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 변동 가능성 속 FI와 풋옵션 분쟁…‘배당’으로 FI 달래고 ‘소송’으로 매입가 낮추기 분석
재무적 투자자인 어피니티 컨소시엄과 분쟁 중인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 사진=일요신문DB
신창재 회장은 당기순이익의 30%에 육박하는 배당을 통해 두둑한 현금 보따리도 챙기게 됐다. 교보생명은 지난 3월 27일 주주총회를 열고 2019년 결산배당으로 보통주 1주당 1500원, 총 1537억 5000만 원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1주당 배당금은 1500원으로 전년 5000원 대비 70% 줄었다. 1주당 배당금은 줄었지만 주주가 받는 배당금은 늘었다. 지난해 주식 액면분할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보생명은 지난해 액면가 5000원이던 주식을 1000원짜리 5주로, 5분의 1 액면분할을 단행했다. 이는 향후 교보생명을 상장할 때 주당 공모가를 낮춰 소액주주들의 유입을 유도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배당총액은 지난 2년간 배당액이 1000억 원 수준이었던 점과 비교하면 50.0%나 증가한 액수로, 사상 최대 규모다. 이에 따라 배당성향(당기순이익 중 주주에게 나눠준 배당금의 비율)도 전년 21.1%에서 29.5%로 높아져 역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교보생명은 2018년 결산 때 처음 배당성향 20%를 넘은 지 1년 만에 30%에 육박하게 됐다. 금융권은 교보생명의 이 같은 화끈한 배당잔치의 이면에는 신창재 회장의 경영권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고 있다. 풋옵션 행사를 두고 신 회장과 분쟁 중인 FI 어피니티 컨소시엄을 의식한 결과라는 것이다.
어피니티컨소시엄은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IMM프라이빗에쿼티·베어링PEA·싱가포르투자청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교보생명 지분 24.01%를 보유하고 있다. FI는 2012년 대우인터내셔널이 갖고 있던 교보생명 지분을 1조 2054억 원에 인수하면서 2015년 말까지 교보생명의 기업공개(IPO·상장)가 이뤄지지 않으면 투자금 회수를 위한 풋옵션(지분매수 청구권)을 행사하겠다는 조항을 넣었다. 그런데 교보생명 IPO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2018년 말 풋옵션을 행사했다.
어피니티 컨소시엄이 제시한 가격은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의 감정평가에 따른 주당 40만 9000원이다. 하지만 신 회장은 풋옵션 행사가격을 20만 원대라고 주장했다. 양측의 입장이 크게 갈리면서 IPO는 무기한 연기됐고, 막대한 자금이 묶이게 된 어피니티 측은 국제상업회의소(ICC)에 교보생명을 제소해 중재 절차를 밟고 있다.
신 회장은 해결방안으로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을 통한 유동화안 △FI 지분의 제3자 매각안 △IPO 이후 차익보전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어피니티 측은 “구체적인 내용이 없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면서 소송을 통해 결판을 내겠다는 입장이다.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교보빌딩. 사진=이종현 기자
어피니티 측은 ICC 제소와는 별도로 지난 3월 18일에는 우리나라에서 대한상사중재원에 소송을 내 교보생명과의 본격적인 법정분쟁에 돌입했다. 단심제로 법원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중재원의 평균 중재 기간이 7개월인 것을 고려하면 이르면 올해 결론이 나올 전망이다.
만약 ICC와 중재원이 어피니티의 손을 들어줄 경우 신 회장은 경영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당장 24%에 이르는 지분을 갖고 있고, FI들이 중재원 판정을 근거로 신 회장 지분 33.78%를 압류하는 조치를 취하는 등 강수를 둘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은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할 때 교보생명의 파격적인 배당정책은 다분히 어피니티 측을 달래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배당을 통해 어피니티컨소시엄이 챙겨가는 현금은 360억 원에 달한다. 신 회장은 중재원 제소가 있은 직후 “파국은 피해야 하는 만큼 언제든지 협상에 임할 것”이라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어피니티 측 지분 매입을 위한 사전정지 작업에도 들어갔다. 교보생명은 이번 갈등의 시발점이 된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을 ‘풋옵션 가격산정 기준을 위반했다’며 미국 회계감독위원회에 고발했다.
교보생명은 지난 3월 31일 이 같은 사실을 공시하면서 “만일 ICC 중재판정부가 어피니티컨소시엄 주장을 모두 수용해 신 회장에게 주당 40만 9912원에 매수하라고 판정하고 최대주주가 충분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는 상황이 동시에 발생할 경우 지배구조의 변동 가능성이 있는 특정거래에 해당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소송은 교보생명이 신 회장과 FI 간 풋옵션 분쟁으로 지배구조가 변동될 가능성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파장을 불렀다. 교보생명은 2018년 10월 FI 측이 풋옵션을 행사한 이후 신 회장 보유 지분 매각을 비롯한 지배구조 변동 가능성을 전면 부인해왔다. 그랬던 교보생명이 지배구조 변동을 언급하며 풋옵션 행사가격을 산출한 딜로이트 안진을 고발한 것은 결국 지분매입 가격을 낮춰 보려는 의도라는 것이 금융권의 해석이다.
교보생명 측의 주장에 따르면 딜로이트 안진은 풋옵션 행사가격을 산출하면서 2018년 6월 기준 직전 1년의 ‘피어그룹’ 주가를 사용했다. 피어그룹은 삼성생명이나 오렌지라이프 등 다른 주요 보험사를 의미한다. 그런데 딜로이트 안진이 사용한 이 1년간 피어그룹의 주가는 당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이에 따라 딜로이트 안진이 이 같은 방식으로 산출한 교보생명 지분 가격은 주당 40만 9912원이 됐다. 반면 신 회장 측이 주장한 매입 원가 24만 5000원과 2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이렇듯 교보생명과 신 회장은 눈앞에 다가온 위기를 막기 위해 만사를 제쳐두고 경영권 방어에 나서고 있다. 신 회장은 1999년 대표이사 취임 이후 22년째 회사를 직접 경영하고 있지만, 올해는 윤열현 사장을 각자 대표이사로 선임해 사실상 회사 운영을 맡긴 상태다. 금융권은 신 회장이 안살림은 윤 사장에 맡기고 자신은 어피니티 측과의 갈등 해결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신 회장은 지금 다른데 신경 쓸 여력이 없을 것”이라면서 “교보생명이 강수를 두기 시작한 것은 신 회장 중심의 지배체제 붕괴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고 귀띔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