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한테 들키면 ‘노게임’ 선언
▲ 김상현(사진제공=두산 베어스), 장성호. |
# 좌절된 ‘불곰 프로젝트’
정재공 전 KIA 단장은 팀 전력강화에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2001년 KIA 창단 단장을 맡은 이래 많은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대표적인 예가 정성훈-박재홍 트레이드다. 2003시즌을 앞두고 정 전 단장은 3루수 정성훈을 현대에 내줬다. 대신 현대 외야수 박재홍을 받았다. 일부에선 “팀내 최고 유망주를 내주고 내리막길에 접어든 노장을 영입했다”며 볼멘소리를 냈다.
하지만 당시 KIA는 전력상 우승도 노릴 수 있는 팀이었다. 정 전 단장은 ‘이종범-장성호-홍세완’으로 이어지는 중심타선에 박재홍이란 방점을 찍길 원했다. 어쩌면 2년 전 좌절된 트레이드를 박재홍 카드로 보상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정 전 단장도 부인하지 않는다.
2년 전인 2001년 겨울. 정 전 단장은 이른바 ‘불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여기서 불곰은 두산 거포 김동주를 뜻했다. “2001시즌부터 이종범이 가세하며 팀 타선이 강해졌다. 거포 한 명만 있으면 딱 괜찮겠다 싶었는데 그때 김동주가 매물로 나왔다. 당연히 군침이 들 수밖에.”
당시 김동주는 연봉협상 과정에서 구단과 극심한 마찰을 빚었다. 구단에 직접 트레이드를 요구하기도 했다. 가뜩이나 구단 재정까지 빈약했던 두산은 급기야 김동주를 트레이드 시장에 내놓았다. 이때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구단이 KIA였다.
정 전 단장은 김동주를 데려오는 조건으로 두산에 ‘현금 20억 원+∝’를 제시했다. 두산은 ‘∝’로 유동훈을 지목했다. 그러나 정 전 단장이 거절하며 다른 선수로 대체됐다. 트레이드 논의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철통보안이 깨졌다. 양 팀의 트레이드 추진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 것이다. 당시 KIA 코치진 가운데 한 명이 이 사실을 지역신문 기자에게 귀띔한 것.
두산 구단 사무실은 하루에 수백 통씩 걸려오는 팬들의 항의전화에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갑작스러운 역풍에 부딪힌 두산은 결국 김동주 트레이드 의사를 철회했다. 정 전 단장은 “김동주 영입에 성공했다면 KIA는 2009년이 아니라 그전에 우승을 맛봤을 것”이라며 지금도 그때를 “가장 아쉬웠던 순간”으로 꼽았다.
# 저주에 시달릴 뻔했던 롯데
1920년 1월 4일 미 메이저리그 팬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해야 했다. 보스턴의 프랜차이즈 스타 베이브 루스가 12만 5000달러에 라이벌 구단인 뉴욕 양키스로 전격 트레이드된 것이다. 당시 보스턴 팬들은 집집이 조기를 걸며 “레드삭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은 영원히 없을 것”이라는 끔찍한 저주를 퍼부었다. 아니나 다를까. 보스턴은 1918년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 2004년 다시 챔피언 반지를 끼기까지 86년 동안 ‘밤비노(루스의 애칭)의 저주’에 시달렸다.
▲ 홍성흔, 박재홍. |
설상가상으로 그즈음 이대호는 백 감독의 지시로 ‘쪼그려 뛰기’를 하다가 무릎을 다친 상태였다. 이때 백 감독을 뜯어말린 이가 이상구 전 롯데 단장이었다. 이 전 단장은 백 감독의 제안을 ‘팀 전력강화와 무관한, 사적 감정이 개입된 요구’라고 판단했다. 그렇다고 자신보다 윗선과 교감을 나누던 백 감독의 요구를 마냥 거절할 순 없는 법.
이 전 단장은 앞에선 열심히 트레이드 협상을 하는 척하고, 뒤에선 차일피일 협상을 미루는 식으로 시간을 벌었다. 눈치 없는 몇몇 구단이 백 감독에 직접 트레이드 카드를 내민 통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백 감독은 채 1년도 안 돼 퇴진하며 이대호 트레이드는 촌극으로 끝났다.
사실 백 감독이 트레이드 카드로 쓰길 원했던 선수는 이대호만이 아니었다. 에이스 손민한도 대상이었다. 백 감독은 손민한에게 “너무 설렁설렁 던진다”라고 지적하곤 했다. ‘설렁설렁’은 선수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백 감독이 자주 쓰는 말.
이후 백 감독은 구단에 손민한의 트레이드를 요구했다. 이번에도 이 전 단장이 온몸으로 막아 흐지부지됐다. 이 전 단장이야말로 사전에 ‘저주’를 막은 ‘롯데의 수호신’이었는지 모른다.
# KT 홍성흔ㆍ박재홍 영입 시도
애초 현대를 인수해 프로야구계의 변혁을 선언했던 이는 자본금 5000만 원의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가 아니라 한 해 매출 12조 원의 대기업 KT였다. KT는 2007년 12월 27일 현대를 인수해 재창단하겠다고 공식발표했다. KT가 삼성 LG SK 못지않은 대기업이었던지라 야구계는 과거 현대가 프로야구판에 뛰어들 때를 상기하며 “KT도 엄청난 물량공세로 팀을 재정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실이었다. KT는 팀 전력보강을 위해 물밑작업에 나섰다. 김시진 감독체제는 유지하는 대신 거물급 선수를 영입하기로 했다. 당시 KT 관계자는 김 감독에게 “원하는 선수가 있느냐?”라고 물었다. 김 감독은 “기존 현대 선수들이 야구를 계속 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뿐”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 관계자는 “깜짝 놀랄 선수를 트레이드 해오겠다”고 약속했다.
알고 보니 ‘깜짝 놀랄 선수’는 두산 홍성흔(현 롯데)과 SK 박재홍이었다. KT 실무진은 당시 구단과 관계가 소원했던 홍성흔을 현금 트레이드로 영입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박재홍은 과거 현대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다는 점이 고려돼 현금 혹은 선수 대 선수로 영입할 방침이었다. 두 구단 가운데 한 구단에 트레이드 의사를 타진하기 일보 직전, KT가 프로야구단 창단을 전면 철회하기로 하면서 모든 게 물거품이 됐다.
많은 야구관계자는 “KT가 창단을 번복하지 않고 프로야구판에 뛰어들었다면 현대에 이어 신흥 강호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장원삼(삼성) 이현승(두산) 마일영(한화) 등 좌완 3인과 ‘호타준족’ 이택근(LG)이 건재하고 홍성흔 박재홍이 가세했다면 꿈같은 이야기도 아니다. 그러나 이는 가정일 뿐, 또 아는가 KT마저 삼미 청보 태평양 현대의 뒤를 밟아 가세가 기울었을지.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