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인정하고 모두 옷 벗어야”
다음날 정 씨는 전화인터뷰에 응했다. 현재 상황 및 심정에 대해 얘기하면서 그는 “죽고싶다”는 말을 반복했다. 유서까지 미리 써놨다는 정 씨는 최악의 상황에 극단적인 선택까지 고려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실제로 정 씨는 기자와 통화한 다음날 자살을 기도해 병원으로 급히 실려가기도 했다. 다음은 정 씨와의 통화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 현재 어떤 상황인가.
▲ 창살 없는 감옥이나 마찬가지다. 검찰의 압박이 너무 심해 괴롭다. 검찰 지시를 받은 경찰들이 내 소재를 일일이 파악하고 주변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며칠 전에는 경찰 두 명이 아예 집안까지 들어왔다. 가족들이 사색이 된 것은 물론이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잠도 못자고 밥도 먹지 못하고 있다.
― 지금 심정은 어떤가.
▲ 죽고싶은 심정이다. 솔직히 유서까지 써놨다. 판사님이 현명한 판단을 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내가 구금되어버리면 모든 게 끝이다. 그렇게 되면 진상조사위도 소용없다. 신체적인 자유를 박탈당하면 진실은 묻혀버릴 수밖에 없다. 내가 일일이 뛰어다니며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는 증인들을 만나고 검찰과 싸워야하는데 갇혀버리면 끝나는 거 아니겠나. 검찰이 어떤 부류들인지 알기에 그게 가장 두렵다.
― 검찰에게 향응을 제공한 이유는 무엇인가.
▲ 주로 그들로부터 연락이 오면 응하는 식이었다. 인간적인 인연에 의한…. 인지상정이랄까. 그땐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다보니까 어떤 목적에 의한 것이 아니고 친분과 순수한 마음에서였다.
― 상당한 파장을 몰고올 것을 알고서도 폭로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 솔직히 초기에는 인간적인 배신감에서 비롯됐다. 15년 전쯤 회사 일로 상당한 어려움에 처한 적이 있었는데 내게 숱하게 향응을 제공받은 그들은 일순간 안면몰수했다. 사건청탁을 한 것도 아니었건만 전화 한 통 없더라. 이미 5~6년 전부터 폭로를 망설였는데 진실을 알릴 때가 됐다는 판단하에 결심하게 됐다. 검찰 주장대로 이번 폭로는 개인적인 분풀이가 아니라 그들의 도덕성을 지탄하는 것이다. 검찰의 추악한 실체를 알리는 것이 공익을 위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 향응 규모는 어느 정도였으며, 또 향응을 제공받은 이들은 누구며 얼마나 되는가.
▲ 어림잡아도 100억 이상으로 보면 된다. 전·현직 검사, 그리고 지금 변호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합하면 최소 200명이다. 또 아직 밝히지 못한 기가 막힌 얘기들이 너무도 많다. 방송내용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다. 하지만 일부 언론에 알려진 것처럼 언론인 등이 포함됐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 검찰에게 하고 싶은 말은.
▲ 사실을 인정하고 모두 옷 벗어야 된다. 진실을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 검찰의 대응을 보고 느낀 점은.
▲ 내 범법사실을 공포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하려 하는 것을 보고 너무도 어이가 없었다. 전과자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주장에서 나아가 정신병자로 몰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들은 잡범보다 못한 부류로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나쁜 놈들이다.
― 가정이 사실상 파탄지경이라고 했는데.
▲ 풍비박산났다. 우리 가족은 살아오면서 남에게 싫은 소리 한 번 안 듣고 산 사람들이다. 하지만 검찰이 이번 폭로와 무관한 내 범법사실을 공포하는 바람에 나와 가족들의 명예가 완전히 짓밟혔다. 부인이 식음을 전폐하고 이혼까지 요구하고 있다. 내 범법사실이 알려지는 바람에 부인과 세 아들들이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게 되어버렸고 엄청난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 외출은 커녕 사람들을 만나지도 못하고 전화도 일절 받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은 이제 친구도 만날 수 없다며 하소연한다. 내 자신이 당한 고통도 고통이지만 아무 죄 없는 내 가족들까지 죽인 셈이다. 가족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 감출 수 없다.
― 실명이 공개된 2명 외에 추가로 공개할 생각이 있나.
▲ 일단 상황을 지켜본 후에 추가로 공개할 계획이다. 시민단체의 도움도 필요할 것으로 본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