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적응, 제값한다는 평가…‘좋은 풀백 찾아라’ 세계축구 공통과제
토트넘이 이적시장에서 경쟁 끝에 손에 넣은 측면 수비수 레길론이 좋은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자연스레 토트넘의 공격력도 탄력을 받고 있다. 토트넘은 리그 5경기에서 15골을 기록, 리그 내 가장 많은 득점을 기록한 팀이 됐다. 리그 1위 에버튼(14골)과 리버풀(13골), 첼시(13골), 맨체스터 시티(7골) 등을 모두 따돌리고 있다.
토트넘의 이 같은 날카로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주포’ 해리 케인과 손흥민의 골 결정력, 미드필더 탕귀 은돔벨레의 선전 등이 주요 요인으로 꼽히지만 이번 시즌 새로 영입된 세르히오 레길론의 활약도 주목받고 있다.
#가장 뜨거운 이적 매물 레길론
왼쪽 측면 수비수 레길론은 지난여름 이적시장 동안 유럽 전체에서 가장 주목받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세비야에 임대됐던 2019-2020시즌 유로파리그 우승에 힘을 보탰지만 원소속팀 레알 마드리드에서 마르셀루, 페를랑 멘디에 이어 ‘넘버3’로 밀렸다. 이에 임대로 재미를 봤던 세비야를 포함해 나폴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에버튼 등 많은 팀이 군침을 흘렸다. 그럴수록 이적료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최후의 승자는 토트넘이었다. 알려진 이적료 규모만 3000만 유로(약 403억 원)다. ‘협상의 달인’으로 유명한 다니엘 레비 토트넘 회장이 큰 지출을 감행했다. 5년 전 손흥민이 레버쿠젠에서 토트넘으로 유니폼을 갈아입을 당시 발생한 이적료와 같은 금액이다. 이적 시장 시세 상승을 감안하더라도 수비수에게 큰돈을 투자했다.
시즌이 개막한 이후 이적이 확정됐기에 레길론은 토트넘 유니폼을 입고 4경기밖에 치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짧은 시간임에도 빠른 적응력을 보이며 값어치를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18일 웨스트햄과 리그 경기에서는 날카로운 크로스로 팀의 세 번째 골을 만들고 수비에서도 특유의 스피드로 좋은 모습을 보여 공수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토트넘으로선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토트넘의 왼쪽 풀백은 약점으로 꼽히던 자리였다. 지난 시즌 토트넘은 이 자리에 얀 베르통언, 대니 로즈, 벤 데이비스를 번갈아 기용했다. 잉글랜드 대표팀 출신 대니 로즈는 과거의 기량을 잃었고 벤 데이비스는 수비에 특화된 선수다. 베르통언은 중앙 수비수가 본 포지션이다. 이들의 지난 시즌 공격포인트를 모두 합쳐도 5개(81경기)에 불과했다. 반면 레길론은 토트넘에서 소화한 4경기에서 이미 2개의 도움을 기록하고 있다.
#강조되는 풀백의 중요성
현대 축구는 수비수에게 수비 역할만 기대하지 않는다. 특히 측면 수비수의 경우 역량에 따라 앞선 공격수의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전성기를 보낸 레알 마드리드 시절, 최고의 풀백으로 꼽히던 마르셀루와 함께 막강한 공격력을 뽐낸 것이 그 예다. 레길론도 손흥민과 호흡을 맞춰가며 더 강한 공격력을 발휘할 수 있다.
측면 수비 포지션의 중요성이 강조됨에 따라 이 자리에서 좋은 활약을 보일 수 있는 선수들에 대한 주목도가 함께 올라가고 있다. 특히 희소성이 높은 왼발잡이는 그 정도가 더하다. 다시 한 번 큰돈이 풀린 지난 프리미어리그 여름 이적시장에서 네 번째로 많은 이적료를 발생시킨 선수는 첼시의 벤 칠웰(이적료 5020만 유로, 약 674억 원)이다. 과거 중앙 포지션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던 측면 수비수에게도 수백억 원이 투자되는 것은 이제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지난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독일 바이에른 뮌헨은 측면 수비 위치에 ‘신성’ 알폰소 데이비스를 배출하며 주목을 받았다. 스타 군단들과 경쟁에서 승리한 요인으로 데이비스의 존재가 차이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2~3년간 성공 가도를 달려온 리버풀의 배경에도 앤드류 로버트슨,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라는 양 측면 풀백이 존재한다.
국내 최고 측면 수비수로 평가받는 김진수는 2019시즌 14억 3500만 원으로 국내 최고 연봉을 기록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대한민국에도 번지는 ‘풀백 품귀현상’
측면 수비수가 많은 역할을 해야 하는 방식으로 축구가 발전되며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는 풀백 선수들의 ‘품귀현상’은 국내에도 마찬가지로 일어나고 있다. K리그 내 각 팀에서 측면 수비 위치에서 꾸준한 출장과 좋은 활약을 보이는 선수가 많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국내 ‘넘버원 풀백’으로 꼽히던 김진수(사우디 알 나스르)는 지난해 연봉 공개 결과 K리그 최고 연봉을 받는 국내 선수로 밝혀지기도 했다. 공격수가 아닌 수비수로선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 10월 A매치 기간 A대표팀과 올림픽 대표팀 간 ‘스페셜 매치’는 풀백 자원이 메마른 상황을 잘 보여줬다.
코로나19로 인해 해외파 선수들을 선발할 수 없는 상황에서 파울루 벤투 감독의 고민 흔적을 드러냈다. 벤투 감독은 왼쪽 풀백 자리에 왼발잡이 선수만 선호하는 성향을 드러내왔다. 하지만 기존 자원 김진수가 해외로 재진출하며 이번 소집에서 그를 선택할 수 없었다. 새로운 얼굴을 찾아야만 했다.
‘초롱이’ 이영표 은퇴 이후 끊임없이 지적받고 있는 대표팀 왼쪽 풀백 자리에는 김진수, 홍철(울산), 박주호(울산) 정도가 수년간 중용돼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박주호가 물러나는 모양새다. 김진수까지 해외 진출로 뽑을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벤투 감독은 이주용(전북)을 선택했다. 이주용은 22라운드가 진행된 K리그1에서 6경기만 나선 ‘백업’으로 간주되던 선수였다.
설상가상 대표팀 소집 기간 중 홍철이 부상으로 빠졌다. 벤투 감독은 대체 선수로 심상민(상주)을 불러들였다. 심상민은 포항에서 활약하다 이번 시즌 도중 ‘입대’해 상주 상무에서 뛰고 있다. 잠깐이나마 신병 훈련을 받기도 했고 5~8월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그럼에도 왼발잡이를 고집하는 벤투는 그에게 생애 첫 A대표팀 합류 기회를 줬다.
연령별 대표팀에서도 측면 수비 자원이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다. U-23 대표팀을 이끌며 올림픽에 도전할 김학범 감독은 주변에 “왼쪽 풀백 찾기가 어렵다. 고등학교까지 뒤졌지만 마땅한 선수가 없다”는 말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A대표팀과의 스페셜 매치에서 김 감독은 왼쪽 측면 수비 자리에 강윤성(제주)과 김진야(서울)를 번갈아 기용했다. 둘 다 오른발잡이이자 다양한 포지션 소화가 가능한 멀티플레이어들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