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영구 국정원장 | ||
지난 1일 노무현 대통령은 MBC TV <100분 토론>에 출연, 국정원 개혁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이에 앞서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고영구 국정원장-서동만 기조실장 체제를 출범시켜 국정원에 대대적인 메스를 가해줄 것을 주문했다.
사실 국정원에 대한 개혁 프로그램은 노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부터 진행돼 왔다. 대통령직인수위 때 초안이 마련됐고, 국정원의 자체 개혁안이 나온 뒤 최근 별도의 태스크포스(TF)팀이 구성돼 개혁 프로그램을 마무리중에 있는 것. 국정원 개혁 프로그램은 그 내용과 실행의 강도에 따라 국정원은 물론, 다른 국내 정보기관의 위상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1기 체제인 ‘고영구호’는 한나라당이 사퇴권고 결의안을 제출했고, 조만간 국정원 해체 법안을 상정할 예정이어서 출발부터 역풍을 맞고 있다.
‘국정원 개혁’은 노무현 정권의 화두 중 하나. 노 정부 출범을 전후해 국정원의 개혁 프로그램은 크게 3단계로 진행돼 왔다.
핵심은 업무와 조직 두 가지 영역. 업무 차원에서는 탈정치화·정보기능 강화로, 조직 부문에서는 탈권력화를 통해 파벌을 해소하고 인력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국정원 개혁 프로그램의 1단계는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마련됐다. 당시 개혁 초안을 주도한 인물은 서동만 인수위 통일외교안보위원으로 전해진다.
고영구 국정원장 내정에 앞서 유력한 국정원장 후보로 거론됐던 한 인사는 “국정원 개혁의 밑그림은 서 위원이 다 그렸다. 대통령이 그를 기조실장으로 임명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에는 그와 박범계 현 민정2비서관,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 등이 함께 국정원 개혁의 마스터플랜을 짠 것으로 전해진다.
▲ 왼쪽부터 박범계 민정2비서관, 서동만 국정원 기조실장,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 | ||
당시 초기 개혁안의 전모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상당히 파격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조직 부분에서 국내정보처와 해외정보처를 분리, 국내 정보를 담당하는 2차장 휘하의 인원을 대폭 줄여 1차장의 해외정보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에 중점을 뒀다고 한다.
또한 일부 기관들을 통·폐합하고 정치 사찰 중지와 수사권 폐지 등을 핵심 사안으로 담고 있었다고 한다.
특히 이 즈음 인사와 관련해 국정원 내부에 ‘대대적인 물갈이설’이 나돌기도 했다. 국정원의 한 간부는 “당시 감찰실에서 직원을 세 부류로 분류해 직권을 남용했거나 대선 때 한나라당에 정보를 제공한 인사들은 ‘×’, 김대중 정부에서 부당하게 승진하거나 무사안일한 인사들은 ‘△’, 그밖에 공무에 충실한 인사는 ‘○’ 표시를 해 담당자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범계-서동만 라인이 주도한 1단계 개혁안은 국정원의 내부 반발을 불러왔다. 대통령직인수위 출범에 맞춰 ‘제도개혁위원회’를 가동한 국정원은 자체 개혁안(2단계)을 만들어 3월 말 고영구 국정원장 후보자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지난 3월27일 강남 외곽 ‘안가’(安家)에서 고영구 내정자에게 국정원의 입장을 전달했다”며 “세계 각국 정보기구의 흐름에 맞춘 개혁안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국정원 자체 개혁안이 기존 조직의 틀을 유지하면서 타국과의 정보교류를 강화하는 방안에 중점을 두었다고 설명했다. 인사 개편과 관련해서는 “일부 부서간 이동이 있을지 모르지만 큰 변화는 없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존 국정원의 틀을 유지한 국정원 안은 3월 말 국정원 직원 11명으로 구성된 ‘조직운영개선 태스크포스팀’이 가동되면서 큰 변화를 맞게 됐다.
▲ 지난 1일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는 서동만 기조실장. 청와대사진기자단 | ||
반면 국정원 관계자들은 고영구 국정원장이 3월27일 국정원 보고에 적잖이 공감을 나타냈고, 서동만 기조실장도 4월3일 국정원 방문 후 국정원을 새롭게 인식했다며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국정원 개혁과 관련, 가장 큰 변화는 대통령 직속기관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위상이 강화되면서 국정원이 사실상 그 산하에 들어간 점이다. 정부는 3월18일 국무회의에서 NSC를 확대개편하면서 새 정부의 안보와 재난 관리의 사령탑 역할을 수행토록했다. 이에 따라 국정원의 대북·해외 정보도 일단 NSC를 통해 대통령에게 보고하게 돼 있다.
3단계 국정원 개혁 프로그램 진행 과정을 종합할 때 새 국정원의 큰 틀은 박범계-서동만-이종석(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 3인방의 손 아래서 짜여지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것은 국정원 개혁을 주도하고 앞으로 국정원을 이끌어갈 주체가 이들 3인방과 직·간접으로 연결돼 있다는 점에 근거한다.
현재 국정원 개혁안을 마무리짓고 있는 TF팀의 팀장인 전아무개씨는 서동만 기조실장과 대학 동문으로 알려져 있고, 부팀장인 서아무개씨는 고교 동기라는 소문이다.
최근 국정원 내부 개혁작업의 마스터플랜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38세의 젊은 소장파 학자 김덕주 박사도 외교안보연구원 수석연구원으로 근무하다가 서동만 교수와 인연을 맺은 것으로 전해진다.
국정원의 정보채널을 통제, 위상이 강화된 NSC의 ‘실세’ 이종석 사무차장과 NSC 서주석 전략기획실장은 대통령직인수위 시절 통일외교안보분과에서 서동만 기조실장과 호흡을 맞췄던 팀원이다.
이들은 서 실장에 의해 인수위에 합류했고, 이종석 NSC 차장은 서 실장과 함께 지난해 <한반도 평화보고서>라는 책을 함께 발간하기도 했다.
또한 NSC의 핵심 1급 보직자 중 이봉조 정책조정실장과 김만복 정보관리실장은 이 차장의 요청에 의해 발탁된 것으로 전해진다. 때문에 국정원 관계자들은 NSC의 국정원 ‘통제’가 사실상 이종석 차장에 의해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청와대는 야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고영구-서동만 체제의 국정원을 출범시켰다. 이에 한나라당은 지난 1일 고 국정원장에 대한 사퇴권고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국정원 폐지 및 해외정보처 신설 추진 기획단’(위원장 정형근 의원)을 구성해 국정원 폐지 법안을 상정할 예정이다.
하지만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기싸움 결과와 상관없이 주요 포스트에 자리잡은 인맥들 덕에 이들 국정원 개혁 3인방이 짜놓은 마스터플랜은 계속 실행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