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발주자 투자여력 충분, 신규 아울렛 입지도 좋아…체험형 ‘제3의 공간’ 차별화 성공이 관건
오프라인 매장의 ‘다운사이징’ 추세에서 현대백화점그룹만 몸집을 키우면서 그 이유에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지난 2월 20일 개장한 서울 동대문의 현대백화점면세점 2호점. 사진=연합뉴스
현대백화점이 프리미엄아울렛과 백화점 등 3곳 출점을 앞두고 있다. 오는 6월과 11월 각각 프리미엄아울렛 대전점(5만 3586m²)과 남양주점(6만 2150m²), 2021년 1월 여의도 파크원 현대백화점(8만 9100㎡)을 개장한다. 경기도 화성 동탄과 충북 청주에도 임차 형태로 아울렛 출점을 검토 중인데 임차로 들어갈 건물이 완공되지 않아 시기는 미정이다.
면세사업도 지난 2월 20일 서울 중구 두산타워 내에 2호 시내 면세점을 개장하면서 1호점 강남 무역센터점에 이어 강북 지역까지 세를 확장했다. 현재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면세점 사업권 DF7(패션‧잡화) 구역 입찰에 롯데‧신라‧신세계면세점과 함께 뛰어들어 경쟁 중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아울렛 시장이 포화상태이긴 하지만 입지가 좋고 다른 아울렛이 들어서지 않은 수익성 있는 지역에 출점하고 있다”며 “대중교통으로 고객들이 언제든 편하게 올 수 있는 접근성 높은 곳들 위주”라며 “면세사업도 바잉파워를 높여 상품 매입 단가를 낮추고 매입량을 늘리는 동시에 인력 효율성을 높이는 등 전체적인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수익성을 높이고자 투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백화점의 이러한 행보는 경쟁사들과 반대 방향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롯데쇼핑은 향후 3~5년간 아울렛·백화점·마트·슈퍼·롭스 등 매장 718개 중 200개를 정리키로 했다. 신세계그룹도 백화점사업에서 2016년 대구점 개장 이후 5년 만에 2021년 대전점을 출점하지만, 이 외에 추가 출점보다 매장 개편을 통한 내실 다지기에 나섰으며, 계열사인 할인·전문점은 군살빼기에 돌입했다. 2019년에만 이마트 덕이점·서부산점 2곳과 삐에로쑈핑·일렉트로마트·부츠 등 전문점 59개를 정리했다.
현대백화점의 지속적인 출점 이유에 대해 그동안 경쟁사에 비해 투자를 아껴온 데다 아울렛·면세사업 후발주자로서 투자 여력과 필요성이 충분한 덕분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경쟁사들이 매장들을 정리 및 리뉴얼해 내실 다지기에 들어가는 틈을 타 세 확장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현대백화점은 유통 대기업 3사 중 유일하게 마트사업에 뛰어들지 않아 이커머스 공격에 따른 타격이 덜하다. 롯데와 신세계는 대형마트와 슈퍼마켓, 편의점까지 진출해 공격적으로 확장하며 경쟁해왔지만 최근 식품과 생필품 위주 이커머스 시장의 급성장으로 오프라인 사업에서 극심한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온라인 사업부문을 강화해 쿠팡 등과 맞서는 동시에, 점포를 혁신하고 정리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경쟁사들이 마트사업에 뛰어들 때 대열에 합류하지 않고 투자를 아껴오다, 다들 몸집 줄이기에 급급한 지금 홀로 덩치를 키워 점유율 확대를 노리는 전략이다.
박종렬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현대백화점은 다른 유통 대기업보다 투자가 적어 절대적인 점포수가 적다”며 “이마트를 포함한 신세계그룹과 롯데쇼핑은 대형마트를 비롯한 전체 유통채널을 키워왔다면 현대 같은 경우 백화점 위주로 해오다 면세점·아울렛 사업에 후발주자로 뛰어들다 보니 경쟁사들은 줄이는데 현대만 늘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 연구원은 이어 “대형마트나 슈퍼사업에도 진출하지 않아 이커머스 성장에 따른 영향이 상대적으로 덜하다”며 “온라인 사업을 강화하는 경쟁사들과 달리 오프라인에 집중하고 있어 투자하기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롯데와 신세계그룹은 매장을 축소·개편하고 온라인 사업에 힘쓰는 반면 현대백화점은 신규 출점으로 오프라인 채널을 확대하면서, 반대 전략을 펴고 있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2017년 서울 송파구 ‘현대시티몰’ 개장 행사에 참여한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오프라인 소매업 자체 전망은 좋지 않지만 현대아울렛이 입점할 남양주와 동탄, 대전 등은 인구가 증가하는 뜨는 지역”이라며 “들어서는 매장들 입지를 보면 전망이 나쁘지 않다”고 평가했다.
지속된 경기 침체로 아울렛 전망이 긍정적이란 관측도 나온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는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층이 늘어나 아울렛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아울렛이 단순 이월 상품을 파는 할인 매장이 아니라 저가 브랜드를 비롯해 아울렛을 위한 신상품들이 들어오는 공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현대백화점의 오프라인 확장은 미래 산업에 투자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단순한 쇼핑장소가 아니라 주 52시간제로 여가 시간은 늘었지만 미세먼지 등으로 실내 즐길 거리를 선호하는 현대인들이 쉬면서 즐기고 교류할 수 있는 ‘제3의 공간’을 조성하는 개념이라는 것.
제3의 공간은 사회학적으로 가정(제1의 공간)과 직장(제2의 공간)을 벗어나 여가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을 뜻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가 1980년대 ‘제3의 장소(The Third Space)’라는 책을 내면서 제시했다. 다만 신세계와 롯데도 체험형 매장을 늘리고 있다는 점에서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지가 성공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서용구 교수는 “현대백화점의 행보를 매장을 늘려 덩치를 키우는 단순 소매업 경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관광과 힐링, 쇼핑을 융합해 ‘제3의 공간’을 만들려는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의 일종으로 봐야 한다”며 “레드오션인 온라인에 뛰어들지 않고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서 교수는 이어 “다만 모든 백화점들이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기에 경쟁이 치열하고 인구가 감소하는 데다 이커머스의 성장과 넷플릭스 등의 영향으로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며 “경쟁사에는 없는 현대백화점만의 콘텐츠와 지역 맛집 등 특색을 활용하고 이커머스가 줄 수 없는 체험 콘텐츠들을 잘 섞는 것이 관건”이라고 제언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