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활약에도 팀 성적 저조…권창훈·정우영은 팀이 너무 잘나가 결장 이어져
올 시즌 무르익은 기량을 뽐내고 있는 손흥민과 달리 소속팀 토트넘은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개인 활약에도 팀이 부진해 웃지 못하는 손흥민과 이재성
지난 시즌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레드카드를 받아 2019-2020시즌 초반 뜻하지 않은 휴식을 취한 손흥민이 돌아오기가 무섭게 가벼운 몸놀림을 선보였다. 1992년생, 만 27세로 전성기에 접어든 그는 올 시즌에도 한 단계 발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존의 폭발적 스피드, 날카로운 슈팅력에 더해 패스에 눈을 뜨며 경기 지배력을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손흥민이 개인의 발전은 이뤘을지언정 팀으로선 웃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토트넘이 지난 시즌 거둔 역대 최고의 성공이 무색할 정도로 좋지 않은 경기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리그 3라운드 뉴캐슬전(8월 25일)에서 패하며 삐걱거리기 시작한 토트넘은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리그컵 대회에서 4부리그 소속 콜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승부차기 끝에 패하더니 챔피언스리그에선 2-7이라는 기록적인 대패를 당했다. 이어진 리그 일정에서는 하위권 브라이튼에게 0-3으로 덜미를 잡혔다.
손흥민은 개인적으로 9경기에서 3골 3도움의 좋은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지난 시즌 한때 우승경쟁까지 했던 토트넘은 9위로 처졌다. 부진 원인에 대한 뾰족한 분석이 나오지 않는 가운데 선수단 동기부여 상실이라는 짐작만이 오가고 있다.
무대는 다르지만 이재성도 손흥민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 지난 시즌 이재성은 자신의 유럽 데뷔 무대로 분데스리가2의 홀슈타인 킬을 택했다. 비록 2부리그이지만 1부리그 승격이 유력한 구단으로 이적해 부푼 꿈을 안고 출발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이재성이 선전했지만 킬은 6위에 그치며 승격에 실패했다. 2019-2020시즌을 기약하던 중에는 팀 상황이 급변했다. 킬을 이끌던 팀 발터 감독이 새 시즌을 앞두고 슈투트가르트로 적을 옮긴 것이다.
경력은 길지 않았지만 지도력만큼은 좋은 평가를 받던 발터 감독이 팀을 떠나자 킬은 다른 팀이 됐다. 승격 경쟁을 하던 리그 강팀에서 강등을 걱정하는 처지로 떨어졌다. 9라운드를 치른 현재 리그 16위로 처진 상태다.
이재성만큼은 지난 시즌처럼 팀의 에이스로 활약 중이다. 오히려 팀 내 비중이 커졌다. 현재까지 9경기에 나서 4골을 넣으며 팀 내 최다 경기 출장자, 최고 득점자 자리를 동시에 지키고 있다.
이처럼 팀이 부진한 반면 선수 개인은 좋은 활약을 펼치자 손흥민과 이재성 모두 ‘다음 시즌 다른 유니폼을 입고 뛰는 것 아니냐’는 예측들이 이어지고 있다. 손흥민의 전담 에이전트 티스 블리마이스터는 유럽의 한 라디오 방송에서 손흥민의 나폴리 이적설에 대해 이야기하며 “축구에서 ‘절대 안 된다’는 말은 할 수 없다”고 전했다. 손흥민의 유럽무대 진출부터 깊은 인연을 이어온 인물이기에 ‘실제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얘기가 뒤따르고 있다.
이재성 또한 이적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팀이 부진한 가운데 홀로 팀을 이끄는 듯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만약 팀이 3부리그로 강등된다면 이적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1부리그 이적도 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기대를 모으며 프라이부르크로 이적한 정우영은 1군 경기에 나서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구단이 전한 생일축하 인사. 사진=프라이부르크 트위터
손흥민과 이재성이 부진한 팀에서 고군분투하는 반면 올 시즌 분데스리가 프라이부르크에서 한솥밥을 먹게 된 권창훈과 정우영은 오히려 팀이 예상보다 ‘잘나가서’ 울상이다. 지난 2018-2019 시즌 하위권에서 허덕였던 것과 달리 프라이부르크는 7라운드를 치른 현재 5위에 오르며 선전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유럽대항전(유로파리그) 출전도 가능한 상황이다.
반면 권창훈과 정우영은 좀처럼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시즌 전 큰 기대를 받으며 영입된 한국인 듀오다. 정우영의 이적료는 405만 유로(약 54억 원), 권창훈은 270만 유로(약 36억 원)로 알려졌다. 바이에른 뮌헨과 같은 슈퍼팀이 아닌 프라이부르크로선 큰 투자였다.
시즌을 앞두고 이들은 나란히 부상을 입는 불운을 겪었다. 큰 부상은 아니었기에 곧 분데스리가 경기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권창훈은 교체 투입 이후 골을 기록한 데뷔전 외에 1경기에만 더 나섰고, 정우영은 아직까지 분데스리가 1군 경기에 데뷔하지 못했다. 좀처럼 경기장에서 얼굴을 보기 힘든 상황이다. 이는 프라이부르크의 예상을 뛰어넘는 선전 때문이라는 분석이 뒤따르고 있다.
프라이부르크는 2000년대 중반 2부리그에서 4시즌을 보냈고 승격 이후에도 주로 10위 언저리를 오간 ‘중소’ 클럽이다. 하지만 올 시즌 초반 7경기에서 4승 2무 1패의 호성적을 거두고 있다. 1년 전 같은 기간 2승 2무 3패를 기록한 것과 비교해 올 시즌 승점을 6점 더 따냈다.
권창훈과 정우영의 기량만큼은 팀 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감독으로선 현재 좋은 모습을 보이는 스쿼드에 굳이 손을 댈 필요가 없다. 득점과 실점 순위 모두 공동 3위에 올라 있을 정도로 팀의 공수 밸런스가 좋은 상황이다. 상위권 성적을 내고 있는 선발 라인업에 믿음을 주고 있는 것이다.
#데뷔 시즌에 팀에 안착한 ‘모범사례’ 황의조
팀과 개인의 활약이 균형을 갖춘 사례로는 보르도의 황의조가 꼽힌다. 커리어 최초로 유럽 무대에 진출한 황의조는 곧장 팀 주축으로 자리 잡으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내고 있다. 팀이 치른 9경기 중 8경기에 나서 2골을 기록했다. 별도의 적응기간 없이 팀에 녹아들었다.
커리어 최초로 유럽무대에 진출한 황의조가 보르도의 주축으로 자리 잡으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내고 있다. 사진=지롱댕 보르도 트위터
보르도 구단도 14위로 부진했던 지난 시즌의 나쁜 기억을 뒤로하고 순항하고 있다. 4승 3무 2패로 파리생제르망, 낭트, 앙제에 이어 리그 4위에 올랐다. 현재 순위를 지킨다면 지난 2015-2016시즌 이후 4년 만에 유로파리그에 진출하게 된다.
보르도는 이번 시즌 15골을 넣고 10골을 내주며 탄탄한 수비보다는 공격으로 승부를 내는 팀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무실점을 기록한 경기는 단 2회뿐이다. 팀 내 압도적 골 수치를 기록한 선수 없이 다수가 골을 나누고 있다는 점 또한 황의조에겐 긍정적이다. 8경기 2골은 공격수로서 부족한 기록이라는 평가가 내려질 수 있지만 팀 내 최다득점자와 겨우 1골 차이일 뿐이다.
1970년대 차범근 전 감독의 분데스리가 진출 이후 한국 선수들의 유럽 리그 생활은 매 순간이 도전이었다. 박지성 이영표 등 2002 월드컵 세대부터 최근 이강인에 이르기까지 ‘유럽리거’라는 타이틀이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아직 리그 일정의 20% 내외만을 치렀을 뿐이다. 시즌이 끝날 때 선수들이 어떤 결과물을 얻게 될지 팬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