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자, 미자는 나… 우리 만남은 운명이었죠”
▲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영화 <시>의 여주인공 윤정희. 그는 지난 26일 귀국해 서울 신촌 현대백화점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비록 여우주연상 수상의 영예는 안타깝게 놓쳤지만 지금 이 순간 그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말하는 윤정희, 여전히 ‘미자’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배우 윤정희를 만났다.
팀 버튼과의 만남
칸 현지에서 만난 윤정희는 예순다섯의 나이를 무색케 할 정도로 순백의 소녀 같은 사람이었다. 순수한 소녀의 감성을 간직한 윤정희는 칸 영화제 내내 진심으로 행복해 했고,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 수상이 불발된 뒤 아쉬운 마음을 드러낼 때에도 이것저것 따지지 않았다. 그가 소녀 같다는 생각은 인터뷰를 통해 더욱 분명해졌다. 인터뷰를 위해 만났을 당시 윤정희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분명 가곡 ‘가고파’인데 ‘가고파’를 ‘배고파’로 개사해서 부르고 있었다. “전 배고플 때마다 이 노래를 ‘배고파’로 개사해서 불러요”라며 웃는 윤정희, 그는 소녀와 다름없었다.
“소녀 같다고요? 그런 얘기 많이 듣죠. 호호. 저는 나이를 전혀 의식하지 않아요. 굳이 나이를 의식하고 산다면 그게 오히려 안타깝죠. 어려서부터 노래와 무용과 함께 살았죠. 발레도 하고 고전 무용도 했어요. 그때 자연스럽게 생긴 감성이 배우를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지금도 그런 감성을 늘 간직하려고 해요.”
영화 속 시를 쓰는 소녀 ‘미자’, 그리고 스크린 밖에서 만난 예순다섯의 소녀 윤정희에게 칸은 열광했다. 현지 분위기가 너무 뜨거워 윤정희는 황금종려상을 기대했고, 이창동 감독은 내심 여우주연상을 바랐다고 한다. 비록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진 못했지만 윤정희는 배우로서 칸에 공식 초대됐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고 말한다.
“물론 상을 타는 게 더 좋겠지만 그 이상의 선물을 많이 받아 너무 행복해요. 현지 언론의 호평은 기본이고 어쩜 그렇게 모르는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서 내 연기를 칭찬해주는지, 제가 상 타길 바란다고 얘기해주고, 저를 위해 기도해준다는 분도 있었어요. 이게 제 재산입니다. 리스 공항에서 한 아름다운 여성을 만났는데 명함을 보니 러시아 영화평론가였어요. 그분은 폐막식에서 제 이름을 기다렸는데 줄리엣 비노쉬가 불려 화가 났다며 제 연기를 극찬해주셨지요.”
그는 칸 현지에서 윤정희와의 경합 끝에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프랑스 국민배우 줄리엣 비노쉬는 물론이고 심사위원장 팀 버튼 감독과도 만났다.
“폐막식을 앞두고 줄리엣 비노쉬를 만났어요. 그가 제게 그러더군요. 여기저기서 저에 대해 너무 많은 얘길 들어 꼭 한 번 보고 싶었다고. 폐막식이 끝난 뒤에는 팀 버튼 감독도 만났어요. 칸 영화제는 심사위원이 심사 내용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게 관례예요. 그럼에도 제게 ‘내 마음을 움직이는 연기였다’는 극찬의 말을 들려줘 너무 행복했어요.”
이창동과의 만남
“영화배우가 내 영원한 직업이에요. 연기를 그만두고 파리로 온 후에 더욱 영화를 아끼게 되고 귀중함을 알게 됐어요. 영화는 인생이에요. 삶을 재현하는 건데 어떻게 멈출 수 있겠어요. 그동안 한 번도 영화를 떠난 적이 없어요. 영화는 인생이에요. 그동안 심사위원으로도 꾸준히 활동해 왔고요.”
윤정희는 자신이 <만무방> 이후 <시>까지의 16년 동안에도 결코 영화계를 떠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다만 좋은 각본을 만나지 못했을 뿐인데 그를 다시 카메라 앞에 세운 각본이 바로 <시>였다. 이것만으로도 <시>는 칸 영화제 각본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해 보인다.
“이창동 감독님의 출연 제안을 받고 기분 좋았어요. 2년 전에 감독님을 만났는데 저를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고 해서 고마웠어요. 나중에 남편과 함께 각본을 읽은 뒤 이창동 감독님의 부름에 응하기로 했죠.”
이들의 첫 만남은 부산영화제에서 이뤄졌다. 시상자 윤정희와 수상자 이창동 감독이 짧은 ‘만남’을 가진 것. 이창동 감독은 짧은 만남이었지만 배우로서의 내면을 느꼈던 것 같았다고 그 첫 만남을 회상했다.
“<시>의 플롯을 떠올리며 거의 동시에 윤정희 선생님을 생각했어요. 왜 그랬는지는 설명 못하겠는데 아마 본능이었던 것 같아요. 각본을 쓰면서 점점 내가 생각하는 인물과 윤정희라는 배우가 일치한다는 생각이 강렬해졌어요. 주인공 이름을 ‘미자’로 정한 것은 각본을 쓰며 미자여야 하는 이유가 분명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선생님 본명이 ‘미자’시더라고요. 우연이자 필연 아니었나 싶어요.”
지난 5월 26일에 열린 귀국 기자회견에서 윤정희가 “(이창동 감독과의) 인연이 너무 늦게 닿은 것 같아요”라고 말하자 이창동 감독은 “선생님이 지금보다 더 늙으신 뒤, 그러니까 80~90살 쯤 되셨을 때 다시 작품을 통해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봤어요”라고 화답했다. 이에 윤정희는 “너무 반가운 소리예요. 90세까지 영화배우 하는 게 제 꿈이거든요. 영화가 제 인생인 만큼 나이와 세월을 생각하지 않고 흐름에 맞는 역할을 맞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이창동 감독과의 만남으로 16년 만에 카메라 앞에 선 윤정희는 이제 20년 이상 배우로서의 정년까지 연장하게 된 셈이다.
백건우와의 만남
지난 1976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결혼한 윤정희는 38년째 프랑스에서 살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을 떠나 있었을 뿐, 영화계까지 떠난 것은 아니었다. 윤정희는 프랑스에서 수많은 영화를 섭렵하며 감각을 유지했고 국내외 다양한 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의 생활에 대해 윤정희는 자신을 백건우의 비서라고 얘기한다.
“독일에 연주회가 있어 들렀다 칸에 갔고 다시 베이징에서 연주회를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오는 길이에요. 매번 남편 연주회 일정을 따라 같이 움직여요. 당연히 가야죠, 제가 비서니까. 사실 전 촬영이 없을 때는 실직자나 마찬가지니 비서로 남편과 동행하는 거죠. 또 남편은 항상 제 도움을 필요로 하니까요. 전 남편이 오직 연주에만 신경 쓰도록 해주고 싶어요. 그래서 절대 저를 외부에 드러내지도 않죠. 남편이 주인공이니까. 저는 비서면 족합니다.”
백건우 역시 윤정희의 비서 역할에 충실했다. 칸에서 내내 윤정희의 곁을 지키며 그가 빛나도록 도와줬지만 늘 드러내지 않으며 윤정희가 올곧게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해줬다. 귀국길 인천공항에서 만난 백건우는 “칸에서 정말 많은 외국 평론가들이 영화 <시>를 극찬해줬어요. 이젠 한국 관객들도 관심을 많이 가져줬으면 좋겠어요”라는 얘길 들려줬다.
이들 부부는 파리에서 살고 있지만 한국인의 삶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김치를 담가 먹고 거실에서도 의자를 없애고 방바닥에 방석을 놓고 지낸단다. 영화 <시>를 통해 그들의 삶에도 조금은 변화가 올 것 같다.
“르몽드나 휘가로 등의 현지 매스컴에 제 사진이 나오니까 이웃 주민들도 많이 좋아해주세요. 평소 제게 말을 걸지 않던 이웃들도 먼저 다가와 말을 걸며 제 연기와 한국 영화에 대한 칭찬의 말을 들려주곤 해요.”
윤정희는 이제 새로운 ‘8월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오는 8월 프랑스 현지에서 영화 <시>가 개봉되기 때문이다.
“칸 현지의 매스컴 반응이 너무 좋아 8월을 기대하고 있어요. 관객들의 반응이 한국에서보단 좀 더 긍정적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미자와의 만남
윤정희는 다시 휴식기를 가질 예정이다. 벌써부터 시나리오들이 몰려들고 있는데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도 몇 편 받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윤정희는 아직까지는 너무나 매력적인 미자에게 둘러 싸여 있어 차기작은 엄두를 내지 못한단다. 적어도 2년 정도는 시간이 흘러야 미자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만큼 미자는 윤정희를 닮아 있다.
“미자는 저랑 정말 닮았어요. 저 역시 꽃을 참 좋아하죠. 살구에 정신이 팔려 자기가 할 말도 잊고 돌아서는 미자, 단순히 치매를 앓아서가 아니에요. 정말 아름다움에 빠져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 감성을 가진 사람인 거죠. 저 역시 그래요. 시를 지어본 적은 없어요. 하지만 낭송은 많이 해봤죠. 생전 미당 (서정주) 선생님과 가깝게 지내며 시를 즐겼어요.”
극중 미자는 몹쓸 짓을 한 손자를 결국 경찰에게 인계하는데 배드민턴을 치며 애써 경찰차에 오르는 손자를 외면한다. 윤정희는 그때의 미자 마음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미자가 손자의 발톱을 깎아주며 ‘몸을 깨끗이 해라. 그래야 마음도 깨끗하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하지만 손자는 깨닫지 못하죠. 미자는 올바른 교육을 위해 그런 선택을 한 거예요. 인간 교육을 시키고 싶었던 거죠. 그런 선택을 한 미자의 마음은 찢어졌을 거예요.”
윤정희와 미자의 만남은 16년 만에 이뤄진 윤정희와 한국영화의 만남이기도 하다. 윤정희는 후배들이 일궈낸 지난 16년 동안의 눈부신 발전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프랑스에서 늘 한국 영화를 DVD로 보고 있어요. 90년대 후반에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허준호 감독의 데뷔작 <8월의 크리스마스> 등을 보며 한국 영화가 참 좋아지고 있구나 생각했었어요. 그즈음부터 프랑스뿐 나이라 전 세계적으로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더군요. 남편 연주 일정으로 여러 나라를 다니는데 연주가 끝난 뒤 관계자들과 술자리를 갖곤 해요. 그런 자리에서도 한국 영화에 대한 얘기가 자주 대화 소재가 되곤 해요. 그럴 때마다 제가 한국 영화배우라는 게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라요.”
윤정희는 지금 유럽에선 일본영화, 중국영화의 시대를 지나 한국영화 전성시대가 도래했다고 얘기한다. 좋은 후배들이 많은 만큼 부디 자만하지 말고 한국 영화를 잘 키워가기 바란다는 당부의 말도 남겼다.
▲ 윤정희와 세계적 피아니스트인 남편 백건우 씨. 사진제공=스포츠서울닷컴 |
“그녀가 백건우 부인? 헉!”
제63회 칸국제영화제에 초대받은 윤정희는 준비된 스타였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아내인 윤정희는 그동안 그의 뒤에 숨어 있었다. 하지만 칸에서 그는 남편의 그늘에서 벗어나 당당히 홀로 섰다.
<시>의 공식 언론 시사회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시사회에 참여한 프랑스 일간지 <파리지엔>의 마리 사비옹 기자는 “윤정희라는 배우를 잘 알고 있다. 그의 관록 있는 연기는 매우 인상 깊었다”고 평했다.
윤정희의 불어 실력도 돋보였다. 그는 시사회 직후 가진 공식 기자회견에서 해외 취재진의 질문에 유창한 불어로 답했다. 한국 취재진의 질문에는 한국어로 답하는 친절함도 잊지 않았다.
윤정희와 백건우씨가 부부라는 것은 몇몇 영화제 참가자들에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할리우드 스타 셀마 헤이엑은 두 사람이 부부라는 소식을 들은 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또 다른 파리의 취재진은 “백건우의 공연장에서 그를 볼 때 당연히 ‘백건우의 아내’로만 생각했다. 향후 백건우의 공연장에서 윤정희를 취재하려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 레드카펫 룩으로 한복패션을 선보인 윤정희와 이창동 감독. 사진제공=스포츠서울닷컴 |
단아한 한복패션 “원더풀”
‘<시>의 밤’에 윤정희는 한국의 여인이었다. 제63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된 <시>의 공식 상영회가 열린 5월 19일(현지 시간) 저녁. 윤정희는 쪽진 머리에 한복 차림으로 레드카펫을 밟았다.
재불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결혼하고 30년 넘게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윤정희. 하지만 칸에서만큼 한국적인 아름다움으로 레드카펫을 수놓았다. 그는 명품 브랜드 크리스찬 디오르의 협찬 제안까지 물리치고 직접 머리와 의상을 매만졌다. 윤정희는 “의상은 남편이 골라줬어요. 개량 한복보다는 심플한 디자인이 좋을 것 같았어요. 머리도 제가 직접 했죠. 괜찮지 않나요?”라고 되물었다.
레드카펫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배경음악으로 한국의 트로트인 ‘와인글라스’가 프랑스의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이 노래는 <시>의 주인공인 미자(윤정희)가 극중 열창하는 곡이다. 칸 국제영화제 집행위원회는 레드카펫 행사에 맞춰 이 노래를 준비했다. 레드카펫 행사에 참여한 해외 취재진은 “트로트라는 장르는 잘 모른다. 하지만 윤정희의 전통 의상과 한국적인 음악이 썩 잘 어울렸다”고 감탄을 연발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칸=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