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MBC 사람이좋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던 아이, 그래서 늘 주먹이 먼저 나갔던 아이, 반항아 기질이 강한 모범생. 이 모든 수식어의 주인공은 바로 대한민국 최고의 범죄 심리학자이자 20대 국회의원 표창원이다.
어린 시절 정의와 의협심으로 가득했던 소년이었지만 그의 정의감은 늘 싸움으로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 표창원은 우연히 읽게 된 소설 속에서 인생의 멘토인 ‘셜록 홈즈’를 만났다.
침착하게 추리와 논리를 통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소설 속 주인공 셜록 홈즈는 ‘폭력 없이도 정의를 구현할 수 있다’는 인생의 메시지와 함께 소년 표창원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표창원은 “부모님이 늘 강조하셨던 참을성의 필요성을 셜록 홈즈 이야기 속에서 찾았죠. ‘스스로 부끄러워지고 참을성이 있어야만 수사라는 걸 할 수 있구나 참을성이 있어야만 여러 오해와 속임수와 기망의 장치들을 다 헤쳐내고 진실을 밝힐 수 있구나’라는 것을 셜록 홈즈를 통해서 깨달았던 거죠. 폭력이 아닌 방법으로 정의를 구현하는 방법을 깨달았던 거고요”라고 말했다.
셜록을 꿈꾸던 그에게 다가온 대학 입시. 평소 정치외교학과와 신문방송학과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는 친구가 운명처럼 건넨 한 대학 입학홍보자료를 보고 단숨에 진로를 결정했다.
‘조국, 정의, 명예’라는 학훈에 매료되어 경찰대학 진학을 결정한 표창원. 어렸을 적부터 남달랐던 정의감이 마침내 경찰이라는 결실로 처음 뿌리내린 순간이었다.
경찰대학 졸업 이후 꿈에 그리던 경찰이 된 표창원은 한국의 셜록이 되길 꿈꿨다. 하지만 당시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화성 연쇄 살인 사건’과 본인이 수사를 담당한 ‘1992년 대입 학력고사 문제지 도난 사건’이 미제로 남으며 실패의 쓴맛을 보게 된다.
국내 수사력의 한계를 절감한 그는 안정된 생활을 뒤로하고 유학의 길을 선택한다. 셜록의 나라 영국에서 범죄수사 전문교육을 받으며 석사와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고 돌아온 그는 경찰대 교수로 자리 잡는다. 대한민국 최초의 경찰학 박사로 불리며 분야 최고의 전문가가 된 그는 국내에서 가장 지명도 있는 범죄 심리학자로 활동하며 대중에게 표창원 이름 세 글자를 각인시켰다.
그러나 그에게 다시 한번 인생의 변곡점이 찾아온다. 2012년 ‘국정원 여론조작 의혹사건’으로 경찰의 소극적인 수사를 비판하는 표창원의 발언이 화제가 되자 그가 몸담고 있는 경찰대학에 비난이 집중된 것.
본인의 소신으로 인해 조직이 공격을 받게 되자 그는 공개 사직서를 제출하며 13년간 몸담았던 경찰대학 교수직을 내려놓기로 결정했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안정된 직업을 포기해야 하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표창원은 “당시 경찰청, 경찰대학 홈페이지에 저에 대한 파면 요청이 올라갔어요. 경찰대학은 업무 마비 상태가 되고 학생들이 영향을 받고 있는 상태여서 그걸 견디기가 힘들었어요. 그렇다고 침묵을 지키는 건 저 다운 게 아니거든요. 거기서 제가 내려야 할 선택은 경찰대 교수직을 버리는 거였어요”라고 말했다.
당시 경찰 동료 김정섭 씨는 “국립 경찰대학교수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겠다고 교수직을 그만둔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죠. 우리는 못해요. 표창원이니까 했죠”라고 말했다.
경찰대학교수 사직 후 표창원은 정계 입문이라는 행보로 다시 한번 변화를 선택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의 인재영입 1호로 지목되며 정계에 진출한 그는 2016년 20대 총선에 출마했다.
인간 표창원의 새로운 도전이기도 했다. 과반이 넘는 득표율로 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국회에 입성한 표창원은 ‘공수처 법’, ‘형사소송법 개정’, ‘해인이 법’ 등의 제정에 힘썼다.
임기 동안 100%에 가까운 국회 출석률을 자랑하며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한 그는 사적인 모임도 마다하며 4년 내내 국정에만 집중했다. 때로는 사이다같이 시원한 발언으로 국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기도 하고 국민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과 함께 눈물 흘리며 함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초선 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인지도와 지지도가 높았던 표창원은 재선이 유력했던 후보 중 하나였다. 그러나 박수 칠 때 떠나라고 했던가, 그는 돌연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해 다시 한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주진우 기자는 “표창원 교수님의 불출마에 대해서는 다들 되게 충격받았어요. 누구보다 잘했고 의정 활동할 때 같이 이야기도 하고 생각도 나누고 그랬는데 갑자기 그만둔다고 해서 안쓰럽더라고요 ‘마음고생 많이 하셨구나’하고”라고 말했다.
표창원은 “‘국회의원으로서의 내 역할은 여기까지다’라는 마음이 가장 커요. 재선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달려오다 보니까 남들과 다른 말과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거죠. 4년 내내 열심히 해왔고 그리고 이 4년에서 그치지 않고 더 할 경우를 생각해봤을 때 사회가 정치인에게 요구하는 것에 따라 내가 바뀌어 가고 적응해 나갈 게 너무 명확히 보였어요. 그래서 이건 저랑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나다운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마지노선은 여기까지다 생각한 거죠”라고 말했다.
불출마 선언 이후 국회의원 표창원의 삶에는 크고 작은 변화들이 생겼다. 운전기사 없이 직접 운전을 해 국회로 출퇴근을 하고 새로 올 당선자에게 넘겨줘야 하는 사무실 짐도 직접 비운다. 남은 의정 활동 또한 성실히 해나가며 새로운 시작을 위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경찰에서 교수로, 교수에서 국회의원으로 쉼 없이 달려온 그의 인생. 이제는 이름 앞에 ‘자연인’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그는 하고 싶은 일도 많다. 젊은 날의 체력은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배 나온 중년의 아저씨가 된 표창원이지만 마음만큼은 꿈 많은 청춘이다.
요리 배우기, 운동하기, 글쓰기처럼 거창하지는 않지만 그동안 일에 치여 누리지 못했던 평범한 일상의 소소함을 누리며 살고 싶다는 것이 자연인 표창원의 바람이다.
영원한 셜록을 꿈꾸는 표창원, 정치인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한 표창원의 마지막 국회 여정과 새로운 삶을 위한 도전을 함께한다.
표창원은 “자유인이라고 하더라도 사회나 국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면 모범시민이라고 할 수 없겠죠? 그래서 저는 모범시민이 되고 싶어요. 시민으로서 사적인 자유를 만끽하고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사회적 공헌을 하고 싶고요. 대한민국의 셜록 홈즈로서 제 자리와 위치를 구축하며 열심히 제2의 인생을 살아갈 생각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