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파워’ 핵폭탄 수준
▲ 국방부가 대북 심리전 재개를 결정한 가운데 지난 24일 백두산부대 최전방 GOP 장병들이 확성기를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
새로 시작될 대북 심리전은 과거와 확 달라진 차원에서 진행될 것이란 게 군 관계자의 귀띔이다. 특히 군 당국이 기대를 걸고 있는 건 지난 몇 년간 한국의 대중가요계를 뒤흔든 ‘걸 그룹’들이다. 대북 심리전은 확성기를 통한 가요 방송과 1~2㎞ 떨어진 곳에서도 보이는 초대형 전광판을 활용한 문자·영상 송출이 주를 이룬다.
남한의 대중문화를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대중가수와 관련 콘텐츠 제공이 핵심인데 최근 정상의 인기를 누리며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가요계의 걸 그룹들이 가장 강력한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이다. 소녀시대를 비롯해 원더걸스 티아라 애프터스쿨 등으로 대표되는 걸 그룹들이 나설 경우 최전방의 북한 병사들을 단숨에 ‘무너뜨릴’ 수 있는 핵폭탄이 될 것이란 게 군 당국의 판단이다.
군 관계자는 “통상 10년 장기 의무복무에 지친 북한 병사들이 파격적인 의상과 밝은 모습, 깜찍한 율동과 노래가 어우러진 ‘남조선 소녀’들의 모습에 노출될 경우 충격파는 상상 이상일 것”이라고 말했다. 1980~1990년대의 전방부대 대북 심리전이 확성기를 통해 가수 이선희 등의 노래를 틀어주는 수준이었다면 이번에는 걸 그룹들의 노래를 영상과 함께 보여주는 전혀 다른 차원이 될 것이란 설명이다.
확성기와 대형 전광판을 이용한 대북 심리전은 6년 만에 다시 재개되는 것이다. 2004년 6월 남북 군 당국 간의 합의에 따라 양측은 상대방에 대한 전단 살포와 비방방송 등을 전면중단했다. 북한 측의 집요한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북한 군부는 최전방 지역에서 펼쳐진 우리 군의 심리전에 크게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대형 스피커의 압도적인 성능이나 전광판까지 동원한 선전전에 대응하기에는 북한이 힘이 부쳤기 때문이다. 에너지 부족으로 최전방 지역까지 전기를 제대로 공급하기 힘들어 대남방송을 중단하는 경우까지 우리 측에 포착될 정도였다. 북한 병사들이 “남조선은 전기가 얼마나 남아돌면 이런 산골까지 휘황찬란하게 불을 밝히는가”라며 동요하기도 했다고 한다.
▲ 위 부터 소녀시대, 에프터스쿨, 티아라 |
북한은 파주 일대의 자유로 가로등 불빛도 문제 삼았다. 남측이 너무 밝게 가로등을 켜놓고 차량들을 ‘강제동원’해 계속 오가는 모습을 연출한다는 게 2004년 초 남북 간 협의 당시 북한 측의 주장이다.
대북협상에 참여했던 군 관계자에 따르면 북한 군부는 이런 상황이 병사들의 사기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런 속사정 때문인지 북한 군부는 다른 합의사항은 제대로 이행 않으면서도 유독 심리전 중단 약속은 철저히 지켰다.
북한이 우리 군 당국의 심리전 재개에 유독 강하게 반발하는 건 이 문제가 다른 어떤 사안보다 민감하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남측 인사의 방북 제한이나 교역 중단, 통신선 차단 등은 경제적 피해에 머물지만 심리전은 북한 체제를 떠받치는 군부를 뒤흔들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155마일 휴전선 일대에서 북한을 향한 심리전이 일제히 실시될 경우 차단책이 마땅치 않은 것도 북한의 고민이다. 남측 확성기와 전광판에 총을 쏘겠다는 위협이지만 실제 그런 도발을 감행할 경우 우리 군으로부터 보복·응징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
최전방 지역에서 마지막 대북 심리전이 이뤄졌던 6년 전과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20세 안팎의 북한군 병사들의 마음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을 걸 그룹들의 대거 진출과 선명한 화질의 동영상을 내보낼 HD(고화질) 시대의 개막은 북한 병사들에게 치명적인 유혹이 될 듯하다.
김성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