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없는 금감원… “잘못된 점 알면서도 수수방관”
해외 금리연계형 파생결합상품(DLF) 사태에 대해 금융감독원의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DLF 피해자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10월 21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조사 촉구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최준필 기자.
금감원은 지난 4월 10일부터 DLF에 대한 소비자 민원 2건을 열흘 간격으로 접수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민원에 대한 조사를 통해 은행에서 DLF가 불완전판매됐다고 판단한 것은 지난 5월이지만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에게 정식 보고가 올라간 것은 두 달이나 지난 7월 17일로 드러났다. 금감원이 본격적으로 종합검사에 착수한 것은 8월 말로, 사태를 처음 인지한 지 넉 달이 지나서야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금감원이 늑장을 부리는 사이 판매된 DLF만 모두 1100억 원 규모로 전체 판매액의 14%에 달한다.
또 윤 원장이 보고받은 것은 지난 7월인데 상급기관인 금융위원회(금융위)가 인지한 것은 한 달이 지난 8월 16일로 알려졌다. 금감원이 금융위의 산하기관임에도 보고와 조치를 소홀히 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윤 원장은 지난 10월 2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7월 말 8월 초는 일본 수출규제로 갑자기 시장이 어수선해서 경황이 없었던 시기였다”며 “항상 문제가 있으면 금융위 쪽으로 연락을 드리는데 조금 늦어진 것 같다”고 해명했다. 윤 원장은 또 “금융회사의 업무를 그렇게까지 밀착 감시‧감독하는 게 인적 자원의 부족 등 어려운 상황이 있어 사전에 제어하기에는 역부족인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윤 원장의 말은 설득력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 금감원은 이미 한 차례 파생결합증권 판매 절차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이를 알린 바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의 ‘2018년 증권사·은행의 파생결합증권 판매에 대한 미스터리쇼핑 실시 결과’에 따르면 금감원은 각 증권사와 은행의 파생결합증권 판매 절차를 토대로 평가를 실시했다. 각 회사별 등급은 100점 만점에서 우수(90점 이상)‧양호(80점대)‧보통(70점대)‧미흡(60점대)‧저조(60점 미만)로 나뉘는데, 우리은행은 ‘미흡’, 하나은행은 ‘저조’ 등급을 받았다.
금감원은 이 평가 이후 실적이 저조한 금융회사에 이를 통보하고 개선 계획을 수차례에 걸쳐 보고받았다고 밝혔다. 당시 은행들은 개선 계획과 이행에 대한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금감원에 제출하며 개선하는 듯했지만, 정작 DLF 상품이 판매되던 때 직원들은 투자자 확인서에 자필로 대필하는 등 부적절한 모습이 드러나 논란을 빚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지난해 실시한 미스터리쇼핑(암행평가)은 공모펀드에 관한 것이고, 대부분 DLF는 사모펀드로,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 하지만 공모펀드에 대한 미스터리쇼핑 결과에서 다수의 은행이 미흡한 평가를 받았다는 점에 비춰보면 금감원이 DLF에 대해서도 통제를 강화했어야 했다는 아쉬움도 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측은 “미스터리쇼핑 자체는 공모펀드에 대한 것이 맞지만 고령 투자자에 대해 보호가 되지 않고 전반적인 불완전판매 실태가 드러난 것도 사실”이라며 “금감원은 미스터리쇼핑과 이번 사태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이를 통해 불완전판매가 이렇게 많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추가적인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금감원이 금융기관의 광고를 심의하는 등 기본적인 감시·감독에도 소홀히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A 은행의 B 센터가 실제로 발송한 투자광고 메시지에는 ‘세계 최고 안전자산인 독일 국채 금리에 6개월만 투자해보세요’, ‘현재 독일 금리는 점진적으로 오르고 있다’는 등 투자자들이 손실 가능성과 이익 보장 등에 오해할 만한 소지가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과대‧허위 등의 논란이 있는 이 광고가 투자자들에게 전달될 때 금감원은 어떠한 관리 감독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금감원 측은 “금감원에서 어떻게 그 많은 광고를 일일이 다 확인하고 통제할 수 있겠으며 본래 우리가 하는 일도 아니다”라며 “은행사나 증권사 내부에 광고 심의 부서가 있다. 감사·준법감시·상품관리 등의 부서에서 각자 관리하고 심의하며 각자의 자정작용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는 그 자정작용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금감원이 지난 10월 1일 발표한 ‘주요 해외금리 연계 DLF 관련 중간 검사결과’에 따르면 해당 은행에선 판매직원 90여 명이 준법감시인의 사전 심의 없이 이 투자광고 메시지를 발송했고, 그 잠정치만 3만여 건에 달한다.
금융권 한쪽에서는 금감원이 DLF사태와 관련해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당시 잘못된 방법으로 상품이 판매되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수수방관했고, 사태가 이렇게 되자 유체 이탈하듯 발을 빼고 있다”며 “국감 당시에도 금감원은 마치 본인들은 결백하고 은행만 잘못한 것처럼 얘기하던데, 무책임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