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 노린 살인’ 외가 식구들 모두 그렇게 말해 다 같이 위증…알고 보니 보험 가입 앞장선 이는 엄마
‘살인마의 아들’이라는 올가미를 쓴 채 살아가야 하는 아들의 삶은 눈물겹다. 잊을 만하면 사건이 알려져 전학을 다니기 일쑤고, 지낼 곳이 없어 친척집을 전전해야 한다. 결국 모두에게 버려진 아들은 작은 마을에서 세간을 눈을 피해 조용히 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발신자를 알 수 없는 소포를 받는다. 소포 안에는 그 날, 살인 사건에 대한 진실이 담겨 있는 기록이 들어있었다. 모든 걸 알게 된 아들 서원이 그 날의 진실을 재추적하는 것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17년 전 그날 밤, 장수진 씨(가명) 3남매도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아버지 장동오 씨의 목에 수차례 밧줄을 걸었다. ‘아버지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증오 서린 탄원서를 법원에 1년 동안 보냈다. 자식들의 바람대로 아버지는 무기징역을 받았다. 올해로 16년 무기수다.
#“내가 거짓말을 했다” 막내딸의 고백
수진 씨 3남매의 진술서. 수진 씨는 당시 진술이 모두 거짓이었다고 고백했다. 사진=수사기록
“다 거짓말이었어요. 거짓말. 그때 우리 가족 다 같이 위증을 했어요. 집안 어르신들이 ‘아버지가 엄마를 죽였다’고 하니까 그런 줄 알았어요. 어른들도 경찰에게 그렇게 말하니까 위증이 큰 죄인지도 몰랐어요. 그때 생긴 트라우마가 내 인생 전체를 집어 삼켰어요. 늘 초조하고 두려움에 떨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엄마를 죽인 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 지금은 왜 그렇게 오랜 세월 괴로워했는지 후회돼요. 아버지께도 속죄하고 싶어요.”
2020년 8월, 무기수 장 씨의 막내딸 수진 씨는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2003~2004년 사이 수사기관과 법원에서 한 진술은 모두 거짓이었다고 털어놨다. 수진 씨가 ‘위증’을 주장한 건 올해로 3년째다. 일요신문은 8월 초부터 중순까지 총 5차례에 걸쳐 대면 및 전화 인터뷰를 통해 수진 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건의 시작은 17년 전, 2003년 7월로 돌아간다. 당시 18세의 수진 씨는 고등학생 신분으로 취업을 나가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다. 부모님은 전남 진도에, 수진 씨는 경기도 위치한 회사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놀라지 말고 들어. 엄마가 죽었어.” 큰언니의 전화였다. 부모님이 교통사고가 났다고 했다. 엄마는 죽고 아버지는 살았다. 장사를 하셨던 부모님의 트럭이 늘 다니던 길목에 위치한 시커먼 저수지가 부모님을 삼켰다고 했다.
장례식 도중 아버지는 범인이 됐다. 어른들은 ‘보험금을 노린 살인’이라고 했다. 큰이모를 포함한 외가 식구들 모두가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가 보험금을 노리고 몇 날 며칠 계획을 세워 교통사고를 위장한 살인을 한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평소 허풍이 심하고 나서길 좋아했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반대로 어머니는 말이 없고 유순한 성격이었다. 아버진 그런 어머니가 답답하다며 큰소리를 내곤 했다.
경찰은 경찰서가 아닌 사건 현장과 장례식장에서 가족들의 진술을 받아갔다. ‘아버지가 고의적으로 사고를 낸 것 같다.’ ‘엄마의 한을 풀어 달라.’ 수진 씨는 언니, 오빠, 외가 식구들과 함께 둥글게 모여 앉아 진술서를 썼다.
시간이 갈수록 아버지를 향한 의심은 더 확고해졌다. 심지어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조차 아버지가 나쁘다고 했다. 경찰과 검찰은 아버지가 엄마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일부러 저수지로 차를 몰았다고 판단했다. 단순 교통사고가 검찰에서 살인사건으로 변경됐다. 엄마의 이름으로 다량의 보험이 들어져 있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운전을 못 하는 엄마의 이름으로 운전자 보험이 들어져 있었다. 아버지는 2001년 교통사고로 장애를 얻어 본인 이름으로 보험을 들기 어려운 상태였다.
무속인이었던 큰이모는 아는 무당을 불러 영혼풀이, 일명 천도재를 지내자고 했다. 엄마의 넋을 풀어주자는 것이었다. 천도재 비용은 친가에서 지불했다. 신내림을 받은 무당은 아버지를 때리며 “너무 억울하다” “목이 눌렸다”고 했다. 그날 이후 동네에 아버지가 엄마를 죽였다는 소문이 퍼졌다. 동네에서 아버지를 좋게 보는 이는 더 이상 없었다.
큰이모는 자꾸만 아버지가 칼을 들고 쫓아오는 꿈을 꾼다고 했다. 수진 씨도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눈을 감으면 얼굴 없는 검은 그림자가 자꾸만 쫓아와 자신을 찔렀다. 몇 년 동안은 불을 켜고 잠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림자보다 무서운 것은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낙인이었다. 낙인은 수진 씨의 인생을 집어삼켰다. 회사를 다니는 내내 이 사실이 동료들에게 알려질까 두려움에 떨었다. “너희 집에서 그렇게 가르쳤냐”며 삿대질을 해댄 직장 상사와는 멱살을 잡고 싸웠다. 때로는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10여 년의 세월을 살았다.
#“아버지는 범인이 아니다”
2014년 수진 씨는 아버지가 수감되어 있는 군산교도소를 찾았다. 아버지를 다시 본 건 10년 만이었다. 죄 많은 가장이었지만 돌아가시기 전에 한번은 봐야 하지 않겠냐는 마음이었다.
18세 고등학생에서 28세가 된 딸을 아버지는 단박에 알아보지 못했다. 수진 씨를 빤히 쳐다보던 아버지는 천천히 “수진이니?”라고 물었다. “길에서 보면 못 알아보겠구나.” 실없는 소리도 했다. 그리고 자신은 엄마를 죽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 사이 홀로 재심을 세 번이나 청구했다고 했다. 10년이 넘도록 계속되는 주장이었다. 어딘가 이상하지만 수진 씨는 여전히 아버지가 범인이라고 믿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2017년, 수진 씨의 믿음을 깬 사람이 나타났다. 충남 서산 경찰서 소속 전우상 경감이다. 그는 이 사건의 수사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최초의 인물이다. 전 경감은 평소 알고 지내던 수진 씨의 작은아버지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사건을 처음부터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자신이 수집한 증거를 토대로 100쪽에 이르는 사건 기록을 다시 작성하기도 했다.
수진 씨는 “전 경감님은 첫 만남부터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줄줄 늘어놨다”고 했다. 아버지는 엄마를 죽인 것이 아니고 교통사고이므로 재수사를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묵직한 서류 뭉텅이를 내밀었다. 수진 씨는 그때 처음으로 경찰과 검찰의 수사 기록 등을 처음 봤다고 했다. 아버지가 수감된 지 14년 만이었다.
“처음 경감님이 이런 저런 자료를 보여줄 때는 그냥 눈물만 났어요. 수사기록 같은 문서를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으니까요. ‘아버지가 엄마를 죽인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문득 내가 경찰과 법원에 위증을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어요. 양파 껍질이 한 꺼풀씩 벗겨지듯 사건에 대해 알면 알수록 확신이 생겼어요. 아버지한테 미안했고 후회됐죠.”
수진 씨는 그 뒤로 전 경감과 함께 3년 동안 전국을 다니며 수사기록을 모으고 증인을 찾아다녔다. 두 사람은 당시 가장 큰 금액의 보험을 체결하게 했던 보험설계사를 찾아가 “보험 가입에 앞장 선 사람은 아버지가 아닌 엄마”였다는 증언을 받아 내기도 했다. 그렇게 사건 관계인 한 명 한 명을 찾아가 진술서를 받아냈다. 서류 가방 한 가득 모은 자료는 이 사건이 다시 주목받을 수 있도록 한 일등공신이다.
두 사람은 당시 수사기관의 수사가 부실했다고 주장했다. 수진 씨는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아버지와 엄마가 다투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는데 당시 내 목격담을 토대로 언니, 오빠의 진술서가 만들어졌다. 사실 교통사고와는 관련 없는 다툼이었다. 만약 경찰이 가족들을 따로 불러 한 명씩 진술서를 쓰게 했다면 이 정도로 위증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당시 사고 현장에 가 있었는데 경찰이 종이를 가져와 온 가족들의 진술을 받아 적었고 그대로 진술서가 됐다. 그게 법원까지도 갔다. 말과 말이 더해져 거짓말을 낳았다”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3남매가 제출한 진술서를 보면 대개 ‘~한 것 같습니다’와 같은 전언으로 끝나는데 이런 경우 임의성이 확보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경찰서가 아닌 사건 현장이나 장례식장 등에서 쓰인 진술서는 증인 진술서로 효과를 가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수진 씨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3남매가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사진=장수진 제공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는 최근 장 씨의 대리인을 자처했다. 이미 세 번이나 재심을 청구한 장 씨에게 이번 재심은 마지막이나 다름없다. 가족들의 위증은 아직 재심에서 쓰이지 않은 새로운 증거다. 수진 씨는 최근 어렵게 언니와 오빠를 설득했다. 수진 씨는 재심 청구의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재심은 나를 위한 속죄의 시간이기도 해요. 당시 위증을 했다는 잘못을 인정하고 올바르게 돌려놓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