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검사의견서서 경영진 감독 책임자로 명시…은행은 대형 로펌 선임해 총력 대응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DLF 사태와 관련,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에 대한 현장검사 결과를 토대로 검사반이 쓴 검사의견서를 최근 두 은행에 전달했다. 현재까지 은행 쪽의 1차 소명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최근 DLF 사태와 관련한 우리, 하나은행 CEO 제재 입장을 재차 확인하면서 “금감원이 근거를 밝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이종현 기자
금감원은 검사의견서에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겸 우리은행장,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 지성규 KEB하나은행장을 감독책임자로 명시했다. 실무 책임자뿐만 아니라 담당 임원과 경영진을 모두 포함한 것이다. 두 은행이 DLF를 판매하면서 본점 차원에서 과도한 실적 독려가 이뤄졌고 이는 경영진의 관여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금감원은 앞서 받은 은행 측 소명과 법리 검토 결과 등을 모두 종합해 최종 제재안을 만들어 제재심의위원회에 상정한다. 이후 결과를 금융위원회로 보내 의결 절차를 거치면 제재가 확정된다. 이 절차들이 모두 마무리 되는 데는 통상 수개월이 걸린다. 다만 금감원은 DLF 사태 파장이 컸던 만큼 관련 절차에 최대한 속도를 내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금융권에선 최종 제재안이 늦어도 올해 안에 나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금감원 사정을 잘 알는 한 관계자는 “내년 1월 중순에 제재심의위원회가 열리고 이때 은행 경영진 제재 안건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당초 은행장을 비롯한 경영진에 대한 제재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윤석헌 금감원장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각각 “실무자들만 징계하는 꼬리자르기식은 안된다”고 강조했지만 CEO(초고경영자)와 임원 처벌은 어렵다는 것이 금융권 안팎의 중론이었다. 현행법상 경영진의 전반적인 관리책임 실패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이 불명확해서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법을 보면 ‘금융회사는 법령을 준수하고 경영을 건전하게 하며 주주 및 이해관계자 등을 보호하기 위해 임직원이 직무를 수행할 때 준수해야 할 기준 및 절차(내부통제 기준)를 마련해야 한다’고 돼 있다. 다만 이 규정은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하라는 내용이다. 내부통제가 허술했다며 제재할 수 있는 근거로는 부족하다.
실제 DLF 종합대책이 발표된 지난 11월 14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CEO 제재 여부에 대해 “금감원이 판단하고 검토하고 있다”며 일단 금감원에 공을 돌리면서 “비슷한 사태가 재발할 경우 CEO 제재 조치가 가능하도록 관련 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권에서는 이 발언을 ‘현재로선 법적 근거가 없어 CEO 제재를 하기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건물 내 위치한 우리은행 금융감독원 지점. 사진=최준필 기자
그러나 최근 분위기가 급변했다. 우선 이번 검사의견서에 은행장을 감독책임자로 명시하면서 금감원이 현장검사 및 법리검토 과정에서 제재 근거를 확보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윤석헌 금감원장은 지난 12월 3일 한 세미나에 참석한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은행 CEO 제재 입장을 재차 강조하면서 “제재 근거에 대해서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금감원이 밝힐 기회가 있을 테니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금감원 내부적으로 ‘원금 전액 손실’로 인해 금융 소비자 보호란 금감원 기조를 역행한 사건인 만큼 처벌 수위가 낮거나 꼬리 자르기로 끝나면 향후 재발방지도 어려울 것이란 목소리가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내부통제를 넘어 또 다른 규정들을 전반적으로 검토해 제재 가능성을 확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하나은행의 경우, DLF 손실 사태와 관련한 자체 전수조사와 손해배상 검토 자료를 만든 뒤 금감원 검사 전에 이를 삭제한 행위 등이 제재 근거로 거론된다. 금감원은 현장검사 마무리 단계에서 이례적으로 지성규 하나은행장을 상대로 별도의 대면문답도 진행했다. 금감원은 자료 작성을 지성규 행장이 지시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하나은행 쪽이 행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삭제했다고 주장하고 있어, 이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금감원은 우리은행 경영진에 대해서는 서면문답만 진행했다.
제재 수위는 현 상황에서 예단하기 어렵다. ‘주의적 경고’ 이하의 경징계일 경우 현직 CEO들이 업무수행을 하는 데는 영향이 없다. 다만 ‘문책적 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받으면 남은 임기는 마칠 수 있지만 3년간 금융권 취업이 제한된다. 직무정지는 4년, 해임권고는 5년 취업제한이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사진=고성준 기자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김앤장과 광장, 세종, 율촌을 포함한 대형 로펌 7곳의 자문을 받으며 대응에 나섰다. 김앤장은 이번 DLF 사태와 유사한 키코(KIKO) 소송에서 100% 승소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CEO 제재 방어뿐만 아니라 분쟁조정 절차와 별도 소송에 대응해야 하는 두 은행은 핵심 로펌 한두 곳을 두고, 각 사안별로 전문 로펌의 조력을 받는다는 전략이다.
특히 우리은행은 이번 제재 수위에 더욱 민감한 상황이다. 손태승 회장의 임기가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로 끝나기 때문이다. 그동안 손 회장의 연임이 유력하게 거론된 가운데 금감원의 CEO 제재 의지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우리금융 내부규정상 1월 말까지만 회장 선임 절차에 돌입하면 된다. 금감원이 결정한 제재안이 금융위에 올라가서 수위가 높아지는 일은 드문 만큼, 12월 말 또는 1월 초에 금감원 제재안을 확인하고 회장 선임 또는 연임 절차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금감원이 최종 책임자로 CEO를 지목했고 근거에 대해 설명하겠다고 밝힌 만큼 제재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제재 근거와 재재 수위 등을 놓고 금감원과 은행권의 줄다리기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