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지켜야 할 우리 유산 [45] 모두의 깨달음 위해 펼쳐지는 불교 예술의 꽃
영산재는 불교 철학과 음악에 괘불과 같은 미술적 요소가 집약된 종합예술로서 그 빼어난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됐다. 지난 2012년 9월 단양 구인사에서 봉행된 영산재. 사진=연합뉴스
이러한 49재 중 가장 규모가 크고 대표적인 불교 의식으로 영산재(靈山齋)를 꼽을 수 있다. 영산재는 부처가 인도의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하던 모습을 재현한 의식이다. 불교의 철학적·영적 메시지를 담고 있어 영가(영혼)뿐만 아니라 재(齋)에 참여한 모든 중생의 수양과 깨달음을 돕기 위한 의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영산재는 불교 철학과 음악에 괘불과 같은 미술적 요소가 집약된 종합예술로서 그 빼어난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됐다.
영산재는 본래 많은 대중이 참가한 가운데 삼일 밤낮으로 치러지던 대규모의 의식이다. 하지만 현재는 그 규모를 축소하여 하루에 걸쳐 시연되고 있다. 흔히 많은 이가 모여 떠들썩한 상태를 ‘야단법석’이라고 하는데, 이는 불교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야단은 야외에 세운 단을 말하고, 법석은 불법을 펴는 자리라는 뜻으로 영산재처럼 많은 이들이 참가하는 큰 규모의 법요 의식을 이르는 말이다.
영산재 나비춤. 사진=문화재청
영산재는 제단이 만들어지는 곳을 상징화하기 위해 야외에 영산회상도(석가모니가 제자들에게 설법한 모임을 묘사한 그림)를 내다 거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후 불교 음악, 노래와 춤이 어우러진 총 13개의 절차로 진행된다. 첫 번째 절차는 ‘시련’으로 불보살(부처와 보살) 등 신앙의 대상을 절 밖에서 모셔오는 의식이다. 그 다음으로 영혼을 도량으로 맞아들이는 의식인 ‘대령’, 영혼이 생전에 지은 탐(욕심)·진(성냄)·치(어리석음)의 삼독을 씻어내는 의식인 ‘관욕’이 진행된다. 그 후 공양을 드리기 전에 의식 장소를 정화하는 ‘신중작법’을 한 뒤 불보살에게 공양을 드리고 영혼이 극락왕생하기를 바라는 의례가 뒤를 잇는다.
영산재에서는 음식 공양 역시 의식의 하나로 진행된다. 이 가운데 ‘식당작법’은 스님과 일반 대중이 음식공양을 받고 그 보답으로 법공양을 베푸는 대규모 공양의식이다. 사찰 내 모든 대중이 참여하는데, 일상의 공양과 달리 범패(석가여래의 공덕을 찬미하는 노래)와 작법무(불교 의식에서 추는 춤)가 어우러진다. 영산재의 절정은 ‘영산작법’이라 불리는 ‘상단권공’ 의식이다. 즉 불보살에게 공양을 올리는 절차로 영혼의 극락왕생을 빌고,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불법의 가르침과 신앙심을 고취시켜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의식이다. 마지막으로 신앙의 대상을 돌려보내는 봉송 의례를 하는데, 제단이 세워진 곳에서 모든 대중이 열을 지어 돌면서 독경 등을 행한다. 봉송 의례에서도 범패를 비롯해 바라춤, 법고춤, 나비춤과 같은 불교 의식 무용이 거행된다.
영산재 바라춤. 사진=문화재청
불교 유산인 영산재가 언제부터 치러져 왔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조선시대에 편찬된 ‘작법귀감’이나 ‘범음집’에 영산재의 구성 내용이 기록돼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이와 같은 불교의식이 성행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영산재는 그 절차와 내용이 까다로워 전수에 어려움이 많은데, 태고종 승려들의 노력으로 그 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1973년 중요무형문화재(제50호)로 지정되고, 1987년에 영산재보존회가 공식적으로 설립되어 서울 봉원사를 중심으로 영산재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승려 김인식(법명: 구해)이 영산재의 범패 전문가(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이며 지공, 벽응, 송암 및 일응이 그 계보를 잇고 있다.
영산재는 오랜 기간 국가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장엄한 불교 의식이자 공동체 의식이 담긴 민족 축제로 펼쳐졌다. 또한 근래에는 국가의 안녕과 군인들의 무운장구를 위해서도 행해지고 있다. 봉원사에서는 지난 20여 년 동안 매년 단오 때 영산재를 열었는데, 2007년부터 6월 6일 현충일에 영산재를 거행하고 있다.
자료 협조=유네스코한국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