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보다 ‘코리아 포비아’ 두려움 더 커…한국행 막힌 상황서 학업·생계 모두 막막
#외국인 입국금지 48개 국, 항로 끊기니 발 묶여 오도 가도 못해
입국자의 국적과 관계없이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한 국가도 48곳이나 된다. 특히 유럽연합(EU)은 3월 17일(현지시간) 27개 회원국 정상들이 30일 동안 EU 외부 국경을 즉시 폐쇄하기로 합의하면서 외국인은 앞으로 30일 동안 관광 또는 비필수적 이유로 유럽을 방문할 수 없다. 러시아 역시 국적 불문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했다. 캐나다도 미국인을 제외한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막은 상태다.
국경을 봉쇄한 일부 국가에서는 한국인이 고립되는 상황까지 생겨나고 있다. 검역이 강화된 프랑스와 이탈리아 국경지대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국경을 봉쇄한 일부 국가에서는 한국인이 고립되는 상황까지 생겨나고 있다. 전면적 입국금지가 항로 폐쇄로 이어지면서 현지에 머물던 교민이나 관광객들의 발이 묶인 것이다(관련기사 “나 다시 돌아갈래~” 코로나19 탓 ‘국제미아’ 된 한국인들). 페루에서는 17일(현지시간) 자정부터 아무런 사전예고 없이 국경을 폐쇄하면서 한국인 관광객 150여 명이 고립됐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가속화 되고 있는 이탈리아에서도 수많은 교민들이 귀국을 희망하고 있지만 직항이 없어지면서 상황이 여의치 않다.
이탈리아 교민 정 아무개 씨는 일요신문에 “직항이 끊긴 데다 이동제한이 시작돼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못 가는 상황이라 답답하다”고 하소연하며 “이탈리아에서도 한국인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 교민이 많은 필리핀에서도 북부 루손섬을 17일부터 봉쇄하면서 교민사회에 비상이 걸렸다. 루손섬은 필리핀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이곳에 체류하는 한국인 교민도 5만∼6만이나 된다. 이 가운데 1만여 명이 귀국을 원하는 상황이지만 항로와 육로, 해로 등이 모두 막혀 출국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현재 정부에서는 전세기 투입을 고려 중이다.
#SNS로 미주, 유럽 등지에서 한국인 조롱·인종차별 전해져
국경 폐쇄와 동시에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 유럽과 북미 등지에서 한국인에 대한 무분별한 조롱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SNS 여행 커뮤니티 ‘여행에 미치다’와 개인 페이스북, 유튜브 등을 통해 현재 해외 체류 중인 교민과 유학생, 여행자들이 인종차별을 당하는 사례가 속속 전해지고 있다. 최근 코로나19가 유럽으로 급속히 확산되며 인종차별이 심해졌다는 이야기다.
독일 유학 중인 A 씨는 트램과 횡단보도 등에서 서양인 무리로부터 조롱을 당했다. “트램을 타자마자 누군가 나를 향해 ‘코레아~코로나~’라고 소리를 질렀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반대편에서 이유 없이 내 사진을 찍으면서 비웃는 걸 느꼈다”고 말하며 “마치 동양인을 놀리는 것이 유행인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조롱을 일삼는 서양인들을 보며 공포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에서 한인민박을 하는 교민 B 씨는 “마트에서 마주친 한 백인 남자가 나를 보며 기침을 하더니 얼굴을 가리는 시늉을 했다. 마트에서 나가자 여러 청년들이 내가 산 물건들을 손가락질하며 마치 나를 전염병 환자인 것처럼 피하면서 팔꿈치로 얼굴을 가리고 알 수 없는 말을 내뱉고 도망쳤다”며 “마트에서 서로 물건을 차지하기 위해 가끔 소동이 일어나는데 동양인을 보는 백인들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아 마트에서 물건을 사는 것마저 눈치가 보인다”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이탈리아 슈퍼마켓에 줄선 시민들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연합뉴스
3월 17일부터 15일 동안 지역 내 이동 금지령이 내려진 프랑스 파리에 머물고 있는 유학생 C 씨는 “프랑스는 마스크를 잘 쓰는 않는 분위기라 마스크를 쓰고 나가면 오히려 감염자인 것처럼 눈총을 받는다. 특히 중국인이나 한국인 같은 동양계가 마스크를 썼다가는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가 있다”며 “셰어하우스에서 살고 있는데 아무 증상도 없지만 멤버들이 별안간 방을 빼줄 것을 요구했다. 전에는 한국인이라고 하면 ‘BTS‘를 외치며 좋아해 주던 현지 친구들도 나를 피한다. 이젠 카페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게 됐다”며 막막해 했다.
3월 16일부터 전국에 걸쳐 이동제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 스페인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 스페인 출장 중에 발이 묶인 여성 D 씨는 거리에서 백인 남성들이 자신에게 기침을 하면서 ‘코로나~코로나~’라고 소리치며 욕설을 퍼붓는 동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그는 “그 일이 있은 후로 무서워서 외출을 꺼리게 됐는데 산책하러 거리에 나가는 것도 두렵다”고 털어놨다.
올해 2월 한국 성지순례팀이 다녀가면서 첫 감염자가 나타난 이스라엘에서도 한국인에 대한 위협이나 조롱이 심하다고 한다. 3월 14일 기준 200여 명의 확진자가 나온 이스라엘은 3주 동안 모든 학교와 식당, 영화관 등의 다중이용시설을 폐쇄했지만 막상 거리에 마스크를 쓴 사람은 드물다고 한 현지 교민이 전했다. 그는 “길에서 한국인이 지나가면 의도적으로 피하거나 갑자기 입을 가리기도 하고, 다가와서는 ‘코레아! 코로나!’ 라고 하며 욕을 하는 일이 늘었다”며 불안한 기색을 비쳤다.
유럽과 북미 등지에서 한국인에 대한 무분별한 조롱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SNS 여행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을 통해 해외 체류 중인 교민과 유학생, 여행자들이 인종차별을 당하는 사례가 속속 전해지고 있다. 사진=유튜브 캡처
#가짜뉴스 판치며 유튜브에도 억울한 사례 올라와
유튜브에서도 한국인이 조롱을 당하거나 인종차별을 당하는 듯한 영상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 채널에서는 미국의 한 흑인 래퍼가 한국인 할머니를 향해 손소독제를 뿌리자 할머니가 놀라 도망을 가는데도 계속 낄낄거리며 조롱하는 영상이 올라오기도 했다. SNS의 각종 영상과 글은 한국인이나 동양인이 여러 명일 때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전했다.
해외 교민과 유학생들은 코로나 감염에 대한 두려움보다 현지의 ‘코리아 포비아’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다고 토로하고 있다. 이는 과거 IS(Islamic State,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에 의해 중동 스타일의 외모는 곧 이슬람이고 이슬람은 곧 IS라는 그릇된 인식이 생겨 이슬람 포비아로 이어졌던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는 공포증을 뜻하는 포비아(Phobia)를 특정한 물건, 환경, 또는 상황에 대해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피하려는 불안장애의 일종으로 정의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예방의학과 교수는 “공포와 혐오의 일종인 포비아가 공포 대상을 조롱하거나 위협하는 방식으로 돌출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 심리 전문가는 “원인과 치료법을 알 수 없는 감염병에 대한 사람들의 불안과 스트레스가 엉뚱한 방향으로 표출되고 있다”며 “고립도가 심해질수록 이런 현상은 더 극명하게 나타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또 “마트 사재기 역시 불안감을 달래려는 심리로 휴지가 먼저 동나버리는 현상은 가짜뉴스 때문이기도 하지만 커다란 물건을 쌓아놓음으로써 안정을 찾으려는 심리적 보상책”이라고 진단했다.
유튜브에서도 한국인이 조롱을 당하거나 인종차별을 당하는 듯한 영상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 채널에서는 미국의 흑인 래퍼가 한국인 할머니를 향해 손소독제를 뿌리자 할머니가 놀라 도망을 가는데도 계속 낄낄거리며 조롱하는 영상이 올라오기도 했다. 사진=유튜브 캡처
확진자가 늘고 있는 호주와 뉴질랜드도 외국인 입국 시 권고되는 자가격리 조치를 어길 시 벌금과 구금형에 처해질 정도로 엄격한 법률적 규범까지 만들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이들 나라에서 한국행 항공 결항 등으로 인해 발까지 묶이게 된 여행자와 유학생도 상당하다.
호주 유학생 E 씨는 3월 12일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려던 차에 총을 든 공항경찰에게 구금되는 일까지 겪었다. 한국행 직항이 끊겨 태국을 경유하는 항공권을 구매했으나 태국 비자가 없다는 이유로 한동안 태국 공항에 잡혀 있었다고 한다. 그는 “한국인에게 평소 태국이 무비자였던 터라 별다른 의심 없이 태국행 비행기를 탔던 것인데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어떤 특별 조치들이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유도 모른 채 공항에서 몇 시간 동안 구금되어 있다가 겨우 풀려났다”고 말했다.
태국 역시 3월 18~31일까지 잠정적으로 모든 식당, 클럽, 마사지숍 등 대부분의 다중이용시설 문을 닫기로 한 상태라 사실상 여행객의 입국이 거의 없고 외국인은 서둘러 자국으로 떠나는 상황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국적을 불문하고 외국인에 대한 입국금지와 제한조치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해외에 나가 있는 우리 국민들이 억울한 일을 당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해외에 나가 있는 국민은 외교부 홈페이지를 통해 각국의 출입국 상황을 시시각각 확인하면서 필요할 시 영사관에 도움을 요청할 것”을 권고했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