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직원은 회사원 혹은 자영업?
눈에 띄는 점은 모금액 상위권(10위 이내) 의원들 중 한나라당 의원이 2명에 불과해 2008년과 비교하면(상위 10명 중 한나라당 8명) 후원금의 ‘여당 쏠림’ 현상이 완화됐다는 사실. 1위를 기록한 이는 민주당 박지원 의원(2억 2135만 원)이었고 민주노동당 권영길(2억 3644만 원) 홍희덕 의원(1억 9951만 원), 민주당 박상천(1억 9366만 원) 박병석 의원(1억 8911만 원)이 뒤를 이었다. 모금액 상위권 의원들의 경우 대다수 개인당 모금 한도액을 초과한 상황. 중앙선관위 측은 모금 한도액을 넘긴 의원들의 경우 향후 모금 과정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만약 후원금이 연말에 몰리면서 후원금 계좌를 한도액에 맞춰 닫지 못하는 등 ‘고의성’이 없는 경우라면 다음해로 이월되게 된다고 한다.
현행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연간 300만 원을 초과해 기부한 사람들은 이름 생년월일 주소 직업 전화번호 등을 밝히도록 되어 있다. 지난해 300만 원 초과 기부 건수는 2000여 건. 그렇다면 과연 어떤 이들이 국회의원들에게 ‘고액’ 후원금을 냈고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정치인에 대한 순수한 지지 목적으로 후원금을 낸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개중에는 ‘대가성’ 후원금을 낸 것으로 의심이 가는 이들도 있었다. <일요신문>은 후원금을 낸 이들 중 눈에 띄는 인사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그들이 후원한 ‘이유’에 대해 물어보았다.
“동료끼리 도와야”
후원금을 낸 이들 중에는 국회의원 보좌관이 자신이 모시고 있는 의원에게 냈거나 국회의원이 직접 자신의 이름으로 돈을 낸 경우도 있었다. 한때 같이 ‘금배지’를 달았던 전직 의원들이 동료였던 의원들에게 후원금을 낸 사례도 적지 않았다. 17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이었던 고희선 농우바이오 대표이사는 한나라당 정미경 원유철 의원에게 각각 500만 원씩 기부했다. 고희선 대표는 후원 이유에 대해 “특별한 것은 없고 힘든 일을 하고 있으니까 도움을 주고 싶었다. 정미경 의원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는 걸 알고 있고 원유철 의원과는 20년 넘게 알고 지내왔다”고 말했다.
신천개발 대표인 구천서 전 의원 역시 한나라당 조전혁 최구식 의원에게 각각 500만 원씩 후원해 눈길을 끈다. 신천개발은 지난 대선 당시 대운하 관련 ‘이명박 테마주’로 주식시장에서 각광받던 회사. 구천서 전 의원이 이명박 대통령과 대학동문이라는 이유로 주가가 급등했다가 대선 이후 급락하는 등 널뛰기 주가를 기록했던 신천개발은 개미투자자에게 손해를 준 대표적 테마주이기도 하다.
민주당 이윤석 의원의 경우 자신의 이름으로 500만 원을 후원해 눈에 띄었다. 이윤석 의원 측 설명에 따르면, 후원회 통장으로 들어온 후원금을 정치자금 통장으로 옮겼다가 다시 ‘역기부’를 했다는 것. 이윤석 의원실 관계자는 “통장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이윤석 후원회’ 통장이고 하나는 ‘정치자금 이윤석’ 통장이다. 후원금이 보통 연말에 들어오는데 1월에 지역구 사무실 인건비 등 쓸 돈이 많아 후원금을 정치자금 통장으로 모두 이체해 사용했었다. 이후 후원회 통장에 돈이 없기에 다시 이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후원금의 출처는 ‘소액 후원금’들이었다는 것.
그런가 하면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은 같은 당 소속인 정태근 강용석 의원에게 500만 원씩 후원했다. 정두언 의원 측은 “의원이 직접 회계 책임자에게 지시해 후원한 것이다. 후원금이 많이 모이는 경우 적게 모이는 의원에게 ‘십시일반’ 도울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의원’ 동료는 아니지만 아나운서 시절 동료였던 유정현 한나라당 의원에게 500만 원을 후원한 김병찬 아나운서도 눈에 띄었다. 김병찬 아나운서는 “후배 아나운서였으니까 도와준 것이다. 워낙 선한 사람이어서 정치권에 들어가면서 시행착오는 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본분을 지켜가며 잘하고 있는 것 같다”며 후원 이유를 밝혔다.
신분 숨기기 백태
고액 후원금을 낸 이들 중 상당수는 금전적 여유가 있는 기업인, 즉 회사 대표나 임원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이름이 노출되거나 후원한 사실이 공개적으로 알려지는 것에 대해 불편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후원자들의 기본적 신상을 기재하는 란에 주소와 전화번호를 다르게 적거나 직업을 다르게 적는 이들도 상당수 있었다. 일부 후원자들은 전화를 건 기자에게 불쾌감을 드러내며 전화를 끊어버리기도 했다.
한나라당 박영아 의원, 민주당 양승조 의원, 자유선진당 변웅전 의원에게 각각 500만 원, 400만 원, 600만 원을 후원한 한 치과원장의 경우 직업란에 ‘의사’ ‘자영업’ ‘회사원’으로 각각 다르게 기재해 눈에 띄었다. 국회의원 1인당 후원금 한도가 500만 원으로 정해져 있는데 변웅전 의원에게는 300만 원씩 두 차례 후원해 한도액을 넘기기도 했다. 이 후원자는 “직원들을 시켜 후원금을 보내라고 했는데 착각을 한 것 같다”며 “평소 교회에도 1억 원 이상 기부하고 있고 대학에도 매년 수백만 원 씩 후원하고 있다. 의원들 지역구도 모두 다르지 않느냐. 당을 가리지 않고 평소 존경하는 의원들에게 후원한 것”이라고 밝혔다.
눈에 띄는 인물 중 한 명은 한나라당 정병국 의원에게 500만 원을 후원한 선병석 전 테니스협회장이다. 선 전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황제테니스 사건’으로 구설에 올랐던 장본인. 지난 2008년에는 재벌가 자제들과 함께 주가조작 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된 전력도 있는 인물이다. 정병국 의원 측은 “선 전 회장이 후원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우리에게만 후원한 것이냐”는 반응을 보였다.
이외에 상당수 기업 대표들이 직업란에 단지 ‘회사원’으로 적어 자신의 신분을 낮춰(?) 표기했다.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에게 500만 원을 후원한 신달순 센트럴시티 대표이사와 윤동한 한국콜마 대표이사 모두 ‘회사원’으로 기재했고, 윤석만 포스코건설 회장도 ‘회사원’으로 자유선진당 변웅전 의원에게 400만 원을 후원했다. 이복영 삼광유리공업 대표이사도 각각 ‘자영업’ ‘회사원’으로 주소와 전화번호를 다르게 적어 민주당 김진표 의원과 문희상 의원에게 500만 원씩 후원했고,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이사 역시 ‘회사원’으로 한나라당 유정현 의원에게 500만 원을 후원했다.
눈도장 찍기 여전?
지방의회 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이 자신의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 ‘지연’ 때문에 후원하거나 지방선거를 앞두고 ‘눈도장’을 찍기 위해 후원을 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최국진 고양시의회 의원은 지역구인 고양시 일산동구의 한나라당 백성운 의원에게 500만 원을 후원했고, 이위준 부산 연제구청장도 열한 차례에 걸쳐 40만 원씩 모두 440만 원을 한나라당 박대해 의원(부산 연제구)에게 후원했다. 박대해 의원은 김홍재 연제구 구의원으로부터도 400만 원을 후원받아 눈에 띄었다. 이외에 한나라당 현기환 의원(부산)은 박홍주 부산시의원으로부터 500만 원을 후원 받았고 최병국 의원(울산 남구갑) 역시 김춘생 전 울산시의원으로부터 500만 원을 후원받았다. 김춘생 전 시의원은 울산의 다른 지역구 의원들(안효대·강길부 의원)에게도 고루 고액 후원금을 보냈다.
민주당 신장용 부대변인은 ‘회사원’으로 기재해 같은 당 이윤석 의원에게 500만 원을 후원했는데 신 부대변인은 민주당 수원시장 예비후보로 출마한 상황. 신 후보는 “이윤석 의원은 지난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전남 무안·신안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제분(김홍업 전 의원)과 싸워 이길 정도로 지역구 관리를 잘하시는 분이다. 미래가 촉망되는 정치인이라 생각해 후원했을 뿐 다른 이유는 없다. 나도 이런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마음먹고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 김희철 의원에게 500만 원을 후원한 김연동 비서관의 경우 관악구의원의 신분이기도 하다. 김연동 구의원은 “의원님 모르게 후원했다가 이 사실이 알려진 뒤 의원님이 다시 내 통장으로 입금을 하셨더라. 누가 강요를 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내가 따로 사업도 하고 있어 여유가 있어서 도운 건데 돌려받고도 참 죄송스럽다”며 뒤늦게 후원금을 돌려받은 사연을 밝혔다.
그런가 하면 ‘가족’이 후원을 한 경우도 있었다. 남경필 의원은 남동생 남경훈, 남경식 씨로부터 각각 480만 원을 후원받았고, 남경훈 씨는 한나라당 박준선 의원에게도 500만 원을 후원해 눈길을 끌었다.
역시 남 의원의 친척인 남기화 씨도 남경필 의원에게 500만 원을 후원했다. 남기화 씨는 “내가 친척형이 되는데 형제지간이어서 도와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정지선 현대백화점 그룹 회장은 삼촌인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에게 500만 원을 후원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