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샌디에이고 계약 불발 이후 절치부심…“가고 싶다” 의지 재확인한 SK 구단도 통 큰 결단
김광현은 프리미어12 예선라운드 직후 메이저리그 꿈을 밝히기 위해 “13년 만에 처음 목소리를 낸다”며 인터뷰를 자청하기도 했다. 사진=이영미 기자
#2014년 샌디에이고와 계약에 실패한 이유
김광현은 2014년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 문을 두드렸다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계약 실패 후 한동안 해외 진출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샌디에이고가 김광현한테 보인 모습에 크게 실망했기 때문이다. 샌디에이고가 김광현에게 제시한 몸값은 2년+1년(구단 옵션)에 연봉 100만 달러(약 11억 7800만 원)였다.
적은 연봉도 연봉이었지만 당시 감독이었던 버드 블랙이 기자들한테 김광현에 대해 소개한 내용을 전해 들으면서 감정이 상했다는 후문이다. 버드 블랙 샌디에이고 감독은 기자들에게 김광현을 가리켜 “동양에서 온 이름 어려운 선수”라고 표현했다. ‘KIM’이라고 표현해도 충분히 설명이 됐겠지만 버드 블랙 감독은 ‘이름 어려운 선수’라는 설명으로 김광현의 가치를 낮춰버렸다.
클럽하우스에 마련돼 있었던 유니폼과 가족들을 위한 선물을 받고 잠시 마음이 들떴던 김광현은 샌디에이고가 자신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다시 부푼 꿈, 메이저리그
김광현이 해외 진출에 대한 생각을 다시 부풀린 건 2016년 SK 와이번스와 FA(자유계약)를 맺은 직후다. SK 최창원 구단주가 김광현의 부모와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김광현의 메이저리그행을 돕겠다고 말한 것이다. 최 구단주는 SK에서도 메이저리그 진출 선수가 나오기를 바랐고, 시무식과 같은 공식 행사에서도 그 바람을 천명하기도 했다.
야구를 좋아하는 구단주의 약속을 믿을 수밖에 없었던 김광현은 2017년 1월 팔꿈치 수술을 받고 재활에 매진, 2018시즌 힐만 감독 체제에서 마운드로 복귀한다. 당시 김광현은 한국시리즈 우승과 15승을 이루고 메이저리그에 가라는 구단주의 약속을 잊지 않았다. 김광현은 메이저리그에 가려면 투구 수를 늘리고 싶었지만 수술 복귀 첫 해, 힐만 감독은 김광현의 투구 수를 관리해주겠다고 선언했다. 다음은 김광현의 이야기다.
“감독님은 2018시즌에 110이닝 정도로 투구 수를 조정해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이닝을 더 늘리고 싶었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려면 스카우트들에게 150이닝 이상 던지며 건강함을 증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136이닝을 소화했고 11승 8패의 성적과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거머쥐며 성공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김광현은 내심 구단이 메이저리그행을 허락해주기를 기다렸다. 그 즈음 메이저리그의 한 팀으로부터 실질적인 제안도 받았다. 수술 후 구속 증가와 안정감 있게 마운드 운영을 해온 부분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힐만 감독이 미국으로 돌아가고, 염경엽 감독이 새 사령탑에 오르면서 김광현의 미국 진출은 선수의 바람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선수 또한 새로운 감독이 온 상황에서 자신의 꿈을 내세우기 어려웠다. 2019시즌을 앞두고 김광현은 “1년 더 뛰고 팀을 우승시킨 다음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SK 구단은 22일 오후 마침내 “김광현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허락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사진=SK 와이번스
2019시즌 김광현은 선발 등판할 때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자신의 경기를 보러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김광현이 올 시즌 팀을 우승시키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고 싶다는 의사를 확인했기 때문에 선발 등판을 놓치지 않고 직접 챙겨봤다. 김광현은 히어로즈 시절 강정호, 박병호를 메이저리그로 보낸 염경엽 감독을 믿고 따랐다. 염 감독도 투구 수 등을 조정해주며 2019시즌 이후 메이저리그 진출을 돕겠다고 약속했지만 두산과 정규시즌 우승을 놓고 다투는 상황에서 오히려 이닝 수가 늘어나기도 했다(2018시즌 25경기 136이닝 11승 8패, 2019시즌 30경기 출전 190⅓이닝 17승 6패).
문제는 2019시즌 이후였다. 한국시리즈 2연패를 목표로 했던 SK가 정규시즌 우승을 놓친 것은 물론 플레이오프에서 3패하고 탈락하는 바람에 한국시리즈 진출마저 무산됐다. 구단으로서는 김광현의 해외 진출을 선뜻 돕겠다고 나설 수 없었다. 프리미어12에 출전하느라 대표팀에 합류한 김광현과 제대로 대화도 나누지 못한 상태에서 김광현의 메이저리그 진출 관련된 부정적인 내용의 기사가 잇따르자 김광현은 쿠바전을 마치고 일본으로 떠나기 직전 기자와 인터뷰를 자청하는 일이 벌어졌다.
김광현은 인터뷰를 통해 13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고 밝히면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자신의 꿈을 응원하는 팬들의 반응을 접하고 용기를 낼 수 있었다는 그는 “팬들이 내 꿈을 응원해주고 보내주라고 하고, 가서 잘하라고 응원하는 글들을 봤다”면서 “SK 팬들 입장에서는 내가 남기를 바랄 텐데 오히려 응원을 보내준 부분에서 크게 감동했다”고 설명했다.
#SK 구단의 통 큰 결단
김광현은 2016년 SK와 4년 총액 85억 원의 FA를 맺었다. 팔꿈치 수술로 한 시즌을 쉰 터라 김광현이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자격을 얻으려면 2021시즌 이후가 된다. 즉 지금으로서는 구단의 허락 없이 메이저리그에 갈 수 없는 상황이다.
김광현의 인터뷰가 공개된 후 SK는 긴밀하게 움직였다. 선수가 여론을 등에 업고 구단을 압박한다고 불쾌해 했던 구단 관계자도 있었지만 내부에서는 구단주의 약속까지 공개할 정도로 김광현의 의지가 강하다는 걸 재확인하고선 합리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했다는 후문이다.
22일 오후 SK는 마침내 “김광현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허락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SK로서는 통 큰 결단이었다. 지금까지 KBO리그 선수 중 FA 계약기간 중 해외에 진출한 사례는 없었다. SK는 팀 에이스를 잃는 결정이라 장고를 거듭했고, 결국 선수의 의사를 존중해주기로 한 것이다. SK는 해외 진출을 허락한 이유로 김광현이 2007년 입단 이후 올해까지 13시즌 동안 4차례 우승을 이끈 높은 팀 공헌도와 원클럽맨(One Club Man)으로서 그동안 보여준 팀에 대한 강한 애정, 와이번스 출신 첫 메이저리거 배출에 대한 팬들의 자부심 등을 꼽았다.
김광현은 공식 발표 후 “구단이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리그 진출을 허락해 주신 점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 “그동안 팬들의 응원과 지지에 대해서도 감사드린다. 앞으로 한국야구와 SK 와이번스 팬들의 자부심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김광현은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알아본다. SK는 김광현에 대한 포스팅 의사를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통보하도록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요청할 예정이다. 메이저리그 포스팅시스템 신청 기한은 12월 5일까지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