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천재’ 박 ‘진화하는’ 용 “월드컵이 즐겁다”
▲ 박주영이 나이지리아전에서 회심의 프리킥을 성공시킨 후 포효하는 모습(왼쪽·사진제공=SBS)과 이청용이 우루과이전에서 동점골을 넣은 후 기뻐하는 모습(연합뉴스). |
기자들이 박주영의 웃는 모습을 볼 때는 훈련장이 유일하다. 동료 선수들과의 훈련 시에는 ‘썩소’가 아닌 환하게 웃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지만 기자들 앞에만 서면 무표정하거나 덤덤한 태도로 일관한다. 그러다 그리스전 이후부터 박주영은 기자들한테도 조금씩 미소를 날리기 시작했다. 월드컵 동안 유일하게 진행된 단체 인터뷰 때 박주영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재미있잖아요. 월드컵을 즐기고 싶어서요”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전에서 예기치 않았던 자책골은 박주영의 입을 다시 닫게끔 만들었다. 경기 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어렵게 경기를 마친 소감을 물었지 만 박주영은 바닥만 쳐다본 채 “죄송합니다”하고 지나쳐 버렸다. 월드컵에서 터진 첫 골이 자책골이라니…, 그것도 귀중한 선제골을 아르헨티나팀에 헌사한 모양새가 돼 버려 박주영의 심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주영은 다음날 회복 훈련을 소화한 후 훈련장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기자들이 불러 세우자 멈칫 멈칫 하다가 즉석 인터뷰를 가졌다. “마음의 부담을 덜고 나이지리아전에 올인하겠다”고 말하는 모습에선 남다른 각오를 절감할 수 있을 정도였다.
▲ 박주영. |
나이지리아전이 끝나고 샤워를 마친 후 믹스트존에 나타난 박주영은 100여 미터를 늘어 서 있는 기자들 앞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고 일일이 인터뷰에 응하며 월드컵 16강 진출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는 아르헨티나전에서의 자책골 이후 심리적 부담을 느끼기보단 빨리 잊으려고 노력했다면서 나이지리아전에서 터진 ‘진짜’ 첫 골이 자신의 골에 대한 한을 풀어주는 결정적인 골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어른스런 면모도 내보였다.
박주영은 월드컵 데뷔 무대였던 2006년 독일월드컵과 이번 남아공월드컵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이번 월드컵은 이전과 달리 특별히 긴장이 되지 않았다. 마치 A매치를 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편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었다. 아무리 유명한 스타플레이어라고 해도 크게 와 닿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인터뷰에 인색한 부분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선수는 인터뷰를 많이 하는 것보다는 경기를 통해 보여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월드컵 동안 훈련 시 인터뷰나 단체 인터뷰 등은 기꺼이 응할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었다.
박주영에 비해 이청용은 기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는 법도 없고 아무리 많은 인터뷰가 쏟아져도 힘들어 하거나 찡그리지 않는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아르헨티나전 이후 기자와의 인터뷰 때였다. 해외파 선수들을 제외하곤 대부분 고개를 숙이고 믹스트존을 빠져나가고 있을 때 이청용은 아르헨티나전의 대패 원인을 선수 입장에서 분석해내며 아쉬움을 곱씹었다. 가장 인상적인 멘트는 전술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오늘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처음부터 너무 수비 위주로 경기를 풀어나간 점이었다. 강팀과의 경기라고 해서 수비 축구만이 정답은 아니다. 좀 더 많은 공격을 펼치지 못한 게 계속해서 이 경기를 뒤돌아보게 할 것 같다.”
▲ 이청용. |
이청용은 덧붙여서 “강팀과의 경기는 항상 설렘과 기대감을 동시에 안겨준다”면서 “아무래도 지난 1년간 볼턴에서 활약한 경험이 이번 월드컵에서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이지리아전이 끝난 이후 이청용은 몇 차례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른 수비진에 대해 솔직한 생각을 내보였다.
“수비를 잘하는 팀이 조직력도 뛰어나다. 오늘 수비진에서 약간의 실수는 있었지만 다음 경기에는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경기를 치르면 치를수록 팀 전력이 점점 더 좋아질 것이고 좋아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다.”
월드컵을 처음 치르는 선수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남아공월드컵에서의 이청용은 당당했고 제대로 즐기고 있었다.
월드컵 기간 동안 염기훈과 투톱을 이뤄 한국팀의 공격을 책임졌던 박주영. 조별리그 3차전 동안 터진 득점은 단 1득점뿐이다. 이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내는 축구팬들도 많고 기자들도 박주영의 기대에 못 미치는 득점력에 대해 말들이 많았던 게 사실이었다. 박주영도 이 점에 대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나섰다. “내가 골 찬스를 잘 살리지 못한 건 사실이다. 쉽게 풀어갈 수 있는 경기 상황들이 나로 인해 꼬인 부분들도 있었다. 그래서 항상 경기장에 나서면 내 역할을 충실히 하려고 열심히 뛰어다니지만 골은 약간의 운도 따라줘야 되는 것 같다.”
박주영은 그리스전에는 압박붕대를 한 채 뛰었다. 오스트리아 전지훈련 마지막 날, 선수들과 족구 시합을 벌이다 왼쪽 팔이 빠지는 바람에 훈련할 때도 다소 부자연스런 모습으로 뛰는 장면이 눈에 띄었지만 그리스전이 벌어지는 동안에는 온몸이 부서져라 중앙선을 넘나들며 적극적인 수비 가담과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등 엄청난 에너지를 발휘했다. 박주영이 갖고 있는 책임감과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했다. 그러나 박주영은 기자들한테는 그 부담을 감추려 애썼다.
대표팀 언론담당관 이원재 부장은 박주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오스트리아 전지훈련 때부터 박주영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주로 대인관계였다. 선수들과는 무리없이 잘 어울리다가도 낯선 사람이 있거나 기자들이 나타나면 얼굴색이 바뀌는 걸 종종 봐 왔다. 그래서 사람들에 대한 부담이나 불신을 털고 월드컵을 즐기라고 말해줬다.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대표팀 분위기 메이커는 박주영과 그 또래 선수들이다. 아르헨티나전 이후 상심이 컸을 텐데 금세 극복하고 일어서는 걸 보고 주영이가 많이 성장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월드컵 동안 가장 진화된 플레이를 보여주면서 외신들의 시선을 사로 잡은 이청용은 상대 진영 앞에서의 지능적인 몸놀림과 박주영, 염기훈에게 찔러주는 정확한 패스 등이 일품이다. 장신의 수비수들을 헤치고 골문을 향해 돌진해 가는 이청용의 모습과 실제 이청용을 만나게 되면 놀라움을 감출 수 없게 된다. 실제 체격이 훨씬 왜소하기 때문이다. 종종 ‘어떻게 저런 가냘픈 체격으로 거친 수비를 뚫고 파워 넘치는 공격을 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살을 좀 더 찌우고 탄탄한 체격을 확보한다면 훨씬 더 안정감 있는 플레이를 할 수 있을 거란 아쉬움이 있는데 이청용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눈치다. 비록 체격이 왜소하다고 해도 축구를 하는 데 부족함을 느낀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사람들이 보는 시각과 선수 자신이 느끼는 부분과는 큰 차이가 있는 모양이다.
이청용과 인터뷰를 할 때마다 빠트리지 않고 물었던 질문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월드컵 이후 다른 팀으로 이적할 가능성이 있느냐 하는 부분이었다. 그때마다 이청용은 “아직은 생각 못하고 있다. 아마도 볼턴에 계속 남아 있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이청용 에이전트 김승태 사장도 “이청용은 월드컵 이후에도 볼턴 소속 선수로 뛸 것이다. 더 큰 팀에서 교체 선수로 활약하는 것보단 90분 풀타임이 보장돼 있는 볼턴이 지금의 청용이한테는 적합하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적당한 시기가 되면 다른 팀으로의 이적도 고려해볼 것이라고 말해 이청용의 볼턴 잔류가 시한부임을 알 수 있게 한다.
한편 볼턴 구단주는 이청용이 아르헨티나전에서 첫 골을 터트렸을 때 김승태 사장에게 직접 축하전화를 걸었고 독일과 잉글랜드의 16강전을 직접 현장에서 지켜보기 위해 남아공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주영 또한 프리미어리그 몇몇 팀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데 아직까지 구체적인 소식이 들리진 않는다. 분명한 것은 남아공월드컵이 박주영의 축구인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부분이다.
이청용은 2010남아공월드컵이 어떻게 기억되었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월드컵 첫 경험이 앞으로 축구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대회로 기억되길 바란다”는 대답을 전했고 박주영은 “돌이켜봤을 때 조금의 아쉬움이나 미련이 남지 않는, 최선을 다한 월드컵으로 남아있길 소원한다”는 말로 진심을 담아 보였다.
다음 월드컵에서 또 다른 주역으로 뛰게 될 박주영과 이청용한테 2010남아공월드컵은 ‘즐거울 락’이었다.
포트엘리자베스=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
캡틴 박지성의 의미
허 감독 “120% 만족”
지난 6월 25일, 우루과이와의 16강전을 하루 앞두고 넬슨만델라베이 스타디움에서 공식기자회견이 열렸다. 당시 한 기자가 허정무 감독에게 주장 박지성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허 감독은 주저없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 경기장으로 오면서 지성이와 차 안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지성아, 머리 좀 아프지?’라고 말했는데 분명 지성이가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건 사실이고, 내가 그 짐을 지게 한 것 같아서 다소 미안한 마음도 있다. 그러나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선 지성이가 주장을 맡아 월드컵대표팀을 이끌어가는 게 상당히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고, 지금까지 자신한테 주어진 역할 잘 소화해내고 있어 감독 입장에선 120% 만족한다.”
박지성은 월드컵 기간 동안 전혀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선후배들을 독려하고 이끌면서 주장으로서의 할 일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워낙 성격이 꼼꼼하고 치밀한 스타일이라 대표팀 주장을 맡은 이후 박지성은 말 못할 고민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나이지리아전 직후 믹스트존에서 기자와 만난 박지성은 ‘주장을 맡은 뒤 16강 진출에 성공한 데 대해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라고 묻자, 오랜만에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밝혔고 비록 짧은 답변이었지만 많은 여운을 남겼다.
“내가 주장을 맡아서 16강에 진출한 것보다는 그 전에 월드컵에서 주장을 맡았던 선배님들이 얼마나 큰 부담감과 싸웠는지를 너무나 절실히 깨닫고 있다.”
기자들 사이에선 아르헨티나전 이후 침체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식사 시간 때 박지성이 서빙을 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에 대한 확인을 요구하자 박지성은 “서빙은 안 했지만 선수들과 소통하려고 많은 대화를 나눈 건 맞다”라고 설명했다.
남아공월드컵 한국대표팀 ‘캡틴’ 박지성이 있기에 16강 진출도 가능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허 감독 “120% 만족”
지난 6월 25일, 우루과이와의 16강전을 하루 앞두고 넬슨만델라베이 스타디움에서 공식기자회견이 열렸다. 당시 한 기자가 허정무 감독에게 주장 박지성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허 감독은 주저없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 경기장으로 오면서 지성이와 차 안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지성아, 머리 좀 아프지?’라고 말했는데 분명 지성이가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건 사실이고, 내가 그 짐을 지게 한 것 같아서 다소 미안한 마음도 있다. 그러나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선 지성이가 주장을 맡아 월드컵대표팀을 이끌어가는 게 상당히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고, 지금까지 자신한테 주어진 역할 잘 소화해내고 있어 감독 입장에선 120% 만족한다.”
박지성은 월드컵 기간 동안 전혀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선후배들을 독려하고 이끌면서 주장으로서의 할 일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워낙 성격이 꼼꼼하고 치밀한 스타일이라 대표팀 주장을 맡은 이후 박지성은 말 못할 고민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나이지리아전 직후 믹스트존에서 기자와 만난 박지성은 ‘주장을 맡은 뒤 16강 진출에 성공한 데 대해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라고 묻자, 오랜만에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밝혔고 비록 짧은 답변이었지만 많은 여운을 남겼다.
“내가 주장을 맡아서 16강에 진출한 것보다는 그 전에 월드컵에서 주장을 맡았던 선배님들이 얼마나 큰 부담감과 싸웠는지를 너무나 절실히 깨닫고 있다.”
기자들 사이에선 아르헨티나전 이후 침체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식사 시간 때 박지성이 서빙을 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에 대한 확인을 요구하자 박지성은 “서빙은 안 했지만 선수들과 소통하려고 많은 대화를 나눈 건 맞다”라고 설명했다.
남아공월드컵 한국대표팀 ‘캡틴’ 박지성이 있기에 16강 진출도 가능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