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김연경·이상화 등 전설들 일상 공개 ‘반전매력’…후배 선수들에 위로와 조언 건네기도
최근 예능에서 맹활약하는 전·현직 스포츠 스타들의 면면은 그 자체로 올림픽 국가대표 명단이나 다름없다. 골프의 전설로 꼽히는 박세리 전 국가대표 감독을 비롯해 ‘배구 여제’ 김연경, 스피드 스케이팅 세계 챔피언 이상화 등이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남현희(펜싱), 피겨 대표주자 곽민정도 동참하고 있다.
박세리의 일상이 여러 예능으로 자연스럽게 노출되자 팬들은 씀씀이가 큰 그에게 돈이 많다는 뜻의 ‘리치(rich) 언니’라는 애칭까지 붙여줬다. 사진=MBC ‘나 혼자 산다’ 방송 화면 캡처
#예능 통한 인생 설계…대중성 확보
박세리는 20여 년간 방송에서 ‘모시기’ 어려운 스타로 꼽혀왔다. 1996년 프로 데뷔 이후 국내 무대를 석권하고 1998년 미국무대에 진출해 매년 역사를 새롭게 써간 주역이기 때문이다. 2007년 한국인 최초로 LPGA 명예의 전당에도 들었다.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여자 골프 국가대표 감독을 맡아 금메달을 따는 등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역사를 수립해 국민에 희망을 줬지만, 필드가 아닌 일상의 모습은 좀처럼 확인할 수 없었다.
때문에 박세리가 예능에 적극 참여하는 요즘 행보에 의아함을 표하는 시선도 많다. 2016년 은퇴 이후 활동 방향을 모색해온 그는 오랫동안 국민과 나눈 신뢰를 잇고 친근하게 소통하려는 뜻에서 예능으로 눈을 돌렸다. 박세리는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예능을 결심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지만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며 “선수들은 상황을 언제나 직시해야 하기 때문에 적응도 빨리한다. 그래서인지 몸으로 하는 예능이 편하다”고 말했다.
박세리는 현재 MBC ‘나 혼자 산다’와 SBS ‘정글의 법칙’을 비롯해 E채널 ‘노는 언니’ 등에 출연하고 있다. 앞서 tvN ‘수미네 반찬’을 통해 미숙하고 엉성한 요리 실력을 보여주면서 뜻밖의 예능 감각을 드러낸 그는 출연 요청이 늘면서 고향인 대전 집 외에 서울에도 새로운 거처를 마련했다. 그동안 일정이 있을 때마다 대전과 서울을 오갔던 터였다. 심지어 그는 서울 집을 꾸미는 과정도 예능을 통해 공개했다. 장식장에 과자를 잔뜩 쌓아두거나 전기 그릴을 두 개씩 펴 놓고 혼자 고기를 구워먹는 ‘통 큰’ 모습으로 웃음을 안겼다.
화려한 수상 경력, 거액의 상금 덕분에 재정 능력도 탄탄한 박세리의 일상이 여러 예능으로 자연스럽게 노출되자 팬들은 씀씀이가 큰 그에게 돈이 많다는 뜻의 ‘리치(rich) 언니’라는 애칭까지 붙여줬다. 그를 롤모델 삼는 10대 팬들도 부쩍 늘었다.
김연경은 현역 선수로는 이례적으로 ‘나 혼자 산다’ 등 예능에 동참하고 있다. 특유의 넉살 좋은 성격으로 배우 이장우에게 애정공세를 퍼붓는 코믹한 매력도 보인다. 사진=MBC ‘나 혼자 산다’ 방송 화면 캡처
예능으로 전성기를 맞은 김연경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10년간 해외 무대에서 활약하다 지난 7월 소속팀이던 흥국생명으로 복귀한 그는 현역 선수로는 이례적으로 ‘나 혼자 산다’ 등 예능에 동참하고 있다. 특유의 넉살 좋은 성격으로 배우 이장우에게 애정공세를 퍼붓는 코믹한 매력도 보인다. 현재 김연경은 리그를 소화해야 하는 빠듯한 상황이지만 시간을 쪼개 예능에 동참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국내 복귀 직후 가진 미디어데이에서 그는 “예능에 나간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배구가 더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며 “부담스럽지만 다시 한 번 여자배구 붐이 일어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2019년 가수 강남과 결혼한 이상화는 최근 tvN 예능 ‘캐시백’ 촬영에 한창이다. 막강한 신체조건을 자랑하는 운동선수와 승부사 기질이 다분한 연예인들이 출연해 거액의 현상금을 놓고 벌이는 스포츠 게임 쇼다. 이상화는 현역 시절부터 증명한 에너지를 바탕으로 수구, 이종격투기 등 다양한 종목 선수들 틈에서도 탁월한 실력을 자랑한다. 결혼 전 SBS ‘미운 우리 새끼’에 남편 강남과 동반 출연해 터득한 예능 감각이 ‘캐시백’을 통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최근 대중과 소통하려는 여성 선수들의 참여가 늘면서 예능 제작진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박세리를 필두로 남현희, 배구 자매 이재영·이다영, 피겨 곽민정, 수영 정유인 등이 총출동하는 E채널 ‘노는 언니’가 대표적이다. 사진=E채널 ‘노는 언니’ 포스터
최근 몇 년간 운동선수들은 예능프로그램에 없어서 안 될 한 축을 이뤄왔다. 농구 서장훈, 허재, 현주엽, 축구 안정환, 이종격투기 김동현까지 다양한 선수 출신 방송인들이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남자 선수들에 국한된 게 사실. 그러다 최근 대중과 소통하려는 여자 선수들의 참여가 늘면서 예능 제작진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박세리를 필두로 남현희, 배구 자매 이재영·다영, 피겨 곽민정, 수영 정유인 등이 총출동하는 E채널 ‘노는 언니’가 대표적이다. 섭외하기 어려운 여러 종목 선수가 뭉친 이유는 ‘여자 선수 예능’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남현희는 ‘노는 언니’ 제작발표회에서 “남자 선수들이 나오는 예능은 많은데 왜 여자선수들은 없을까 많이 아쉬웠다”며 “여자 선수들끼리 나오는 프로그램이 있길 바랐는데 기회가 왔다”고 반겼다. 박세리도 “여자 선수들로만 이뤄진 프로그램이라는 특별한 취지가 좋았다”고 밝혔다. 경기 중계를 통해 보이는 심각한 얼굴이 아닌 일상적이고 편안한 진짜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강점도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예능이라고 해도 마냥 웃고 떠들 수만은 없다. 비슷한 길을 걷는 후배들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없다. ‘노는 언니’ 출연 선수들은 지금도 하루하루 고된 훈련을 거듭하는 후배들에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같은 길을 먼저 경험한 선배로서의 충고와 위로도 건넨다.
한쪽에선 ‘예능 효과’를 노리는 이들도 있다. 은퇴 이후 유소년을 위한 체조 스튜디오를 운영 중인 리듬체조 국가대표 출신 손연재도 MBC ‘라디오 스타’ 등 예능에 출연해 비인기 종목의 길을 걷는 후배들에 어떤 도움을 줄지 고민한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