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 236cm×132cm 종이에 수채 2019
회화를 인간의 몸에 빗대어 보면 형태는 뼈대, 색채는 혈액이다. 뼈대는 인간의 몸을 단단하게 잡아주고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결정하기에 잘 보인다. 우리가 그림을 볼 때 대부분이 이걸 보는 것이다.
이에 비해 혈액은 액체 상태로 스스로는 일정한 형태를 갖지 못한다. 그 대신 뼈대가 만들어지는 데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는 뼈대가 만들어낸 인간의 몸이라는 그릇에 담긴다. 그러나 작가가 회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은 대체로 여기에 속한다.
이쯤 되면 뼈대는 회화에서 형식을, 거기에 담기는 혈액은 내용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그래서 회화에 담기는 인간 정신의 구조를 단단하게 잡아주고 명쾌하게 해석해내는 것이 형태로 나타난다면, 그 틀을 깨고 자유로운 세계로 날아가게 하는 것은 색채로 표현할 수 있다.
무제(현대인의 초상): 7.5cm×10.5cm 종이에 아크릴 2019
결국 형식은 이성적인 면, 내용은 감성적인 면과 가까운 미술 언어라는 사실이다. 서양미술에서 두 영역이 첨예한 각을 세웠던 시기는 18세기와 20세기 초반이다. 즉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입체파와 야수파가 그랬고,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추상과 칸딘스키의 자유추상으로도 대립했다.
그러나 현대미술에서는 이 구분이 뚜렷하지 않다. 작가의 성향에 따라 형식에 치중하는 경향의 작가와 내용에 무게를 두는 작가로 나누어진다.
윤희태는 형식 연구에 작품의 추를 놓고 있는 작가다. 그런데 그의 작품에는 내용이 뚜렷하게 보이는 것들이 많다. 성서의 에피소드를 빌려와 현대 문명의 문제를 설득력 있게 표현하기도 하고, 우리 사회의 갈등을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작업도 있다. 자신 주변의 다양한 인간상을 우화적으로 그려낸 인물 연작도 보인다.
작가는 ‘내 주변의 여러 가지 관심사를 회화로 담아내고는 있지만 그게 작업의 궁극적 목표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의 작업에서 이러한 내용들이 표현의 다양한 방법으로 소화되고 있기에 타당성이 있다. 그에게는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중요한 작업이 아니다. 그저 자신이 생각한 표현의 방법론을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보인다.
지난밤 뉴스를 보았다 #2: 106.7cm×152.4cm 종이에 수채 2017
이런 사실은 작업 과정을 보면 납득이 간다. 그는 캔버스에 점, 선, 면, 색채로 구성하는 회화의 일반적 방법으로 작업하지 않는다. 유리판 위에 아크릴 물감이나 비닐 성분이 있는 보조제를 이용해 추상적인 붓질을 해서 자신이 생각한 회화의 가장 기초 단계의 유닛을 만든다. 이를 예리한 칼로 오려내고 여려 겹 붙여서 일정한 형태를 구축한다. 마치 외과의사가 수술하듯 정밀한 작업을 통해 원하는 형상을 만들어 나간다.
이런 작업 과정을 통해 윤희태는 회화 방법의 새로운 연출을 시도한다. 그리는 과정을 버리고 오려내고 붙여서 구축하는 방법으로. 그래서 회화가 새로운 감각으로 업그레이드되기를 바란다. 이게 윤희태가 생각하는 회화다.
전준엽 화가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