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vs 청와대’ 구도 형성, ‘조국 보완재’ 기대 무너져…문 대통령의 찍어내기 등 4대 불가론 회자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응답하라, 윤석열.” 10월 정국은 윤 총장의 문재인 대통령 독대 요청을 둘러싼 진실 공방이 열었다. 문 대통령이 9월 30일 법무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윤 총장을 콕 집어 “검찰 개혁안을 만들라”고 지시한 지 하루 만에 여권 내부에서 분출했다. 여권 복수 관계자에 따르면 윤 총장은 문 대통령이 동남아 3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9월 6일 이후 ‘문 대통령과 독대를 하고 싶다’고 청와대에 요청했다. 여권 한 관계자는 “윤 총장이 독대 이유를 말하지는 않았지만, 수차례 요청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 총장 요청은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는 조국 정국 시즌1이 정점을 향해 치닫던 시점이었다. 야권이 ‘기·승·전·조국 사퇴’를 외치는 상황에서 대통령과 검찰총장 독대가 정치적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청와대 매파(강경파)가 ‘윤석열 패싱’을 일삼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 대통령과의 독대가 무산된 윤 총장은 이후 김조원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조국 임명 시 사퇴’ 카드를 들이밀었다. 윤 총장이 사퇴 카드를 앞세워 청와대를 압박한 것이 문 대통령 역린을 건드렸다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9월 8일을 기점으로 문 대통령이 조국 임명으로 급선회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특히 문 대통령은 조국 정국 시즌1 기간 ‘충정을 의심하지 않는다’라는 입장을 윤 총장에게 간접적으로 전달했다고 한다. 윤 총장 역시 문 대통령의 제74차 유엔총회 참석 기간(9월 22∼26일) 조국 장관 관련 수사와 관련해 속도 조절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윤 총장이 이끄는 검찰은 9월 23일 돌연 조 장관 자택을 11시간에 걸쳐 압수수색을 했다. 문 대통령은 이 소식을 듣고 격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9월 30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부터 윤 총장이 ‘조국 임명 시 사퇴 의사를 청와대에 전달했느냐’라는 질문을 받고 “확인해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민주당 한 의원은 “윤 총장이 조국 내정 단계에서부터 ‘불가론’을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대검찰청 관계자는 “사실무근”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후 대검은 특수부 폐지(서울중앙지검 등 3곳 제외) 등 자체 개혁안을 제시했지만, 친문(친문재인)계 한 인사는 “동반자에서 배신자로 전락한 것”이라고 사퇴론에 힘을 실었다.
윤석열 대망론의 기승전결은 이렇다. 문 대통령의 강력한 신임을 받은 윤 총장이 조 장관과 검찰 개혁을 이끈다. 윤 총장은 안대희 전 대법관을 능가하는 ‘국민 검사’ 칭호를 받는다. 민주당 일부 의원은 윤 총장 띄우기에 나선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던 윤 총장이 헌법 제1조를 앞세워 ‘국민께 충성’을 다짐하고 총·대선에 출격한다. 앞서 윤 총장은 7월 25일 취임사에서 ‘국민’이란 단어만 24번 언급했다. 포스트 문재인에 허덕이는 친문계도 윤석열 카드를 놓고 고심에 들어간다.
다만 윤석열 대망론은 애초부터 ‘조국 보완재’라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검찰 개혁의 쌍두마차인 이들 중 여론의 지지를 더 많이 받은 자가 친문계의 최종 선택을 받는 시나리오다. 검찰 개혁에 대한 열망이 커지면 커질수록 석·국 열차에 대한 정치적 수요도 증가하는 보완재 역할이다. 석·국 열차 조합은 한쪽이 올라가면 다른 한쪽은 내려가는 시소게임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조국 대전에서 문 대통령을 비롯한 친문계는 ‘조국이냐, 아니냐’의 양자택일을 강요받았다. 보완재 시너지 효과는커녕 ‘청와대 vs 검찰’의 전례 없는 전면전이 시작된 셈이다. 윤 총장 사퇴 카드를 인사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 문 대통령은 결국 조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문 대통령은 윤 총장의 사퇴 카드 압박 이후인 9월 27일과 30일 두 차례에 걸쳐 검찰을 직격했다. 특히 30일에는 윤 총장을 직접 지칭, “자체 개혁안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윤 총장이 총대를 메고 조 장관이 총지휘하는 검찰 개혁은 한낱 몽상으로 끝났다. 이들은 한 명이 죽어야만 사는 천적 관계로 돌변했다.
윤석열 4대 불가론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4대 불가론의 핵심은 △문 대통령의 윤석열 찍어내기 △조 장관에게 밀리는 인물 경쟁력 △야당과 필연적으로 묶이는 구도 △검찰 개혁 무산 가능성 등이다.
우선 문 대통령과 윤 총장 관계다. 조 장관에 대한 검찰의 먼지털기식 수사를 ‘정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경고 발언 전후로 최후 카드인 ‘윤석열 해임’을 만지작거렸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와 관련, “예스냐, 노냐 대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안민석 민주당 의원 등은 공개적으로 “윤 총장 낙마가 우려되는 상황으로 상황이 반전되고 있다”며 윤석열 해임 공론화에 불을 지폈다. 정치적 역풍이 만만치 않아 일종의 ‘압박용 카드’에 그칠 것으로 보이지만, 윤 총장에 대한 당·청의 불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건 전 국무총리의 관계를 보라”고 귀띔했다. 17대 대선을 1년여 앞둔 2006년 12월 재임 중이던 노 전 대통령은 고 전 총리를 직접 언급하며 “실패한 인사였다”며 일갈했다. 여권 일부 인사들이 친노(친노무현)계와 열린우리당을 버리고 ‘고건 대망론’과 ‘대통합민주신당’ 띄우기에 나서자, 노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제동을 건 것이다. 당시 차기 대권주자 지지도 1위를 달리던 고 전 총리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은 자기 부정”이라며 반발했지만, 결국 대선 출마를 포기했다. 적어도 대통령이 특정 후보를 주저앉힐 수 있다는 점이 증명된 셈이다.
인물 구도에서도 열세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조 장관은 오랫동안 진보진영 아이콘이었다. 서울대(법대) 운동권 출신으로 참여연대를 비롯해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 대법원 양형전문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며 진보 지식인으로 불렸다. 지지층은 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발언에 열광했다. 이명박(MB) 정부 말기 때도 진보진영 일각에선 ‘조국 대통령 만들기’ 움직임이 있었다. 조 장관은 18∼19대 대선 때 출마 대신 문 대통령을 공개 지지했다. 그는 현 정부 들어 청와대 초대 민정수석 등을 꿰차며 황태자로 군림했다. 지금은 문 대통령과 운명 공동체로 묶여있다.
게다가 그는 부산 출신이다. 여권 대선 승리 방정식인 ‘영남 필승론’에도 가장 가깝다. 10월 1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9월 23∼27일 오마이뉴스 의뢰로 전국 성인 남녀 2506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0%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조 장관은 13.0%로, 이낙연 국무총리(20.2%)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19.9%)를 바짝 추격했다. 반면 윤 총장은 국민 검증조차 시작하지 않았다. 서울 출신인 그가 지역 구도에서 우위를 보일만 한 곳도 마땅치 않다.
구도 역시 마찬가지다. 윤 총장의 경우 정치권 입문을 하더라도 야권 세력과 묶일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문재인+조국’ vs ‘야권+윤석열’ 구도로 재편된다. 윤석열 대망론 기저에는 친문계의 전폭적 지지가 깔렸다. 윤 총장이 여권의 역적으로 몰린 상황에선 정치권 입문 자체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를 비롯해 친박(친박근혜)계와 안철수·유승민 신당 세력 등이 윤 총장을 중심으로 옹립지대를 형성할지도 미지수다. 조국 대전이 장기화되거나, ‘윤석열·조국’ 동반 사퇴설이 현실화하면, 검찰 개혁은 물 건너간다. 석·국 열차가 검·경 수사권 조정을 놓고 극적인 딜에 성공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윤 총장이 진보진영에 편입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며 “총·대선에 나설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