 및 특근 거부 등으로만 계산해도 총 1만 대의 생산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노조 측 관계자들은 파업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내놨다. 불가피하다는 입장이 나오는가 하면, 현재 회사 사정과 자동차 업황을 감안하면 과한 측면이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다만 한 가지,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는 이견이 없었다. 한국GM의 한 노조 관계자는 “외부에는 ‘돈 문제’로만 알려졌지만 사실 노조 요구의 핵심은 미래에 대한 약속”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노조는 임금 관련 교섭안 외에 ‘장기 발전전망 관련 특별요구’안을 회사 쪽에 제시했다. 본사로부터 인천 부평 2공장 폐쇄 불가 약속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산업은행으로부터 지난해 대규모 공적자금을 받았으면서도 2022년 이후 부평2공장 생산 물량 배정에 대해 확답이 나오지 않고 있어서다.
다른 노조 관계자는 “회사는 해외에서 수입해 판매하는 차량의 비중을 점차 늘릴 방침”이라며 “반면 국내 생산 물량을 보장한다는 등의 중장기 투자, 생산 계획은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회사의 이러한 대응은 생산 감소에 따른 공장폐쇄 및 정리해고뿐만 아니라 GM의 한국 시장 철수 논란에도 불을 지피는 것이라 강경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사측은 경영 정상화가 우선이라며 맞선다. 여기에 추가 협상안도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GM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누적 적자는 4조 4000억 원이다. GM의 한국 철수까지 거론되는 벼랑 끝 협상 끝에 약 8조 원(GM본사 7조 원 신규투자 약속+산업은행 공적자금 8100억 원)을 수혈 받고 올해 경영 정상화에 나섰지만, 올해 상반기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줄어드는 등 실적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4월 임금 및 단체협약 합의문을 앞세운다. 한국GM 관계자는 “당시 합의문에는 ‘앞으로 임금 인상은 회사 수익성 회복에 따라 결정된다’ ‘성과급도 원칙적으로 회사의 수익성 회복을 기초로 한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며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 노조의 요구에 대해 새롭게 제시할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 설명했다. 중장기 계획을 밝히라는 요구에 대해서도 “미래의 일을 당장 약속할 순 없다”며 “1공장과 2공장에 신차 배정 및 생산 이전을 최근 결정했다. 그 이후의 물량을 지금 확실하게 답하는 건 어렵다”고 덧붙였다.
노사 갈등은 당분간 해결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로선 양측 입장차가 좁혀질 가능성이 희박해서다. 여기에 자동차 업계는 한국GM 노조가 오는 11월 예정된 차기 노조 집행부 선거를 앞두고 임금협상 교섭을 중단할 것으로 전망한다. 새로운 집행부가 출범하고 본격적인 교섭을 하려면 내년 초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경우에 따라 지금보다 요구사항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파업이 길어질 것으로 관측되면서 ‘후폭풍’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당장 수면 위로 떠오른 건 ‘트랙스’ 문제다. 트랙스는 3년 연속 국내 완성차 수출 1위를 기록 중이다. 내수 판매는 1만여 대지만, 수출은 24만여 대에 달한다. 지난해 GM과 산업은행의 합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GM의 7조 원 투자와는 별도로 5000만 달러를 신규 투자 받아 부평 2공장에서 트랙스를 생산 중이다.
그런데 트랙스는 멕시코 공장에서도 생산된다. 한국에서 파업으로 제대로 생산하지 못하면 GM이 생산 기지를 옮길 가능성도 관측된다. 이 경우 한국 공장 폐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한국GM 노조 파업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도 이 부분을 우려했다. 트랙스의 생산 ‘물량’은 지난해 합의 과정에서 논의한 게 아니라 GM이 별도로 가져온 것이기 때문에, 멕시코로 옮겨도 산업은행 입장에서 회사에 할 수 있는 얘기가 없다는 취지다. 이 회장은 “물량 배정을 못 받으면 영향이 적지 않아 노조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GM 노조가 16일부터 12년 만에 전면파업에 돌입한 점도 변수다. 겉으로 보기엔 한국GM 노조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이지만, 반대의 결과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자동차 업계 설명이다. 미국 노조는 이번 파업에서 임금인상이 아닌 ‘고용 안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공장 폐쇄와 정리해고를 막고 고용불안 해소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한국GM 노조의 파업이 장기화돼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 물량을 빼앗길 가능성이 거론된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