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같은데 어딘지 부자연스러운’ 근원적 공포감…“어때, 진짜 같지?” 들이미는 건 기술 이전에 태도의 문제
거센 혹평 세례에 되레 흥미가 동한 호사가들 덕에 얼마간은 영화판 ‘캣츠’를 둘러싼 설왕설래가 금방 가라앉을 것 같진 않다. 게다가 그 원인 가운데 가장 큰 이유로 지목되는 이슈는 이제 해설이 필요한 이론적 용어를 넘어 대중 유행어가 되어가고 있다.
영화판 ‘캣츠’가 자극했다는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현상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언캐니 밸리’?
‘불쾌한 골짜기’라는 뜻을 지닌 언캐니 밸리는 1970년 일본의 로봇 공학자 모리 마사히로가 처음 제시한 이론 ‘부키미노타니’를 영어로 번역한 용어다. 당시 도쿄공대의 교수였던 모리 마사히로는 로봇이 인간과 비슷해질수록 친밀도가 높아지나 어떤 시점에 이르면 갑자기 강한 불쾌감을 느끼고, 인간과의 구분 점이 거의 사라질 정도가 되면 갑자기 친밀도가 올라가는 현상을 발견했다.
모리 마사히로는 이를 그래프로 그렸을 때 갑자기 푹 들어간 계곡과도 같은 구간을 가리켜 ‘불쾌한 골짜기’라고 명명했고, 이 글의 영어 번역판이 해외 학회지에 실리며 ‘언캐니 밸리’라는 용어로 널리 알려졌다. 언캐니 밸리 그래프를 보면 움직이는 대상과 움직이지 않는 대상에 따른 호감과 불쾌감의 정도가 잘 드러나는데, 그래프에서 ‘골짜기’를 형성하는 지점에 자리하고 있는 건 움직이지 않는 대상 가운데에선 시체고 움직이는 대상 가운데에서는 좀비다.
본래 미학자인 진중권은 영화잡지 ‘씨네21’ 2007년 12월 7일 자 ‘진중권의 이매진 – 우리는 디지털 가상세계의 좀비들인가’에서 ‘폴라 익스프레스’의 3D CG가 주는 뭔가 이상한 인상을 해석하기 위해 이 언캐니 밸리 이론을 소개했다. 진중권의 칼럼에 따르면 일본어의 부키미(不気味)와 영어의 언캐니(Uncanny)가 본래 독일어 운하임리히(Unheimlich)의 역어로 심리학자 에른스트 옌취가 제일 먼저 썼다고 한다.
옌취는 운하임리히를 “어떤 생명 있어 보이는 존재가 정말 살아 있는 건지, 혹은 반대로 어떤 생명 없는 사물이 혹시 살아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의심”으로 규정했다. 즉 혼란과 혼돈을 일으키는 대상을 향한 인간의 즉각적이고도 복잡다단한 감정을 압축한 말로 단순한 호불호를 표명하는 수준보다는 조금 더 깊은 지점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미학자 진중권은 ‘폴라 익스프레스’의 3D CG가 주는 뭔가 이상한 인상을 해석하기 위해 언캐니 밸리 이론을 소개했다. ‘폴라 익스프레스’ 스틸컷.
#인간을 닮은 피조물을 만들고픈 원초적 본능
언캐니 밸리 이론은 반론도 있지만 사람들이 대상을 보고 즉물적으로 느끼는 혐오감을 해석하기 위한 용어로서 이미 이곳저곳에 쓰이고 있다. 특히 ‘폴라 익스프레스’와 같이 CG로 배우의 움직임과 표정까지 재현한 경우 ‘사람 같은데 어딘지 부자연스러운’ 지점에서 오는 근원적 공포감을 해석하는 데에 이만한 이론이 없다. 아인슈타인 머리를 단 한국의 ‘알버트 휴보’나 일본인 여성의 외양을 몸체까지 그대로 구현한 치히라 카나에 같은 로봇 공학의 결정체들을 두고 나오는 반응에도 같은 이론을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을 닮은, 나아가 인간과 거의 같은 수준의 피조물을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은 천지창조 이래 신에게서 물려받은 인간의 본능일까? 로봇 공학과 CG 기술을 도입하고 있는 이들은 비판에 직면하면서도 끊임없이 인간 비슷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다. 일례로 2016년 인텔은 게이머가 자기 얼굴을 스캔하면 본인 얼굴을 한 3D 캐릭터가 곧바로 게임 속 플레이어로 등장해 움직이는 기술을 선보인 바 있다.
전신 스캔을 통해 자기 얼굴과 몸을 그대로 살린 플레이어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온라인 게임 소재 만화 ‘유레카’ 속 풍경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셈인데, 아직은 ‘닮았는데 어딘지 어색한 지점’이 여전히 노출되고 있다. 한데 인텔은 광고 영상에서 대놓고 “인텔이 준비한 언캐니 밸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우스개를 섞어 도발(?)한다.
#기술 이전에 태도의 문제
한데 대중문화 창작물에서의 언캐니 밸리는 쉬 극복될 만한 문제가 아니다. 시각 자극에서부터 근본적인 혐오감에 휩싸이면 그 시각에 실어 전달해야 할 서사나 인물 구도 따위는 이미 완전히 뒷전이 되기 때문이다. ‘폴라 익스프레스’는 그 기술적 성취와 톰 행크스의 1인 5역 연기를 내세웠지만 개봉 당시에 울음을 터트리는 어린이 관객들을 만나야 했고 그걸로 대중들의 판단은 끝나고 말았다.
언캐니 밸리가 단순히 인간 캐릭터에게만 발현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사례도 근래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근래 인기 게임 캐릭터 소닉의 영상화 소식으로 화제를 모았던 ‘슈퍼 소닉’은 ‘의인화한 고슴도치 캐릭터지만 고슴도치에 가까웠던’ 원래의 디자인과는 달리 마치 사람이 소닉 인형탈을 쓰고 나온 듯한 신체 비율과 얼굴 디자인으로 예고편이 공개되자마자 전 세계 소닉 팬들의 분노에 직면해야 했다. 심지어 팬이 고쳐 올린 디자인이 낫다는 비판이 일자 제작사는 전면 재수정에 착수해 반년 만에 새로운 예고편을 올리기에 이른다.
‘언캐니 밸리’를 자극했다는 뮤지컬영화 ‘캣츠’의 한 장면. SNS를 중심으로 악평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의 영화판 ‘캣츠’와 얽힌 설왕설래도 결국은 같은 맥락에서 볼 법한 일화다. 뮤지컬판은 인간이 고양이로 분장하고 연기하고 있음을 서로가 암묵적으로 ‘약속’하고 즐길 수 있는 형태지만 영화판에서의 고양이들은 그야말로 홀딱 벗겨놓은 인간에게서 인간의 귀 정도를 지우고 고양이 귀와 털을 CG로 집요하게 붙여놓음으로써 인간도 고양이도 아닌 무언가를 진짜 현실에 있는 것 같은 형태로 만들어냈다.
이 비주얼은 고양이 귀나 개 귀를 단 인간 캐릭터에 익숙한(!) 편인 만화·애니메이션 오덕들조차 감내하기 어려웠던 모양인지 SNS 타임라인 곳곳이 비명으로 아우성이다. 너무 강렬한 사례가 되어서인가, 영화판 ‘캣츠’에 이르러 이제 사람들은 ‘불쾌한 골짜기’도 아니고 그냥 ‘골짜기’라는 말로 감상을 표현하고 있다.
사람들이 대중문화에 바라는 리얼리티는 기술적 성취로 완벽한 실재성을 재현하는 것 이전에 “이게 가짜임은 분명하지만 보고 있노라면 진짜처럼 느끼게 해 줄게요”라는 전제를 깔아놓은 상냥한 자신감일 터고, 그 자신감의 중심엔 이야기의 힘이 있다. 실은 알고도 속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 관건이지, 눈앞에 보이는 게 ‘진짜’ 같지 않느냐고 들이미는 건 기술 이전에 태도의 문제다. 기술이나 제작진이 영화 광고 문구에 올라서 잘 되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은, 여전히 많은 시사점을 지닌다.
만화칼럼니스트 iam@seochanhw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