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 ‘성골’ 모임…‘제2 하나회’ 눈총
▲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1월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재경 대구·경북 신년교례회에서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에게 앞자리로 올 것을 권유하고 있다. 이들은 영포회의 양대 기둥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
논란의 핵심에는 ‘영포회’가 자리잡고 있다. ‘영포회’는 영일·포항 출신 5급 이상 고위공직자 출신들이 주축이 된 모임이다. 이번 사찰을 주도한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 역시 ‘영포회’ 소속이다. ‘영포회’는 이번 사건으로 비로소 일반인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만 사실 정권 초부터 정치권 호사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구설에 올랐던 조직이다.
5공화국 시절 막강 사조직으로 구설에 자주 오르내렸던 ‘하나회’와 비견될 정도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영포회’의 실체를 들여다 봤다.
정부 조직 내에서 영포회는 이명박 대통령의 친위대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이 대통령의 신임도 두텁다. 대통령 입장에서 이들은 정부 주요 조직 내에 몸담은 상태에서 정책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우군이다. 이 대통령의 친위대로 알려진 만큼 영포회를 둘러싼 잡음과 구설수도 끊이질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해 10월 청와대에서 일어난 활극 사건이다.
영포회 멤버로 청와대 1급 비서관이었던 한 인사는 청와대 비서동 건물 2층 경제금융비서관실로 찾아가 모 행정관에게 욕설을 퍼붓는 등 큰 소동을 일으킨 바 있다. 그는 같은 직급선상에 있는 다른 비서관이 찾아와 말리자 오히려 그에게도 “당신도 두고 보자”고 윽박지르기까지 했다. 당시 청와대 내부에서는 소동을 일으킨 비서관이 이 대통령과 같은 고향(포항) 출신이어서 쉬쉬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영포회 멤버인 또 다른 비서관이 연관된 해프닝이 한 달 뒤에 또 발생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회의 참석차 싱가포르를 방문 중이었는데 이 기간에 부산사격장 화재 사건이 발생해 일본인 7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이 사건을 비서진이 아닌 하토야마 일본 총리로부터 전해듣고 크게 격노한 바 있다. 이 당시 관련 업무를 총괄했던 비서관 역시 영포회 멤버였다. 주변에서 경질 얘기가 나왔으나 그는 경질되지 않았고, 잠시 숨고르기를 한 후 올 1월 사실상 영전하며 원래 속해있던 조직으로 복귀했다.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건 역시 영포회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사찰을 주도한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은 물론이고 그가 보고하는 지휘 계통도 총리실 보고 체계가 아닌 사실상 영포회 인맥들이다. 정운찬 국무총리나 권태신 국무총리실장도 이번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정확한 실상을 알았다고 한다.
영포회가 집단으로 물의를 일으킨 적도 있었다. 지난 2008년 11월 26일 영포회 멤버들이 정권 출범 후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인 것이 발단이 됐다. 이 자리에서 박승호 포항시장은 “이렇게 물 좋은 때에 고향 발전을 못 시키면 죄인이 된다”고 주장했고, 최영만 포항시의회 의장은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예산이 쭉쭉 내려온다”고 말했다. 포항출신 국회의원인 강석호 의원도 “속된 말로 경북 동해안이 노났다. 우리 지역구에도 콩고물이 좀 떨어지고 있다”고 거들었다.
당시 주요 인사들의 이런 발언들이 문제가 되자 한나라당 내에서도 영포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대두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현 정권 실세 조직으로 불리는 영포회에는 도대체 어떤 인사들이 소속되어 있을까. 영포회와 관련해 정확한 명단은 알려진 바 없지만 대략 100명 전후의 인사들이 속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각 정부 부처 내에서 이른바 ‘성골’로 불리기도 한다.
<일요신문>이 여러 정치권 관계자들과 경상북도 향우공무원회 인사들을 통해 확인한 결과 15~20명 정도의 정부 고위직 인사와 70~80명 정도의 5급 이상 공무원들이 영포회에 소속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에서도 복수의 관계자들 사이에서 확인된 고위 공직자 및 정치인들을 대략 꼽아보면 다음과 같았다.
먼저 이명박 대통령의 형님인 이상득 의원과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사실상 이 모임의 양대 산맥을 구축하고 있다. 2008년 11월 모임 때 이 의원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참석하지 않았고, 최 위원장만 참석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당시 최 위원장은 건배사를 통해 ‘이대로’를 선창했고, 다른 멤버들은 ‘나가자’로 화답했다고 한다.
정부 고위인사로는 권종락 외교부 1차관과 이병욱 환경부 차관 등이 꼽힌다.
실세 중의 실세는 주로 청와대와 총리실에 몸을 담고 있다. 청와대에서는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을 비롯해 이상휘 춘추관장, 심학봉 지식경제비서관 등이 대표적인 영포회 멤버로 꼽힌다. 국무총리실에서는 선진국민연대 출신의 박영준 국무차장이 주축이다. 민간인 사찰을 주도한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에 대해서는 영포회 측이 “정식 회원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민주당의 신건 의원은 “30여 명에 이르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총괄하고 있는 이 지원관이 관련 내용에 대한 보고를 국무총리가 아닌 박영준 국무차장과 청와대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에게 하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정치권에서는 포항이 지역구인 이병석 의원과 봉화·양양이 지역구인 강석호 의원이 핵심 멤버로 꼽힌다. 최영만 포항시의회 의장과 박승호 포항시장도 열혈 영포회 멤버다.
경찰청장으로 내정됐다 용산참사 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도 영포회 멤버다. 차기 경찰청장으로 유력한 이강덕 부산청장 역시 대표적인 영포회 멤버다. 그는 정권 초기 청와대 치안비서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박명재 전 행정자치부 장관의 경우 영포회 초대 회장을 맡은 바 있고 박대원 KOICA(한국국제협력단) 상임위원 등 굵직굵직한 인사들도 영포회 멤버로 알려졌다.
이뿐만 아니었다. 취재결과 정부 각 부처에도 사무관 이상 영포회 멤버들이 포진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야당에서는 이번 국무총리실 불법 민간인 사찰을 ‘영포 게이트’로 규정짓고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영포회’를 군부정권 시절 실세 조직이었던 ‘하나회’에 비유하고 있을 정도다.
현 정권 출범 초부터 청와대와 정부 요직에 포진하면서 ‘실세조직’으로 막강 파워를 과시해 온 ‘영포회’가 과연 부메랑이 되어 이 대통령에게 돌아올지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