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밀도 개발’ 거주환경·도시경쟁력 악화 초래…용산역 정비창 개발 장기 국가플랜에 배치 논란
지난 8월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서울권역 등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방안’ 합동 브리핑 자리에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왼쪽),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이 앉아 있다. 사진=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등이 지난 8월 4일 발표한 ‘서울권역 등 수도권 주택공급확대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서울권역을 중심으로 신규 주택 13만 2000호와 기존 예정된 물량 등 총 26만 호 이상의 주택을 공급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신규택지 발굴, 3기 신도시 용적률 상향 및 기존사업 고밀화, 재개발·재건축 공공참여 시 용적률 확대 등을 방안으로 내세웠다. 태릉골프장, 용산 미군 반환부지, 정부과천청사, 국립외교원 유휴부지, 서부면허시험장 등이 신규 택지로 발굴될 예정이다.
서울의료원 및 용산역 정비창은 용적률 상향 등을 통해 공급 확대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공기관이 참여하는 공공재건축을 하면, 용적률을 현행 250%에서 500%로 높이고 35층 이하인 층수 규제도 50층으로 완화해주기로 했다.
이번 정책을 두고 정치권과 업계에서는 그 실효성에 의문부호를 단다. 도심 고밀도개발에 따른 여러 부작용을 어떻게 해소할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데, 부동산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니 급박하게 고밀도 주택공급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이유에서다. 도시재생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번 정책은 단기적으로 주택공급이 늘어나는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거주환경 및 도시경쟁력 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우선 일조권과 조망권 침해 우려가 제기됐다. 앞의 관계자는 “최근 경기 과천시에서 단독주택 주민들과 주공아파트단지 재건축조합 측의 소송이 발생했다. 기존 주공아파트는 층수가 높지 않았는데, 재건축으로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바로 붙어 있는 주택단지에서 일조권과 조망권을 침해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며 “용적률과 층수 제한을 무분별하게 풀어주면 서울 내에서도 이런 문제가 연이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교통 문제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물론 정부도 이번 대책의 일부 계획에 대해서 교통개선대책을 내놓기는 했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는 반응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서울의 기존 도로망은 구도심의 저밀도에 맞춰 구축됐다. 갑작스런 개발로 고밀도의 아파트가 들어서면 지금도 혼잡한 지역 교통이 더 혼잡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이라며 “강북 등 지역에서 재개발이 이어지면 서울시에서는 대중교통 등을 통해 교통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장 도로망 자체를 확충할 순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장기적인 국가계획과도 배치되는 대책이라는 비판도 있다. 용산역 정비창 부지가 대표적이다. 정비창 부지는 앞서 2012년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으로 불린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지에 포함됐다. 하지만 본사업이 좌초되면서 시행사와 코레일 간 법적분쟁의 대상이 됐다. 코레일이 지난해 소송에서 승리하며 부지 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살아났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5월 해당 부지에 국제업무지구 시설을 줄이고, 8000가구의 아파트를 함께 공급하는 방안을 내놨다. 이는 서울 한복판에 미니 신도시 하나가 들어서는 규모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정부는 8·4 부동산 대책을 통해 개발밀도를 높여 정비창에 주택을 8000호에서 1만 호로 늘렸다. 미래통합당 한 중진 의원은 이렇게 지적했다.
“정부는 국가의 100년 대계를 고려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미정상회담, 판문점 선언 등을 통해 남북교류협력사업을 강조했다. 북한과 철도를 연결해 북한을 넘어 시베리아횡단철도를 통해 유럽대륙으로 나아가는 구상을 말했다. 이에 따라 용산역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그렇다면 용산역 정비창 부지 등은 국제업무지구를 비롯해 미래 확장성을 대비해 남겨놔야 한다. 당장 주택이 부족하다고 빈 유휴지에 우후죽순 아파트를 지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 주민들은 8월 16일 용산역 앞에서 “정부의 지지율 사수를 위한 임기응변식 정책과 부동산 정책 실패를 주택공급 확대로 돌파하려는 고육책에 용산국제업무지구가 희생돼서는 안 된다”며 “용산국제업무지구를 원안대로 추진하라”고 집회를 개최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비창 부지가 용산역 바로 옆에 위치한 만큼 아파트 등 주택이 들어서면 밤새 오고가는 기차 소리와 진동에 주민들의 건강에도 장기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용산역 정비창 부지. 사진=연합뉴스
정부의 이번 부동산 대책에 대해선 여권에서조차 비판이 나왔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지난 8월 4일 자신의 SNS를 통해 “상암동은 이미 임대비율이 47%에 이른다. 또 임대주택을 지어야 하느냐”며 “서부면허시험장은 총선 때 공공편익시설을 유치하겠다고 공약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청래 의원 지역구에 위치한 서울 마포의 서부면허시험장은 이번 발표에서 신규택지로 발굴됐다.
정 의원은 “내가 문재인 정부의 주택 정책을 반대할 리 있겠느냐”면서도 “주민들과 마포구청, 지역구 국회의원과 한마디 사전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게 어디 있느냐. 국토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하면 따라오라는 방식은 크게 문제가 있다. 당 지도부는 현장의 반대 목소리를 잘 경청하고 대책을 고민하는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정 의원뿐만 아니라 우원식(서울 노원을) 김성환(노원병) 이소영(경기 의원·과천) 의원 등도 공급대책과 관련해 개별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소속의 김종천 과천시장도 정부의 개발 계획에 반대하며 천막을 치고 업무를 보고 있다. 김 시장은 성명서를 통해 “중앙정부는 2012년 정부청사 이전 이후 과천시에 보상이나 자족기능 확보를 위한 어떠한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며 “정부과천청사 유휴지는 광장으로서 과천시민이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이러한 곳에 4000여 호의 대규모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과천시민과 시에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의 발표에 포함된 정부과천청사 부지와 청사 유휴지 내 공공주택 공급계획이 과천시와 사전협의 한번 없이 일방적으로 급작스럽게 발표된 것에 깊은 우려와 실망을 금할 수 없다”며 “정부과천청사는 국가의 주요 국책사업을 위해 중요하게 쓰여야 한다. 정부 주택 공급 계획에서 과천청사 부지와 유휴지를 제외해달라”고 요구했다.
민주당은 부정 의견을 보인 서울시와 과천시 등 지자체를 상대로 세밀한 정책 조율을 통해 이견을 해소하고, 부동산 시장 안정화 후속 대응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김태년 원내대표도 지난 8월 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은 원활하게 주택 공급 방안이 진행되도록 지방정부와 긴밀히 협의하겠다”며 “당과 중앙정부, 지방정부가 참여하는 주택공급 정책협의회를 구성, 공급문제를 밀도 있게 협의하겠다”고 전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