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 같은 내 새끼 다치지만 말아다오
▲ 전북 최강희 감독은 이동국이 에콰도르와의 평가전에서 부상을 입자 실력 아닌 외적 요소로 탈락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며 걱정했다. |
부상 조심, 또 조심!!
허정무 감독을 비롯한 대표팀 코칭스태프와 대한축구협회는 엔트리를 26명으로 추리면서 최종 명단에 오르지 못해도 모든 선수들을 데려갈 것을 요청하는 협조 공문을 각 구단들에 보냈고,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갑작스레 발생할지 모를 부상자에 대비해 언제라도 엔트리를 바꿀 수 있도록 미리 조치한 것이다. FIFA는 최종 엔트리가 결정되더라도 진단서만 첨부하면 경기 하루 전까지 엔트리를 교체할 수 있도록 해뒀다.
허정무호의 마스터플랜에 따르면 5월 24일 일본전과 30일 오스트리아에서 치를 벨라루스 평가전을 통해 최종 엔트리에 승선할 멤버들을 결정한다. 당연히 소속 팀 선수들을 대표팀에 내준 지도자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비시즌 동안 손발을 맞추지 못하는 데다 자칫 부상이라도 입을 경우, 월드컵이 끝난 뒤 속개될 K리그 후반기 레이스에 치명타를 맞기 때문이다.
과도한 내부 경쟁은 부상을 불러올 수 있어 모든 감독과 코치들은 소속 선수들에게 ‘부상 경계령’을 일찌감치 내려뒀다. 최근 사퇴 의사를 표명한 수원 차범근 감독은 대표팀 30명이 처음 소집됐을 때, 해당 선수들을 불러놓고 “제발 부상을 조심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실제로 수원 선수들은 대표팀에만 불려 가면 큰 부상을 입고 도중 하차하는 경우가 속출했던 아픔이 있다.
비록 우스갯소리지만 안기현 수원 단장은 부상을 달고 사는 염기훈이 대표팀에 들어가기 전 “이번에도 또 다치면 영원히 받아주지 않겠다”고 농 섞인 으름장을 놨다고 하니 수원이 안고 있는 고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수원 외에도 속을 끓이는 구단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8강에 올라 있는 전북, 포항, 성남 등이 있다. 전북 최강희 감독과 성적 부진으로 도중 하차한 레모스 전 감독 대신 임시 지휘봉을 잡고 있는 포항 박창현 수석코치는 에콰도르전을 지켜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최 감독은 허벅지와 발목이 좋지 않은 이동국이 후반전에 스스로 교체 사인을 벤치에 보냈다는 소식을 접했고, 박 코치는 김재성의 예상치 못했던 오른 발목 부상이 이유였다.
김재성은 정밀 진단 끝에 전치 한 주 진단을 받았지만 후반 막바지 5분가량 뛰지 못해 내심 걱정이 컸다. 대표팀에서 선전하는 것도 좋지만 부상을 입으면 한 시즌 전체가 통째로 날아갈 수도 있어 더욱 그랬다. 항상 이동국의 몸 상태를 걱정하는 최 감독은 기자들이 전화를 걸어올 때면 “(이)동국이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라고 말한다. 이동국은 2006독일월드컵을 앞두고 불의의 부상을 입고, 끝내 월드컵 무대를 밟지 못한 바 있다. 최 감독은 그저 기도하는 심정으로 이동국이 실력 아닌 외적 요소로 탈락하는 일이 없길 바랄 뿐이다.
▲ 포항 박창현 코치, 경남 조광래 감독, 대구 이영진 감독 |
부상도 우려스럽지만 심적인 부분까지 챙길 수 없다는 점도 또 다른 고민거리다.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선수들은 오직 23명뿐. 허 감독이 최초 예비 엔트리에서 4명을 내쳐야 할 시기가 닥쳐오자 “모두 희망을 갖고 열심히 뛰었는데, 모두를 데려갈 수 없다는 게 인간적으로 미안하다”고 한 것도 그래서다.
주변 정황을 살피면 몇몇 선수들은 최종 엔트리 승선이 아닌, ‘+3명’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대표팀은 오래 전부터 “기량 있는 젊은 피들을 예비 명단으로 선발해 남아공까지 데려가겠다”는 입장을 표명해 왔다.
하지만 K리그 지도자 입장에선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최종 엔트리에 발탁되지 못할 경우, 목표 의식이 사라질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게 사실. 자신들이 데리고 있는 선수가 일명, ‘깍두기’가 돼 벤치만 달구다 오면 이도저도 안 되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A 구단 감독은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섰을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끼는데, 만약 우리 선수가 최종 명단에 뽑히지 못한다면 자포자기 심정이 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실제 26명에 포함됐지만 거취가 불분명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파주NFC에서 만났던 선수 B는 “1차 관문을 통과한 것은 너무도 행복하고, 충분히 기쁜 일이지만 정작 최종 관문을 뚫지 못하면 심적으로 크게 가라앉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선수 C는 “나보다 훌륭한 선수가 뽑혀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없으나 만약 내가 (최종 명단의) 주인공이 아니라면 실망스러울 듯하다”고 말했다.
다소 처한 입장은 다르더라도 이는 해외파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자신이 직접 키우는 선수가 아닌 탓에 직접적인 영향은 끼치지 못하지만 애제자에 대한 불안감은 감출 수 없다. 특히, 처음 월드컵 무대에 출전하는 이청용(볼턴), 기성용(셀틱) 등이 그렇다. 박주영(AS모나코)은 “4년 전 독일월드컵에 나갔을 때 준비하는 동안에는 몰랐는데 막상 본선 경기가 다가오니까 너무 긴장된 나머지 내 기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었다”고 회상한다.
월드컵 무대에 섰던 축구계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달라고 부탁하면 곧장 “자신감을 잃지 말라” “네 실력을 믿고 긍정의 힘을 되새겨라”는 말부터 한다. 모의고사에선 좋은 성적을 받았음에도 정작 진짜 대학 입학이 가려질 수능 시험에서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받지 못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이청용의 성장기를 쭉 지켜봤던 경남 조광래 감독과 대구 이영진 감독은 “(이)청용이의 실력은 이미 검증됐다”며 “제 기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일단 조급증을 버리고 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