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수업 소외·탁아소 폐쇄 ‘박탈감’…부유층 개인 섬·벙커 구매 상담은 급증 ‘대조적’
최근 유럽과 미국에서도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와 자택 격리가 일상화되고 있다. 이런 유례없는 재난 속에서 사람들은 바이러스 앞에서는 나이와 성별은 물론이요, 학력이나 경제력, 혹은 피부색은 의미가 없으며, 모두가 평등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됐다고 입을 모은다. 다른 한편에서는 ‘과연 그럴까’라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오히려 코로나19 확산으로 그 어느 때보다 빈부격차가 몸으로 와닿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상위 1%의 극소수 부자들은 바이러스 감염을 피해 멀리 떨어져 있는 개인 섬으로 도피하는 반면, 서민층은 도피는커녕 생계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매일 일터로 나가야 하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와 ‘가디언’ 등 외신들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오히려 빈부격차가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런 현상은 특히 미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감염병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닥치는 것일까. 불행하게도 미국에선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오히려 빈부격차가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텅 빈 뉴욕 타임스스퀘어 거리. 사진=AP/연합뉴스
어떤 면에서 감염병은 평등하다. 왕세자든 어린이든 누구나 걸릴 수 있고, 그 누구도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예외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육아, 교육, 거주 공간, 심지어 인터넷 접속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에서 계층 간 뚜렷한 차별이 나타나고 있다.
요컨대 뉴욕의 상류층들은 도심 속 아파트를 잠시 떠나 외딴 곳에 임시 거처를 구입해서 은신에 들어갔는가 하면, 텍사스의 몇몇 부자들은 아예 세이프룸과 벙커를 짓는 데 수십만 달러를 쏟아붓고 있다. 이를 가리켜 마이애미의 사업가인 하워드 바바넬은 “이는 ‘화이트칼라들만의 자가 격리 방법’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일종의 ‘유행병 카스트 제도’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상류층들은 개인 휴양지섬으로 숨어 들어갔고, 중산층들은 집에서 하루종일 재택근무를 하면서 아이들을 돌보며 자가 격리를 하고 있으며, 빈곤층은 여전히 일터에 나가 일을 하면서 동시에 육아도 병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맨해튼의 변호사인 캐롤린 리치먼드는 “나는 가진 사람들과 못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렇다고 죄책감을 느끼진 않는다. 다만 내가 운이 좋다는 건 인정한다”고 덧붙였다.
인터넷 사용에도 빈부격차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인터넷 사용자들이 무료 온라인 커리큘럼인 ‘칸 아카데미’ 사이트에 접속해서 보내는 시간은 지난해 이맘때보다 두 배 반 정도 늘었다. 또한 지난 3월, 연방정부는 ‘메디케어’를 통해 이른바 원격의료 서비스에 대한 적용 범위를 넓혔으며, 이로써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원격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모두가 이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인터넷 환경이다. 지난 2017년 연방통신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미국 전체 가구의 30%는 여전히 느린 광대역 인터넷 연결조차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온라인 수업을 진행할 때 나타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모든 학교들이 휴교에 들어가면서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늘었지만, 인터넷 환경이 여의치 않아 수업을 못 듣는 빈곤층 학생들도 많은 실정이다.
예를 들어 텍사스주 브라운스빌의 모든 학교들이 휴교에 들어가면서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하자 일부 학생들이 소외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유인즉슨 브라운스빌은 여타 부촌과는 달리 인터넷 접속이 형편없는 곳으로 유명하기 때문이었다. 2018년 전국 디지털통합연합이 작성한 최악의 인터넷 연결 도시 명단 상위에 오른 곳이 바로 브라운스빌이었다.
사정이 이러니 코로나19 사태로 많은 가정들이 서둘러 인터넷 연결을 신청하고 있으며, 그마저도 힘들 경우에는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친척집이나 이웃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다. 11세의 딸을 둔 한 여성은 “학교에서는 늘 곱셈을 배우거나 무언가를 검색해볼 때 유튜브를 찾아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내 딸처럼 좋은 인터넷 환경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딸이 학업에서 뒤처질까봐 걱정된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코로나19가 대유행인 가운데 부유층을 겨냥해 특별 장기 임대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텔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케이프 아룬델 인’은 일주일에 약 2400만 원의 임대료를 지불하면 오션뷰를 자랑하는 객실에서 생활할 수 있다. 사진=케이프 아룬델 인 홈페이지
인터넷 접속 외에도 빈곤층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또 있다. 탁아소가 문을 닫자 집에서 아이를 돌보면서 일을 병행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한 가정이 늘고 있는 것이다. 뉴저지에 거주하는 달린 다그린은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요양원으로 출근하는 길에 22개월 된 아들을 탁아소에 맡기곤 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탁아소가 폐쇄되자 하는 수 없이 일을 쉬는 날이 많아졌고, 그 결과 실직 위험에 처해 있는 상태다.
중산층은 중산층대로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중산층들은 자신들보다 더 부유한 상류층을 바라보면서 허탈해 하고 있다. 맨해튼의 부촌인 어퍼 이스트사이드에 살고 있는 프리랜서 텔레비전 프로듀서인 데브 휴버만은 “난생 처음으로 나보다 더 부자인 친구들과의 갭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들의 절반이 이미 다른 집을 얻어 피신했다고 말하면서 “나도 필사적으로 도시를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다른 집을 임대할 금전적인 여유가 없다”며 씁쓸해 했다.
실제 뉴욕의 부유한 시민들은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하자 서둘러 짐을 싸서 비교적 인구밀도가 낮은 롱아일랜드나 햄튼 등으로 몸을 피하기 시작했다. 가족과 함께 브루클린 파크슬로프에서 이스트 햄튼에 있는 별장으로 몸을 피한 조 빌먼은 “떠날 능력이 없는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죄책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우리 가족은 스스로 격리를 하는 게 더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에는 뒷마당도 있고 애들은 자전거도 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처럼 아직까지 적어도 햄튼에서는 코로나19의 공포는 없는 듯하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도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평온하며, 심지어 지역의 테니스 강습소는 “코치가 계속해서 일대일 레슨을 하고 있다”며 광고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전염병 기간 동안 사랑하는 가족들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기꺼이 많은 돈을 쓰려는 부유층을 겨냥한 특별 장기 임대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텔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메인주 케네벙크포트의 ‘케이프 아룬델 인’의 저스틴 그라임 경영 책임자는 “4월 한 달 동안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1만 9500달러(약 2400만 원)의 임대료를 지불하면 오션뷰를 자랑하는 객실에서 생활할 수 있다. 매주 청소를 해주는 것은 물론이요, 클럽하우스 라운지에서 모든 식사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원할 경우에는 일회용 용기에 담긴 식사를 방으로 배달시켜 먹을 수도 있다.
뉴욕주 핑거레이크에 있는 ‘윌리엄슨 에스테이츠’의 경우에는 아예 외딴 곳에 위치한 집 한 채를 임대로 내놓았다. 침실만 다섯 개인 이 저택의 하룻밤 숙박료는 800달러(약 98만 원)다. 이런 단기 저택 임대 예약 건수는 3월 중순 이후부터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단기 임대 전문 플랫폼인 ‘게스티’의 오메르 라빈은 “고객들이 예약하고 있는 대부분의 집은 대도시 외곽에 위치해 있다. 가령 허드슨 밸리, 캣츠킬스, 소노마, 나파, 덴버 근처의 시골 지역이 특히 인기 있는 지역이다”라고 소개했다. 라빈은 “근래 들어서는 대부분 2~3주일씩 예약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심지어 어떤 고객은 두 달을 예약하기도 했다”며 놀라워했다.
아예 멀리 떨어진 외딴 섬으로 피신하는 1% 상류층들도 있다. 가령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키아와섬이 그렇다. 이 섬은 50만 달러(약 6억 원)부터 시작해서 2000만 달러(약 240억 원)까지 하는 고급 저택들이 즐비한 곳이다. 코로나19 유행으로 키아와섬 내 골프클럽 등 모든 편의시설은 문을 닫았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골프를 치거나 자유롭게 외출하고 있다.
오히려 유행병을 두려워하고 있는 쪽은 섬주민들이다. 혹시나 바이러스가 퍼질지 모른다는 공포심 때문이다. 이에 지역 주민들은 급격히 밀려오는 이주민들을 경계하면서 최근 도시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은 14일 동안 의무적으로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따라 지역 당국은 도시 사람들이 섬으로 이주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해변가에 위치한 햄튼 지역사회의 관리들은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에게 서한을 보내 뉴욕 시민들이 이스트엔드로 이주해 오는 것을 금지하도록 촉구하기도 했다. 사우스올드 타운 감독관인 스콧 러셀은 “이런 이주 행렬은 우리 주민들을 더욱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이는 간단한 수학 공식과 같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올수록 더 널리 퍼지고, 더 많은 확진 사례가 발생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로드아일랜드의 경우에는 최근 이주해온 뉴욕 시민들을 모두 추적하기 위해 주방위군을 파견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개인섬을 통째로 사들이는 슈퍼 갑부들이 늘고 있다. 여기에는 바이러스로부터 피신할 수 있는 은신처와 장기적인 투자처 등 두 가지 목적이 있다. 사진=글래든 프라이빗 아일랜드 홈페이지
아예 개인섬을 통째로 사들이는 슈퍼 갑부들도 늘고 있다. 한 부동산중개소는 최근 들어 아시아계 부자들 사이에서 바이러스 대유행으로부터 피신할 수 있는 은신처와 장기적인 투자 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투자를 모색하는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개인섬들의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섬은 최대 1억 달러(약 1200억 원)인가 하면, 또 어떤 섬은 5만 5000달러(약 6700만 원)도 하지 않는다.
개인섬 매매를 전문으로 하는 에드워드 드 말레 모건은 지난해 중국 우한에서 처음 코로나19 바이러스 환자가 발생한 이후부터 분명한 상승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개인섬에 관심을 갖고 있던 많은 고객들에게 현재의 상황은 자신과 가족을 위해 안전한 안식처를 찾으려는 결심, 목적, 동기에 불을 붙였을 뿐”이라고 언급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에 본사를 두고 있는 ‘프라이빗 아일랜드’사의 사장이자 벨리즈에 있는 ‘글래든 프라이빗 아일랜드 리조트’의 소유주인 크리스 크롤로브는 “최근 몇 달 동안 특히 카리브해와 중앙아메리카의 섬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고 말했으며, 독일 함부르크에서 50년 동안 개인섬 매매를 전문으로 하고 있는 ‘블라디 프라이빗 아일랜드’의 파하드 블라디는 “지난 수년간 고객들에게 캐나다, 뉴질랜드, 스코틀랜드, 카리브해, 몰디브의 섬들을 판매해왔다. 근래 들어서는 아시아계 고객들의 문의가 늘어나고 있다. 이 가운데 파나마 제도의 섬은 비자 발급이 용이해 중국 고객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다”고 소개했다.
아예 지하로 숨어버리는 부자들도 있다. 텍사스의 벙커 제조업체인 ‘라이징 S’의 게리 린치 총지배인은 “최근 제작 주문이 밀려들어서 열다섯 명의 직원을 추가로 고용했다”고 말하면서 “밤에는 전화기를 끄고 잠을 자야 할 정도로 문의 전화가 많다. 이런 적은 난생 처음이다”며 놀라워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어퍼 이스트사이드에 위치한 대형 식품 판매점인 ‘자바스’는 다양한 종류의 간편식들을 정기적으로 고객에게 배달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서비스 이용료는 배송 거리에 따라 300~400달러(약 37만~40만 원) 정도에 달한다. 스콧 골드샤인 총지배인은 “이런 서비스 배달을 받는 고객들에게 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