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등급 불구 합격’ 내부 문건에 고스란히…김성태 실형 받아도 구속 여부 ‘선고 시점’에 좌우
뇌물을 준 사람(이석채 전 회장)이 실형 선고와 함께 구속되면서 자연스레 나오는 관측은 뇌물을 받은 사람(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도 유죄가 나올 경우 실형을 받아야 하지 않느냐는 것. 통상적으로 뇌물 받은 사람이 더 엄한 처벌을 받는 터라 ‘구속’이 당연하지 않겠느냐는 추론이다. 하지만 판사들의 관측은 ‘선고 시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얘기한다. 현역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국회 회기 중일 때에는 실형을 선고해도 구속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딸의 부정채용 청탁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9월 27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이석채 판결문 속 김성태 딸 ‘챙기기’
KT는 성적이 낮은 지원자의 등수와 등급·전망 등을 임원에게 보고했고 면접 점수 조작 등을 통해 합격을 만들어냈다. 이 과정은 이석채 전 회장의 1심 판결문에 상세하게 담겼다.
김성태 의원의 딸 케이스만 풀어보자. 서유열 전 KT 사장의 진술 등을 종합할 때 법원이 ‘청탁’이 있었다고 본 시점은 2012년 10월 즈음이다. 이 전 회장은 서유열 전 KT 사장에게 “김성태 의원이 우리 KT를 위해 저렇게 열심히 돕고 있는데 딸이 정규직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해 보라”고 지시했다. 이미 2011년 이석채 전 회장과 서유열 전 사장이 김성태 의원과 함께 가진 술자리에서 ‘김성태 의원 딸’ 이야기가 나온 뒤였다.
하지만 서유열 전 사장에게 지시가 내려간 2012년 10월은 2012년 하반기 공채 서류 전형까지 끝난 상황이었다. 김성태 의원 딸은 2012년 9월 1일부터 17일까지 이뤄진 온라인 서류 접수 기간 입사 지원서를 접수하지 않았고, 한 달여 뒤인 10월 7일 치러진 서류 전형 합격자 인성·적성 검사도 치르지 않았다.
보통의 경우라면 ‘불가능’한 일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인재경영실은 김성태 의원 딸에게 온라인 인성검사를 볼 수 있도록 조치했다. 그리고 별도로 두 차례에 걸쳐 입사지원서를 받았다. 인성검사 성적도 좋지 않았다. 심지어 불합격에 해당하는 D등급을 받았다. A~D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다. 게다가 적성검사는 치르지도 않았다. 하지만 합격이었다. 후속 면접 전형을 거쳐 대졸 공채 전형을 통과해 ‘정규직’이 됐다. 이 지시의 정점에 이석채 전 회장이 있다는 게 법원의 결론이다.
이석채 전 회장은 반발했다. “2011년 식사 자리가 아니라 2009년 5월 14일 식사였다”며 서유열 전 사장의 진술 신빙성을 공격하는가 하면 “서유열 전 사장이 주도했을 뿐 나는 몰랐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2009년 5월 14일 하루 전까지 서유열 전 사장이 병원 신세를 졌던 사실이 이석채 전 회장의 발목을 잡았다.
재판부는 “이석채 전 회장이 주장하는 2009년 5월 14일 만남 4일 전인 5월 10일, 서유열 전 사장이 오른쪽 쇄골이 부러지고 인대가 손상돼 3시간에 걸쳐 수술을 받고 5월 13일까지 병원에 입원했었다”며 “바로 다음날 양복 상의도 제대로 못 입었다는 서 전 사장이 깁스를 하고 술을 곁들인 저녁식사를 한다는 것은 사회 통념상 어렵다”고 판단했다. 2011년 이 전 회장과 김성태 의원이 만나 ‘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그 후 ‘청탁’이 오간 정황을 다시 한 번 인정한 셈이다.
이석채 전 KT 회장. 사진=고성준 기자
진술 증거가 있는 게 아니다. 채용 관련 주요사항을 이석채 전 회장에게 직접 보고하는 자리에 있던 김상효 당시 KT 인재경영실장은 부정채용 과정에서 김성태 의원 딸의 전형별 결과도 포함된 명단을 들고 보고를 했다.
이석채 전 회장 등 KT 임원들이 김성태 의원 딸처럼 ‘채용 관리’를 한 입사지원자는 12명. 유력인사의 친인척·지인을 채용하기 위해 면접 접수를 바꾸는 것은 기본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은 KT 내부 이메일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면접에서 D등급을 받은 지원자가 합격했다는 내용은 1심 판결문에 적시됐다.
이메일에는 ‘챙겨야 할 지원자’들에 대해 진행 과정 별 등수와 함께 ‘합격권, 불합격권’을 미리 예단해 임원들에게 보고됐다. 당연히 이들은 면접 점수가 D등급이 나와도 수정이 이뤄져 무사히 최종 합격했다. 이메일 외에도 회장 보고 등 검찰 수사 과정에서 확보된 내부 자료까지, 고스란히 남은 회사 내부 문건은 이에 관여한 임원들의 진술과 함께 유죄의 핵심 근거가 됐다.
현재 1심 재판을 받고 있는 김성태 의원은 그럼에도 무죄를 주장했다. 선고 이틀 뒤인 11월 1일, 재판을 받기 위해 법정에 출석하면서 “별건”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면서도 “저의 재판과 (이석채 전 회장의) 업무방해 재판은 별개”라고 언급했다. KT 부정채용에 대한 위법성 여부가 밝혀졌을 뿐, 뇌물 혐의 재판과는 다르다는 주장이다. 뇌물죄 입증의 핵심인 ‘대가성’도 부정했다.
김 의원은 “(2012년 환노위) 국정감사 (이석채 전 회장) 증인 채택 논의가 (딸 채용의) 대가인지 또 청탁이 있었는지 이런 문제는 앞으로 법정에서 잘 가려지리라 보고 있다”고 언급한 뒤, “검찰이 짜놓은 각본대로 충실한 연기를 한 서유열 전 사장의 허위 진술과 거짓 증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것은 대단히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법조계 “김성태 불리하지만 구속은 글쎄”
법조계에선 김성태 의원에게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간다는 얘기가 나온다. 일단 뇌물을 준 측(이석채 전 회장)이 유죄가 인정된 상황에서, 뇌물을 받은 측(김성태 의원)이 무죄가 나오는 게 쉽냐는 것이다. 심지어 두 사건은 재판부가 같다. 이미 서유열 전 KT 사장의 “김 의원 딸이 KT 계약직으로 일하던 2011년, 이 전 회장과 함께 김 의원을 만나 딸 이야기를 나눴다”는 진술을 인정했기 때문에 김성태 의원에게 불리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김성태 의원이 실형을 받는다고 해도 구속되지 않을 가능성은 있다. 국회 일정에 따라 불체포 특권이 적용된다. 정기국회 회기 중에는 국회의원을 구속하려면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는 게 판사들의 중론이다.
굵직한 사건을 다수 다뤄본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국회 회기 중일 때는 실형을 선고해도 바로 구속이 어렵다. 국회에 동의 요구서 보내야 한다. 따라서 회기 중일 때는 아예 법정구속을 못 한다”며 “회기 중이 아닐 때 선고해야 법정 구속이 가능하고 그마저도 다시 국회 회기 일정이 시작되면 석방해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심 재판부가 국회 일정까지 고려해 선고 일정을 잡을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는 대목이다. 9월 2일 문을 연 정기국회는 100일간 활동을 마치고 오는 12월 10일 종료를 앞두고 있다. 2012년 박주선 당시 무소속 의원(현 바른미래당 의원)은 국회 임시회기가 진행 중인 탓에 징역 2년을 선고받고도 구속되지 않았다. 이런 전례가 있기에, 1심 재판부도 이를 고려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