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실적 추락, 온라인 강화한 마트는 실적 회복…“한번 바뀐 소비패턴 지속” 유통업계 판도 변화 관측
#전략 수정 불가피…봄세일 전전긍긍
최근 대형 유통사들이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사이 세워둔 오프라인 전략을 대폭 수정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불특정 다수가 몰리는 오프라인 유통채널 전체가 기피 대상이 됐다. 그 사이 상반기 매출을 책임질 설 연휴와 졸업, 입학 등 ‘대목’은 일찌감치 물 건너갔고,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오는 5월 가정의 달 특수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대형 유통사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백화점들은 최근 봄 정기 세일 일정을 두고 장고를 거듭했다. 4월 초 강행하기로 했지만 예년과 같은 대대적인 홍보는 자제하고 있다. 내부에서조차 기대보다 우려가 더 크기 때문이다. 세일을 하면 매장을 찾는 인파가 평소보다 늘어날 수밖에 없는 만큼 방역을 강화해도 확진 환자 발생이나 집단 감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그동안 백화점들은 확진 환자 동선에 점포가 포함돼 있으면 곧바로 영업을 중단했다. 환자가 나오면 세일 기간에 백화점 문을 닫아야 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진다.
정부와 지자체가 매일같이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조하는 가운데 백화점 정기 세일 중 집단 감염 사례가 나오면 강도 높은 비난을 피할 수 없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매출 감소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선일 뿐만 아니라 입점, 협력 업체들 사정도 있어 세일 행사를 아예 취소할 순 없는 상황”이라며 “돌발상황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진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대형 유통사들이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사이 세워둔 오프라인 전략을 최근 대폭 수정했다. 사진은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선 시민들의 모습. 사진=고성준 기자
#코로나19 속 백화점-대형마트 실적 엇갈려
대형 유통사들은 코로나19 확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 1월 말부터 최근까지의 전체 유통업계 매출 흐름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오프라인 점포에 발걸음이 끊기고 매출이 줄어든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침체나 불황으로 볼 정도로 소비가 감소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집계를 보면, 지난 2월 주요 백화점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6% 줄었다. 3월 1~2주차 매출은 더 큰 폭으로 떨어져 지난해 대비 41.7% 줄었다. 반면 대형마트들의 매출은 백화점과 달리 줄어들다가 금세 회복했다. 기획재정부가 발간한 ‘최근 경제동향’에 따르면, 지난 2월 대형마트 등 할인점 매출은 19.6% 줄었지만 2월 셋째주부터 증가세가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 창립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았던 이마트의 경우,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보면 지난 1~2월 누계 총 매출액은 2조 6131억 원으로 오히려 지난해보다 4.7% 올랐다. 최근 증권가에서도 이마트의 올해 실적 개선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같은 오프라인 채널에서 정반대 결과가 나온 이유로 온라인 쇼핑이 꼽힌다. 백화점과 달리 대형마트는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식료품과 생필품을 중심으로 온라인 쇼핑 마케팅을 확대했다. 대형마트 점포 방문자는 줄었지만, 온라인몰 주문이 그보다 더 늘어나 전체 매출 감소가 다소 상쇄되고 있다는 것이 대형마트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실제 신세계 SSG닷컴의 2월 18일~3월 18일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1% 늘었다. 주문 마감률도 코로나19 사태 이전 80%대 초반에서 지난 2월을 기준으로 전국 평균 99.8%까지 높아졌다. SSG닷컴은 ‘쓱배송’ 처리 물량을 20% 늘렸고, 새벽배송 처리 물량도 50%까지 확대했다. 롯데마트 역시 비슷한 기간 롯데마트몰 배송 주문 건수가 51.4% 증가했다. 롯데마트는 점포별 배송인력을 최대한 가동하고 차량을 증차했다. 홈플러스는 코로나19 영향이 본격화된 이후 온라인몰 매출만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60%가량 늘었다.
#“잠깐 스쳐 지나가는 일 아니다”
유통업계에선 온라인 쇼핑 주문 확대가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잠깐 스쳐 지나가는 ‘특수한 일’에 그치진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소비자들이 물건을 구매를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소비 방식이 달라졌고, 감염병 확산이 기폭제가 됐다는 분석이다. 최근 한 대형 유통사 내부에선 “한번 바꾼 소비패턴이 금방 바뀌진 않을 것“이라며 ”침체나 불황이 아닌 오프라인 사업의 처참한 한계가 확인됐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유통업계 판도가 당초 예상보다 빨리 급변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실제 이번 코로나19의 최대 수혜자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커머스 업체 쿠팡은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사세를 크게 불린 경험이 있다. 쿠팡맨과 로켓배송 등을 앞세워 공격적인 영업 전략을 펼치고 있던 쿠팡은 메르스 감염 위기가 높아진 당시 온라인 쇼핑에 익숙지 않았던 세대를 흡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5년 전까지만 해도 대형 유통사가 시장 주도권을 쥐고 있었지만, 현재는 이커머스 및 온라인 쇼핑 업체의 수와 영향력이 가파르게 커졌다. 이들 업체는 최근 몰려든 주문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특수를 누리는 중이다. 코로나19 사태는 메르스 때보다 더 장기화될 전망이 지배적이다. 온라인 쇼핑 빈도와 규모가 수직 상승세를 보이는 만큼 바이러스 확산이 가라 앉더라도 온라인 쇼핑이 일반적 소비패턴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만큼 오프라인 점포의 수익성 회복은 더뎌질 수밖에 없다.
올해 대형 유통사들의 온라인 사업 전환에 속도가 더 붙을 것이란 관측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최근 롯데는 오프라인 점포 30%를 줄이겠다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예고했고, 계열사 통합 ‘롯데온’ 출범을 앞두고 있다. 구조조정은 3~5년간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롯데온은 2023년까지 매출 20조 원 달성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신세계와 이마트 역시 지난해부터 온라인 사업 관련 투자를 큰 폭으로 늘리고 있다. 특히 이마트는 기존 점포 30%를 리뉴얼하고 전문점 사업 개편 등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미 대형 유통사들은 조정기에 접어들었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기존 로드맵을 일부 수정해 체질 개선에 속도를 더 붙일 수 있다”며 “업계에선 역대 최악의 해로 기록되겠지만, 반대로 시장 판도가 바뀌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