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청정지 ‘한달 살기’ 장기 투숙객 몰리지만 감염 우려…장류 제조·공간 대여 업체도 ‘호황’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공공도서관이 잇따라 휴관하자 스터디 룸 등 공간대여업체로 향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실물경제 충격이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소비위축의 직격탄을 맞은 쪽은 유통업계다. 2월 백화점과 대형마트 매출은 전년 대비 각각 31%와 20% 급감했다. 대면 접촉을 꺼리는 소비자들의 소비심리가 그대로 드러난 수치다. 1월 시작된 코로나19가 장기전에 돌입하면서 전 분야에서의 경기침체가 불가피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도 수익을 내고 있는 몇몇 업종이 있다. 말 그대로 뜻밖의 호황이다.
된장, 고추장 등 장류 제조업체는 오랜만에 높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 코로나19가 전국으로 퍼지면서 자주 장을 보러 가는 것조차 부담스러워진 사람들이 아예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게 된 까닭이다. 광주에서 온라인 식품판매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이 아무개 씨(43)는 “된장, 고추장 등 장류는 물론이고, 젓갈이나 깻잎장 등 완제품으로 된 밑반찬 주문량이 평소 2.5배 이상은 늘었다. 배송을 제때 보내기 위해 전 직원이 야근에 특근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다. 초반 상승세를 그렸던 매출 그래프가 점차 정체기를 걷고 있어서다. 이는 초반 급증했던 판매량에 소비자들의 사재기 심리가 어느 정도 반영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씨는 “2월 중순에 주문량이 가장 많았고 3월 둘째 주부터 점차 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코로나19 사태 초반에 불안함을 느꼈던 소비자들의 심리가 반영된 것 같다. 언제까지 갈까 걱정이긴 하다”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지갑은 연 곳은 또 있다. 스터디 룸이나 룸카페 등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정해진 시간만큼 공간 전체를 빌릴 수 있는 공간대여업체다. 도서관이나 카페는 불특정 다수와 접촉할 확률이 많지만 공간을 통째로 대여하는 형식의 스터디 룸은 타인과의 접촉 지점이 적다. 원래는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나 비즈니스 미팅, 모의 면접을 앞둔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곳이었으나 개학과 개강이 미뤄진 요즘에는 학생들로 만실이다.
서울시 마포구에서 무인 스터디 룸을 운영하는 유 아무개 씨(46)는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을까 많이 걱정했는데 평일 예약은 오히려 더 늘었다. 대학교 개강이 연기되고 공공도서관도 휴관하는 곳이 많아지면서 공부할 곳을 잃은 대학생들이 늘어난 게 가장 큰 이유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 씨는 “다른 점이 있다면 다인원 예약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 2~4명의 소규모 인원 예약이고 추가 금액을 지불할 테니 독립공간을 원하는 1인 예약손님도 늘었다”고 말했다.
2월 23일 코로나19가 확산되던 시기에도 동해안에 몰린 차량. 사진=연합뉴스
강원도엔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 연일 확진자가 발생하는 다른 지역과 비교해 강원도는 비교적 청정지역으로 손꼽히고 있어서다. 3월 19일 0시 기준 강원도 내 확진자는 30명으로 서울시 282명, 경기도 300명 등 수도권과 비교해 매우 적다. 이런 이유로 주말이면 전국 각지에서 강원도로 코로나19 피난 행렬이 이어진다.
강원도 평창에 위치한 식당의 한 직원은 18일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주말이면 인근 호텔과 펜션이 꽉 찬다. 특히 초등학교 개학이 연기되면서 가족끼리 아예 ‘한 달 살기’ 같은 장기 투숙을 결정한 손님도 더러 있다. 지난주(3월 둘째 주)에는 7월 성수기에나 볼 수 있는 매출을 찍었다”고 말했다. 온라인 카페나 소셜미디어에도 “강원도 장기 투숙을 고민하고 있다”는 내용의 게시글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정작 지역주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15개월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한 30대 초반 여성은 “지역경제도 중요하지만 거주민으로서는 안전이 먼저다. 수도권처럼 음압병동이 많은 것도 아니라서 더욱 조심하고 있다. 주말마다 몰려드는 관광객 중에 무증상 감염자는 없는지, 행여 확진자가 왔다 간 것은 아닐지 노심초사하면서 지낸다”고 말했다. 실제로 2월 15일 충남 지역의 한 확진자가 자전거를 이용해 강원도 평창과 강릉 등지를 여행하던 중 확진 판정을 받은 바 있다.
이 여성은 “우리도 남들처럼 결혼식이나 모임 등 외출 자제하며 똑같이 생활한다. 정작 이곳 주민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한다며 집 앞 바닷가도 못 나가고 있는데 확진자가 적다거나, 관광지라는 이유로 타 지역 관광객이 몰려 화가 난다. 답답한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는 지역 간 이동을 최소화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역주민 김 아무개 씨(27)는 또 다른 고충을 전했다. 김 씨는 “청정지역이라면 지켜줬으면 좋겠다”며 “지난 주말에는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이 약국에 들러 공적 마스크를 사가는 바람에 정작 지역민은 마스크를 사지 못하는 일이 있었다. 몇 차례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지역민들 사이에서는 마스크를 거주 지역 안에서만 구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고 말했다. 강원도청은 3월 6일 공식 소셜미디어를 통해 지역경제활성화를 위한 관광객 유치 게시물을 게재했다가 도민들의 항의를 받은 뒤 삭제한 바 있다.
이 호황세가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일찍이 코로나19 특수를 누렸던 국내 배달대행업 상황은 조금 달라졌다. 확진자가 급격히 늘면서 외부 음식이나 배달대행기사에 대한 염려도 함께 증가한 탓이다. 여기에 불특정 다수와 직간접적으로 접촉해야 하는 배달대행기사들이 먼저 일을 그만두는 변수까지 생기며 식당 운영 자체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자영업자가 늘었다.
앞서 중국이 이와 비슷한 선례를 남겼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1월 음식배달 주문 건수는 크게 증가했다가 2월에는 그 양이 30% 하락했다. 감염 우려와 경기침체가 주원인이었다. 중국 배달 시장이 제자리를 찾은 건 사태가 어느 정도 안정된 3월이 되어서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도 전례 없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했다. 문 대통령은 3월 19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제1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서민 경제의 근간이 되는 중소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도산 위험을 막고 금융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첫 번째 조치로 50조 원 규모 특단의 비상금융조치를 내린다”고 밝혔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