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영웅인가 부패의 달인인가
▲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는 태국 시위대(UDD, 일명 레드셔츠)와 보안당국 간에 유혈사태가 벌어지면서 수십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PA/연합 |
태국이 세 달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반정부 시위로 온통 벌집을 쑤셔 놓은 듯 어수선하다. 정부와의 유혈 충돌로 이미 66명이 사망했고, 1700여 명이 부상을 당하는 등 사태는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이른바 ‘노란 셔츠 대 빨간 셔츠’의 갈등으로 촉발된 이번 시위는 한편으로는 ‘도시와 농촌의 대립’ 혹은 ‘부유층과 빈민층의 갈등’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갈등의 한가운데에는 지난 2006년 부정부패 혐의로 실각한 탁신 친나왓 전 총리(61)가 있다. 친나왓 전 총리는 재임 시절 친서민 개혁 정책으로 농민과 빈민층이 주를 이루는 ‘빨간 셔츠’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던 반면, 현정부 및 군부, 관료 등 소수 지배층인 ‘노란 셔츠’들로부터는 기득권을 위협하는 존재로 배척당했다. 따라서 이번 사태를 ‘친나왓과 현정부’의 권력을 둘러싼 정쟁으로 보는 사람들은 친나왓이 정권을 되찾기 위해서 ‘빨간 셔츠’ 시위대들을 은밀히 조종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의혹에 대해서 친나왓은 “나는 권력에 욕심이 없다”고 말하면서 “이번 시위는 나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태국의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그는 태국 민주주의의 희망일까, 아니면 대중을 선동해서 사리사욕을 채우는 정치인일까.
“나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그저 정직하게 돈을 벌었을 뿐입니다. 만일 여러분들 중 사업을 하는 분이 계신다면 절대 정치는 하지 마세요. 저처럼 됩니다.”
지난 2월 대법원으로부터 재산 몰수 판결을 받았던 친나왓이 지지자들에게 영상통화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한 말이다. 이날 해외 망명 중인 친나왓과의 영상통화를 위해 모여 있던 800명가량의 지지자들은 모두 흐느껴 울거나 분노에 찬 목소리로 현정부를 비난했고, 마침내 단결해서 투쟁할 것을 다짐했다.
그리고 한 달 후, 자신들의 희망이었던 친나왓을 내쫓은 군부에 저항하는 ‘빨간 셔츠’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친서민적인 친나왓을 몰아낸 것은 자신들을 무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하는 시위대는 ‘의회 해산, 조기 총선’을 외치면서 현정부에 반기를 들었다. 이렇게 시작된 반정부 시위는 급기야 태국 전역을 혼란에 빠뜨렸고, 현재 이렇다 할 해결책 없이 유혈 사태로 치닫고 있다.
그렇다면 친나왓은 이들이 말하는 대로 진정한 민주주의 희망이자 서민 총리일까.
억만장자 기업가 출신인 친나왓이 정계에 입문한 것은 1994년 외무부 장관에 임명되면서부터였다. 1998년 타이락타이 당(태국을 사랑하는 당)을 창당해서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고, 2001년 총리에 선출되면서 정치인으로서 정점을 찍었다. 태국 역사상 임기를 꽉 채운 첫 번째 총리로 기록됐던 그는 2005년 재임에 성공한 후 2006년 군부 쿠데타에 의해 축출될 때까지 태국 최초의 연임 총리로 막강한 권력을 누렸다. 또한 같은 해 총선에서 친나왓의 타이락타이 당은 전체 500석 중 374석을 차지하면서 태국 민주주의 역사상 가장 많은 의석을 거느린 당으로 인기를 누렸다.
친나왓이 이처럼 정치인으로서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배경에는 ‘탁시노믹스’라고 불리는 친서민 경제정책이 있었다. 북동부 지역 치앙마이 출신인 친나왓은 주로 가난한 시골 농민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면서 빈곤층들이 대거 거주하는 북동부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다. 가장 대표적인 탁시노믹스 가운데 하나로 ‘30바트(약 1000원) 의료보험’ 제도가 있다. 30바트만 내면 누구나 진료가 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 전 국민 무상의료보험제도였다.
▲ 이번 시위의 배후로 지목된 탁신 친나왓 전 총리. |
친나왓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런 정책들로 1997년 아시아경제위기 이후 침체되어 있던 태국 경제가 빠른 속도로 회복될 수 있었으며, 예정보다 4년이나 빨리 IMF 채무를 모두 상환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실제 친나왓 총리 시절 태국의 총생산은 50%가량 급상승하는 등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친나왓 정책의 효율성에 의구심을 품고 있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는 태국경제가 내수보다는 수출에 의존하는 형태가 됐다고 비난하는 한편, 무분별한 대출로 가계부채만 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친나왓의 정책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군부 및 고위관료 등 소수 엘리트 기득권층들이었다. 이들에게는 친나왓이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위협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이들은 친나왓을 총리직에서 몰아내기 위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결국 친나왓의 시대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2006년 2월 부정부패 및 탈세 혐의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로 정치적 위기에 몰렸던 친나왓은 결국 같은 해 9월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에 머물던 중 발생한 군부 쿠데타로 인해 망명길에 오르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듬해 12월 총선에서 탁신계 신당인 ‘국민의힘(PPP)’이 승리해서 다시 금의환향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반탁신단체인 ‘국민민주주의연대(PAD)’ 즉 ‘노란 셔츠’가 주도하는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자 다시 영국으로 도피했으며, 그 후로는 태국 땅을 밟지 못한 채 현재 두바이, 캄보디아, 영국, 독일, 홍콩, 모스크바, 스위스, 아프리카 등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면서 망명 생활을 지속하고 있다.
그리고 2008년 10월 태국 대법원은 공직자부정부패방지법 위반 및 탈세 혐의로 친나왓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데 이어 지난 2월에는 태국 내 은행에 동결되어 있던 친나왓의 재산 766억 바트(약 2조 8000억 원) 가운데 469억 바트(약 1조 7000억 원)를 몰수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아피싯 총리를 비롯한 현 군정부는 쿠데타의 정당성이 확인됐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탁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친서민 정책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기득권층의 모함으로 ‘민주주의가 죽었다’고 외치면서 반발하고 있다.
과연 친나왓은 이들의 주장처럼 진정 깨끗한 정치인이었을까. 친나왓의 부정부패 혐의는 크게 탈세와 권력남용 등 두 가지로 나뉜다. 1987년 ‘친그룹’을 설립하면서 무선통신사업에 뛰어들었던 친나왓은 1993년 태국 내 위성사업 독점권을 따내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한때 세계를 움직이는 억만장자 25인에 꼽힐 정도로 재력을 과시했던 그는 정계에 진출한 후에도 깨끗한 기업인 출신의 정치인 이미지를 내세우면서 서민들의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총리 시절이었던 2006년 1월 ‘친그룹’의 주식 96%를 싱가포르의 국영투자기업인 ‘테마섹 홀딩스’에 매각하면서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국유지를 헐값에 부인 명의로 매입한 혐의 등으로 법원으로부터 징역형을 선고 받으면서 그의 깨끗한 이미지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밖에도 재임 시절 정부의 위성방송 관련 정책을 친그룹의 ‘타이콤 PCL’에 유리하도록 조정한 혐의와 국책은행인 ‘엑심 은행’에 미얀마 정부가 ‘타이콤 PCL’의 서비스와 위성장비를 구입할 수 있도록 40억 바트(약 1400억 원)를 저금리로 대출해 주라는 압력을 행사하는 등 권력 남용 혐의까지 받고 있다.
▲ 탁신 친나왓 부부. 재산 몰수를 막으려 위장 이혼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
이들의 이혼이 위장이라고 주장하는 측근들은 “친나왓 부부는 여전히 매우 가깝게 지내고 있다. 망명을 시작한 후에 더욱 애정이 돈독해졌다”고 말했다.
한편 친나왓의 부정부패 행각을 비난하는 ‘노란 셔츠’들은 친나왓을 가리켜 ‘대중을 선동하는 수완 좋은 정치꾼’이라고 말하면서 “이런데도 그를 서민 정치인이라고 말할 수 있나?”라고 비아냥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비난에 대해서 ‘빨간 셔츠’라고 불리는 ‘독재저항민주주의연대(UDD)’는 “군부와 기득권의 정치적 모함”이라고 주장하면서 여전히 친나왓을 지지하고 있다. 이처럼 자신을 지지하는 이들을 향해 친나왓은 “계속해서 민주주의를 위해 전진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망명자 신세인 친나왓이 지지자들과 소통하는 방법은 다름 아닌 인터넷이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태국 시위대들과 접촉하고 있는 그는 주기적으로 사진이나 글을 올리면서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고 있다.
이에 대해서 반탁신파는 그가 해외에서 은밀하게 시위대를 조종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혹시 정계에 복귀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 아니냐며 의심하고 있다. 하지만 친나왓은 “나는 ‘빨간 셔츠’의 지도자가 아니다. 그들은 나에게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고 있으며, 나 역시 마찬가지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때 인터넷에 퍼졌던 사망설 및 건강이상설에 대해서도 친나왓은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자신이 멀쩡하게 살아있음을 알렸다. 그는 “내가 죽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는데 매우 유감이다. 나는 건강하게 살아있다”고 말하면서 피지섬에서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이번 반정부 시위를 태국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친나왓의 진짜 속내가 무엇이냐가 이번 시위의 관건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의 진심에 따라서 태국의 민주화가 앞당겨질 수도, 아니면 늦추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듯이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그의 속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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