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KBS 다큐3일
세탁소와 수선실은 추억은 간직하되 얼룩은 씻어내는 곳이다. 세탁소에서는 덕지덕지 묻어있던 생활감과 마음속 묵은 때를 지워낸다. 수선사는 낡고 헤진 물건 속에 담긴 가치를 복구한다.
1980년대 대형 백화점과 명품매장들이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대한민국 유행1번지로 불렸던 압구정 로데오. 이곳에는 압구정 흥망성쇠의 역사를 함께한 숨겨진 골목이 하나 있다. 바로 세탁·수선거리다.
명품을 따라 모여든 세탁·수선 장인들이 형성한 이곳. 수십 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낡은 간판들은 강남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명품’보다 더 값진 인생을 살아온 손끝의 마법사들이 있다. 긴 장마와 폭염으로 지난했던 올여름의 끝에서 압구정 세탁·수선 거리의 장인들을 만나보았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연예계. 방송의상을 준비하는 스타일리스트는 연예인보다 곱절은 바쁘다. 양말 하나도 세탁할 시간이 없어 세탁소에 맡기고 아침에 맡긴 옷을 저녁에 찾으러 온다며 발을 동동거리기 일쑤다.
이곳의 장인들은 이런 독촉에도 군소리 없이 척척 해주니 스타일리스트들은 울상으로 왔다가도 웃는 얼굴로 돌아간다.
수선실에도 일감이 물밀 듯이 쏟아졌다. 굽은 허리의 수선사는 의뢰서에 빼곡하게 적힌 요청사항들을 꼼꼼히 살폈다. 굽은 허리를 더 굽혀가며 재봉틀 앞에 앉았다.
50년 경력 베테랑이건만 신중을 기해 임한다. 그래야 손님들이 만족하기 때문이다. 그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박음질 끝에 걸린 손님들의 웃음이었다.
수선실 한 켠에 붙은 가수 조용필의 사진. 그 옆으로 자타공인 조용필 성덕(성공한 덕후) 임태숙 씨가 수선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무리 바빠도 조용필 콘서트는 꼭 가려 노력한다는 임태숙 씨에게는 잊지 못할 순간이 있다.
약 15년 전, 조용필 콘서트 의상을 수선 의뢰받은 그날이다. 그는 ‘돌아와요 부산항에’ 듣고 마음을 빼앗겼던 16살 소녀팬으로 돌아가 팬심으로 재봉틀을 돌렸다.
탄생의 순간부터 가치를 지니는 명품. 그러나 제아무리 값비싼 명품이라 해도 흐르는 세월을 피할 수는 없다. 압구정동에는 바래가는 가치에 숨을 불어넣는 수선사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최차식 씨(56)는 “수선은 무조건 가는 게 목적이 아니고 최대한 자기 것을 살리는 게 원칙이다”고 말한다.
수선사는 가방을 수선하다 대뜸 한방 침을 꺼냈다. 그의 손에서 한방 침은 뭉툭한 손끝을 대신하는 섬세한 도구로 변했다. 덕분에 명품 가방은 원형 그 이상의 자태를 뽐내며 주인의 손으로 돌아갔다.
30여 년 동안 가죽을 손상시키지 않을 최고의 도구를 찾아 헤맨 결과다.
이곳에서 만난 수선사들이 처음부터 수선 명장이었던 것은 아니다. 1960년대 양장점이 호황을 이루면서 많은 사람이 양재사를 꿈꾸기 시작했다. 부모님을 생각하며 한 땀, 자식들을 생각하며 한 땀 놓았다. 실과 바늘은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는 소중한 도구이자 삶의 일부가 되었다.
양장점이 사양길을 걸어도 바느질을 멈추지 않았다. 이들은 양장을 만들던 실력으로 수선업에 뛰어들었다. 눈 감고도 하는 바느질이지만 손님의 만족을 위해서 끊임없이 수선 공부를 이어갔다.
그러자 사람들이 이들을 장인으로 인정했다. 자부심을 가지고 한 길만 밟아온 삶이 곧 명품이 된 것이다.
압구정 세탁·수선 거리에서는 유독 함께 일하는 부자의 모습을 많이 포착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일터이자 아들의 놀이터였던 세탁소와 수선실. 시간이 흘러 아버지는 홀로 짊어지던 가족의 무게를 장성한 아들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주일태 씨(30)는 “아버지는 못 따라가겠지만 그래도 아버지에 버금가게끔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제가 명품이 되어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한다.
1982년 개업한 이래 39년 째 압구정을 지켜 온 한 수선실을 찾았다. 수선사인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기 위해 일을 배우고 있다는 주일태 씨. 지난해 일태 씨는 넓은 필드를 누비던 축구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좁은 수선실로 들어왔다.
아버지의 청춘이 담긴 수선실에서 일태 씨는 새로운 시작을 꿈꾸고 있다.
가족들이 함께 일하는 가게가 많아서일까. 외로이 세탁소를 지키는 남자, 이재우 씨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사실 4개월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이재우 씨의 어머니와 형이 함께 했다.
밀려드는 세탁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형제를 위해 어머니는 세탁소 한 귀퉁이에서 형제의 식사를 책임졌다. 그러나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병세 악화로 이재우 씨는 홀로 가게에 남게 되었다.
나이가 든 것인지 ‘어머니’라는 단어를 입에만 올려도 눈물이 난다는 그. 세탁소 한켠에 형제의 삼시세끼를 챙기던 어머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기에. 그는 어머니가 돌아올 그 날을 기다리며 어제보다 오늘 더 부지런히 얼룩을 지우고 주름을 다린다.
압구정 세탁·수선 거리에서 명품을 더욱 가치 있게,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며 살아가는 명품 장인들을 만나본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