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수혈 안돼 주주사들 진퇴양난…일각 “KT 대신 새 IT기업을 주주로” 주장
케이뱅크가 무기한 개점휴업 상태에 놓이면서 우리은행을 비롯한 주요 주주들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사진=연합뉴스
케이뱅크에 지분 투자한 주요 주주들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국회의 인터넷은행 특례법 개정안 통과가 지연되면서 KT 대주주 승인이 발목을 잡힌 탓이다. 개정안에는 인터넷은행 대주주 승인 요건에서 공정거래법 위반 전력을 삭제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개정안이 통과하면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중단된 KT가 케이뱅크 최대주주로 올라설 수 있어 자금 수혈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지난 1월 9일 열린 임시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KT 특혜 법안이라며 반대 의견이 나와 보류됐다. 2월 임시국회에서 다시 논의될 순 있어도, 의원들간 이견을 보이는 데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있어 통과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문제는 현 상황이 지속되면 가뜩이나 좋지 않은 케이뱅크의 재정 건전성이 더 불안해진다는 것이다. 케이뱅크는 법안 통과만 기다리며 최소한의 영업을 유지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최근까지 하나둘 대출상품 판매를 중단해 현재 예·적금담보대출을 제외한 모든 여신상품 신규 대출이 불가능하고, 대출 연장과 예·적금만 된다. 대출 중단이 장기화하면 고객 이탈 가능성이 커지고, 예대마진(대출금리-저축성수신금리)이 줄어 자금조달이 어렵다. 결국 적자가 쌓이고 자본금은 바닥나면서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10% 이하로 떨어져 금융당국의 관리 대상이 될 수 있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케이뱅크 BIS 자기자본비율은 11.85%로 업계 최저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예대마진이 주수입원인 은행에서 대출서비스를 못하면 예·적금 금리라도 높여야 하는데 그러면 다른 은행들과 경쟁이 안 된다”며 “금리를 높이지 않으려면 기존 자본금을 소진해야 하는데 자본금도 충분치 않아 이자도 못 주는 어려운 상황이 올 수 있으며 자본 확충이 이뤄지지 않으면 1년도 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KT가 대주주로 올라서는 것 말고도 자금 수혈 방안은 있다. 주요 주주들이 다 같이 유증하면 지분 비율을 유지한 채 자본을 투입할 수 있다. 모든 주주가 참여하기 힘들다면 참여하지 않는 주주를 대신해 새 주주를 모색하는 것도 방법이다. 실제 이 같은 방향으로 주주들간 논의를 이어오고 있지만, 합의점을 찾진 못하는 분위기다. 주주들간 이해관계가 다른 탓이다. 케이뱅크는 우리은행(13.79%), KT(10%), NH투자증권(10.0%), 한화생명보험(7.32%), GS리테일(7.2%), KG이니시스(5.92%), 다날(5.92%) 등 20개 회사를 주주로 두고 있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유증에 참여한다는 주주들도 있지만 케이뱅크의 성장성을 확신할 수 없어 추가 자본을 투입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주주들도 있어 논의가 길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KT가 대주주로 올라서지 못해 유상증자가 지연되는 상황에서 주주들간 증자 논의도 합의점을 찾지 못해 케이뱅크 주주들이 골머리를 앓는 분위기다. 사진은 심성훈 케이뱅크 은행장. 사진=연합뉴스
이렇다 보니 주주들의 지분 매각 가능성도 거론된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주주들 사이에서 잘못 투자한 거 아니냐는 의구심과 KT에 발목이 잡혔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인터넷은행을 밀어주겠다던 정부가 규제는 풀지 않는 등 희망고문을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며 “유증으로 그간 케이뱅크에 돈만 쏟아부었던 우리은행 등 주주들이 엑시트하고 싶어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고 귀띔했다. 금융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저금리에 인터넷은행의 차별성도 사라지는 상황에서 지분 회수를 생각하는 주주들도 있을 것”이라며 “증자하려면 돈을 더 태워야 하는 데다 유증해도 앞으로 얼마나 더 수혈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부담일 수 있다. KT가 대주주가 되면 매력이 생길 것이란 기대감에 지분을 붙들고 있다가 법안 통과가 보류되면서 돌아서는 주주도 있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그러나 발 빼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앞의 금융업계 관계자는 “저축은행 하나가 무너져도 사회적 파장이 크다. 현재 대주주인 우리은행이 빠지면 다른 주주들도 줄줄이 빠져나갈 수 있는 만큼, 지분 매각의 파장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 매각하면 케이뱅크는 더 이상 안 된다고 선언하는 것밖에 더 되느냐. 펀드런 사태로 이어지면 기존 고객들에게도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며 “출범한 지 3년도 채 안 됐다. 장기 성장 가능성을 보고 투자했을 것이니만큼 쉽게 발을 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KT가 지분을 매각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법안 통과가 지연되고 주주간 증자 논의도 마무리되지 못하면 KT가 발을 빼고 새로운 IT기업이 주주로 들어서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최선의 시나리오라는 것. 정부 역할의 필요성도 언급된다. 서지용 교수는 “현 상황이 길어지면 KT가 지분을 팔고 나오는 것이 영업 정상화의 가장 빠른 길”이라며 “하지만 인수자가 나타나기 쉽지 않은 만큼 매각 대상 물색에 도움을 준다거나 정상화 지원에 나서는 등 정부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케이뱅크가 최악의 상황에 처하도록 내버려두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제4 인터넷은행이 나와서 케이뱅크와 합치는 조건으로 승인해주는 등 나름의 방안을 강구하지 않겠느냐”고 관측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