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4년인데 의원은 10년 시장은 한 달 같더라”
▲ 지난 7일 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를 만났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현재의 지지율도 한명숙 후보에 20%포인트 이상 앞서고 있다. 그렇다면 재선은 떼논 당상일까? 오 후보는 “승리에 대해 확신은 가지되 자만은 하지 말자”라며 여유를 보이고 있다. <일요신문>은 지난 5월 7일 5시경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에서 선거레이스에 돌입한 오 후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이날 5시 50분을 기해 후보등록을 한 뒤 시장 직무정지 상태로 선거전에 임하고 있기 때문에 33대 서울시장으로서는 이날 인터뷰가 마지막인 셈이다. 물론 재선 고지에 오르면 ‘오세훈 서울시장’의 ‘인터뷰’는 계속될 것이다.
지난 2008년 8월부터 시작된 서울시청 본관 공사로 현재 서울시장 집무실은 서소문 별관 1동 7층에 있다. 인터뷰가 진행된 간부 회의실은 남산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방이었다. 청명하게 맑은 하늘 아래 놓인 남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였다.
오세훈 후보가 집무실에서 넥타이를 고쳐 매는 동안 옆에 있던 서울시 정효성 대변인이 “오늘 날씨가 맑아서 공기도 너무 좋을 것 같다”며 슬쩍 서울시 ‘대기 개선정책’의 운을 띄웠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선거전이 코앞인데 ‘정책 홍보’로 늘어진 인터뷰를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겸손하게 인사를 하는 오 후보를 맞으면서 반사적으로 ‘오늘 공기가 좋은 것 같습니다’라는 첫 질문을 던져버렸다.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서부터 인터뷰가 있었던 날 오전 서울시장 후보 초청 관훈 토론회까지 ‘거친’ 선거전을 치르고 있는 오 후보는, ‘칭찬’보다는 온통 비판 일색에 시달린 탓인지 자신의 전공 분야 질문이 나오자마자 “오늘 서울시내 미세먼지 농도 좀 체크해보라”고 보좌진에게 지시하며 ‘맑은 서울 시내 공기’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오늘 같이 맑은 날이면 미세먼지 수치가 30(㎍/㎥)도 안 될 것 같다. 서울시장 처음 취임할 때 65였는데 작년 연말 54대로 줄었다. 앞으로 1~2년 정도 더 투자하면 40대로 떨어질 것이다. 제주도 백령도가 43 정도 되니까 비교해보면 얼마나 대기오염이 개선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이때 보좌진이 오늘 서울 미세먼지 농도 평균이 30㎍/㎥이라고 보고한다). 가스버스 대거 도입 등 대기오염 줄이기 정책이 효과를 보고 있다. 서울 시민들이 걷기나 자전거 타기 등 야외활동을 많이 하는데 공기 좋은 것은 큰 축복이다. 오늘 같은 날 마시는 공기는 보약이다. 인구 1000만 정책 혜택 중에 가장 골고루 돌아가는 게 바로 이 정책일 것이다.”
그는 변호사 시절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경기) 대회에 참가할 만큼 운동광이었다. 당연히 맑은 공기에 민감했다. 시장 재직 동안 대기개선 정책을 중점적으로 추진한 배경에는 그의 ‘희망’도 작용했을 듯싶다. ‘서울시장’으로서 갖는 마지막 인터뷰라 4년 동안의 직무수행에 대한 소회를 먼저 물었다.
“아이고 눈 깜짝하고 지나간 것 같다. 한 일주일 한 달, 지나간 거 같다 4년이.”
―그만큼 하고 싶은 일이 많았기 때문인가.
▲아니다. 일종의 몰입이었다. 4년 동안 서울을 바꾸는 데 미쳤었다. 몰입하면 시간이 빨리 가지 않나.
―16대 때 국회의원을 4년 했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그때는 4년이 10년 같았다. 국회에 있을 땐 하루하루가 정말 힘들고 회의와 고민의 연속이었다. ‘이런 걸 왜 하나’ 그런 생각으로 4년을 보냈다. 결국 4년 만에 그만두지 않았나. 도저히 보람을 찾을 수 없었다.
―특히 어떤 점이 힘들었나.
▲일단 야당의 초선의원은 보람을 찾을 일이 많지 않다. 주요 업무가 입으로 비판하는 것인데 그런 게 너무 체질에 맞지 않았다. 직접 뭔가 에너지를 발산하고 일을 해야 하는데 남 잘못한 것만 지적하는 게 뭐 그리 즐겁겠나.
―사실 그게 정치의 본령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걸 즐기는 분도 있던데, 나는 체질에 전혀 맞지 않았다.
―서울시장으로서 행정은 체질에 맞았던 모양이다.
▲그렇다. 굉장히 보람이 있다. 기획을 해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정책 수단을 구사하고 또 그것이 성과가 나면서 시민들의 피드백을 받을 때 굉장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 지난 3일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인사하는 모습.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글쎄. ‘조용한 혁명’이라고 부르고 싶다(그의 업무노트 첫 장에는 ‘불치이치(不治而治) 무위지치(無爲之治)’라는 경구가 있다고 한다. 다스리지 않는 것처럼 조용히 다스린다는 뜻이다. 이것이 그가 서울시정을 이끌어가는 철학이다. 여러 갈등 요소를 조용하게 그러나 강력하게 해결한다는 뜻이 숨어 있다. 일각에서는 소리는 나지 않지만 효과는 강력하다며 ‘용각산 리더십’이라고도 표현한다. 그런데 그의 이런 스타일은 종종 비판을 받곤 했다. 지난 용산참사 때 서울시의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그는 “드러내지 않고 조용하게 일을 처리하려고 했지, 방관한 게 아니었다”라며 방어한 적이 있었다).
사실 오 후보는 ‘조용한 리더십’을 서울시정에 정착시키기 위해서라도 꼭 재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녹록한 게 아니다. 현재로서는 한명숙 민주당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가 20%포인트에 이르지만 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그도 선거 캠프 관계자들에게 위기의식을 전파하고 있다. 그럼에도 “승리에 대한 확신은 가지되 자만하지는 말자”라며 여유를 보이고 있었다. 여기에는 상대인 한명숙 후보에 대한 자신감도 숨어있는 것 같았다.
―한명숙 후보가 곽영욱 사장 건으로 재판을 받아 이번 선거에 일정 정도 영향이 있는 것 같다. 도덕성도 시정을 이끌어가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나. 본선에서 그것을 집중 제기할 것인가.
▲내 입으로 얘기하기가 적절치 않은 것 같은데…. 시민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하지만 현대 행정에 있어서 조직의 청렴도는 기본 중의 기본 덕목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본인이 그런 오해를 받고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건 사실이다. 공적인 조직의 수장으로서 여러 가지 큰 한계가 생길 수 있다.
―한 전 총리가 첫 번째 후보 토론회에서 본격적인 정책 대결을 피하려 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가 서울시 정책에 대해 숙지를 못했다고 보나.
▲그 판단도 내 입으로 말하는 게 적절치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한 후보가 토론회에서 ‘뭐 디테일엔 현직 시장이 잘 알겠지. 그러나 철학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한 후보가 (서울시 정책을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스스로 수용하고 그것을 오히려 커버하기 위해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었나 그런 느낌이 들었다.
오 후보는 본선에서 한 후보와의 정책 대결을 자신 있어 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지난 2006년 지방선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박 전 대표는 언제 만난 게 마지막인가.
▲지난 1월 초에 신년 인사차 만난 게 전부다. 일각에서 그 뒤에도 만났다고 하는데 뭘 그리 자주 만날 필요가 있겠느냐.
―오늘(5월 7일) 박 전 대표가 대구에서 또 다시 ‘선거 지원은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는데 오 후보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앞으로도 계속 정중하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다.
―박 전 대표의 도움 없이는 무난한 당선도 어려울 수 있는데.
▲나는 박 전 대표가 도움을 안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의도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가 지난 2006년 서울시장 선거 때 유세를 다니다가 피습을 당하면서까지 오 후보의 당선을 도왔는데, 오 후보는 그 뒤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해 친박계가 몹시 서운해 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들어본 적 있나.
▲당시 나는 현직 시장으로서 어느 쪽을 돕고 말고 할 입장에 있지 않았다. 단체장은 중립을 지키는 게 원칙적으로 옳고 선거에 관여하지 않도록 돼 있다. 또한 내가 당의 대의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단도 없었다. 하지만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 전 대표의 도움을 받아 늘 마음의 빚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경선 치를 때 마음으로 많이 도와줬다. 이렇듯 양쪽에 다 마음의 빚이 있는 상태에서 어느 한쪽을 도와준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었다.
―그래도 예전에 비해 지금이 박 전 대표와 더 가까워진 것 아닌가.
▲선거를 치르면서 박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을 졌는데 그런 고마운 마음가짐이 관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런 의미에서 서로 호의나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할까. 같은 당을 하는 관계에서 서로 고비마다 마음을 전하고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해 전혀 어색함이 없는 관계다. 그 정도로 생각해 주는 게 가장 정확할 것 같다.
그런데 오 후보는 당내 예선을 통과하기 전 ‘제3후보론’에 시달려야만 했다. 당내 기반이 약해 재선 고지 도전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 몰리기도 했다. 그는 이에 대해 ‘자신의 정무적 인식 부재’를 반성하기도 했다.
―당내에서는 오 후보가 이명박 대통령처럼 일에만 매달려 정치권과의 소통에 소홀했다는 비판이 많았다. 시장 후보로 낙점되기도 불가능했을 만큼 당내 비토세력도 적지 않았는데.
▲맞다. 이번에 경선을 치르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4년 동안 일만 몰입해서 하다 보니 정치권과의 인연, 네트워크 그런 점에 상대적으로 신경을 안 쓴 것이 경선 초기에 굉장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번에 많이 배웠다. 일만 열심히 해서 되는 일이 아니구나. 일이 하고 싶으면 정치도 좀 해야 되겠구나(웃음).
―당내 소장파 의원들은 오 후보가 시청에서 퇴근하면 곧바로 집으로 가 술 마실 시간도 없다고 했는데.
▲ 오세훈 후보와 한명숙 후보(맨 오른쪽)의 관훈클럽초청 토론회.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오세훈 후보는 이번에 여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재선’되면서 당내의 정치적 위상이 더 커졌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그래서 그가 만약 사상 최초로 서울시 재선 시장이 되면 친이그룹의 ‘박근혜 대항마’로서 차기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는 차기 대권주자 가능성에 대해 ‘모범적’인 대답만 내놓았다. 하지만 차차기 도전에 대해서는 매우 적극적으로 대답했다.
“4년을 채우겠다는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 4년을 더 채우면 8년 정도 되지 않나. 그러면 정책에 대한 평가가 엄정하게 이뤄질 것이다. 8년이 지난 다음에 ‘아 정말 오 시장 일 잘했다’ 그런 평가를 받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다음 정치일정에 대해 고려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4년이 더 지나봐야 대선 도전에 대해 알겠다’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그래도 대선 후보 경선이 급박하게 돌아가면 친이계에서 ‘징발’하려는 움직임이 거세질 수 있는데 그때 마음이 변하는 것 아닌가.
▲내가 올해 49세다. 뭐가 그리 급한 줄 모르겠다. 세상의 눈이 더 앞서가는 것 같다. 서울시장 자리만 놓고 보면 일의 비중이 결코 가벼운 게 아니다. 그런 중요한 자리에서 일의 보람을 찾고 희열을 느끼는데, 49세 먹은 사람이 뭐 그렇게 마음이 급해서 임기 중간에 그만둘 생각을 하겠는가.
인터뷰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청량한 공기가 여름을 재촉하는 듯했다. 오는 6월 2일 오세훈 후보가 마시게 될 공기는 과연 어떤 맛일까.
인간 오세훈 Q&A
“시장 되고 한 번도 못가” 골프여, 안녕~
Q: 다시 태어난다면?
A: 뭐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최근에는 창업을 해보고 싶다. 분야는 뭐가 됐든 창업은 창의적 역량을 필요로 하는 무한대 예술이다.
Q: 성격상 장단점은.
A: 장점은 낙천적이고, 굉장히 낙관적이라는 것이다. 단점은 너무 완벽주의자라 때로는 피곤하다.
Q: 특이한 버릇은.
A: 시도 때도 없이 걷는다.
Q: 골프는.
A: 시장되고 한 번도 안 나갔다.
Q: 20대에게 한마디.
A: 밑천을 생각하지 않고 쥐고 있던 것을 내려놓으면 새로운 것을 집을 수 있다. 일희일비하지 말고 많이 쌓이면 쌓일수록 성공한다는 진리를 새기자.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