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경+잔치 관광상품 안될까요?
▲ ‘한국 바둑 투어’에 참가한 일본인들이 이세돌 9단에게 지도를 받고 있다. |
기전 규모는 우리 돈으로 약 8500만 원에 우승 상금 3500만 원, 준우승 1400만 원이다. 전체 예산에서 상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좀 큰 느낌이다. 우승-준우승 외에 약 900만 원 상당의 상품이 걸린 ‘베스트 드레서’상이란 게 있다. 여성 대회의 묘미를 살린 발상이다. 선수들은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옷차림에도 신경을 써야 할 듯^^. 상은 다채로울수록, 종류가 많을수록 좋다.
양쯔강 하류, 대운하의 남단인 쑤저우는 인근 항저우(杭州)와 함께 중국의 대표적 명승지로 꼽히는데, 사방이 운하인데다 곳곳에 호수와 연못이 있는 ‘물의 도시’이며 그와 어우러진 아름다운 정원들이 또한 세계적 명성을 누리고 있다.
이웃 항저우는 이미 바둑으로 유명해져 있다. 20만여 평의 넓은 부지에 34층짜리 바둑회관이 대회 대국 지도 강의 연구에 숙박까지 망라하고 있어 바둑을 통한 관광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쑤저우도 항저우의 그런 바둑 효과를 벤치마킹하고 첫 삽을 뜨는 것인지 모르겠다.
대회는 9월 11일부터 14일까지 열린다. 한국 3명, 중국 5명, 일본 3명, 기타 지역 5명 등 16명이 제한시간 각 1시간의 단판 승부 토너먼트를 벌인다.
현재 여류프로를 위한 세계무대는 우리가 주최하는 국가 대항 단체전인 ‘정관장배’가 유일한 기전으로 8회를 치렀는데, 이제 개인전 하나가 늘어나게 되었다. 세계 바둑계, 특히 한-중-일은 물론 환영 일색이지만, “대회 명칭에 ‘제1회’라고 넣지 않은 것을 보면 이번에도 혹시 단발성으로 그치는 것 아니냐”면서 우려의 소리도 없지 않다. 솔직한 전망은 아무래도 단발성 같다는 쪽에 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 그동안 한 번 열고 막을 내린 대회가 제법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1990년대에 주최했던 ‘보해배’, 2000년대 초반에 의욕적으로 출발했던 ‘흥창배’ 등이 단명했고, 중국은 조금 더 심해서 1993년의 ‘추이바오배’, 2000년 ‘동방항공배’, 2002년 ‘호작배’, 2006년 ‘대리배’, 2007년 ‘원양부동산배’ 등이 전부 1회로 끝났던 것. 투자에 비해 홍보 효과가 별로 크지 않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여성 기전이 생겨 반갑다는 것과는 별개로 생각되는 것은 ‘바둑과 관광’이다. 바둑은 훌륭한 관광 상품이다. 유럽이나 미주의 오픈 바둑대회가 챔피언십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콩그레스(Congress)라고 하는 것은 관광 혹은 레저의 뜻을 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혼자 바둑대회가 열리는 곳에 찾아가 승부 바둑 몇 판 두고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가족 친구와 함께 가 바둑과 레저를 즐기는 것. 더욱이 아마추어라면 이게 원안이다.
우리나라도 아마추어 대회는 점차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해마다 7월 휴가철에 충북 제천에서 열리는 ‘청풍명월’ 바둑대회가 좋은 예다. 5명이 한 팀을 이루어 단체전을 벌인다. 5명은 보통 아마 대회에 출전하는, 이름 있는 아마 강자들이 아니다. 직장 동네 동호회 친구들이 팀을 만들어 나와서 주말 2박3일 경치 좋은 제천 의림지 주변 시원한 바람 속에서 낮에는 바둑 두고, 저녁에는 바비큐 파티를 즐긴다.
일본은 이미 오래전부터 ‘바둑 투어’라는 게 있었다. 여름에는 바닷가, 겨울에는 온천을 찾아간다. 크루즈도 있다. 프로기사가 동행하는 경우가 많아 여행 틈틈이 지도를 받는다. 얼마 전에는, 외대 바둑부 출신으로 일본에서 사업하고 있는 아마 강자 홍민화 씨(40)가 ‘한국 바둑 투어’를 기획해 일본 바둑팬들 이끌고 한국을 찾아오고 있다. 1인당 200만 원에 2박3일 일정으로 한국 바둑계를 견학하면서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9단 등 세계 정상 기사들에게 다면기로 지도를 한 판 받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기전도 발상을 한번 전환해 보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니, 바둑 쪽에서보다 관광업계 쪽에서 바둑계와 상의해 여행 장소와 일정을 특히 세계기전 같은 것과 맞추어 여행 일정 속에 세계바둑대회 관전을 집어넣는 것.
바둑은 어차피 앞으로도 상당 기간은 한-중-일의 각축일 텐데, 월드컵처럼 전 세계가 참여하는 것도 아니고, 매번 달랑 세 나라가 치고받아 누가 1등, 누가 2등 하는 것은 이제 무슨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게 아닐 것이니 차라리 여행 관광 등으로 외연을 확장하는 것이 바둑 보급에도 효과적이지 않을까.
이번에 새로 출범하는 ‘궁륭산병성’ 대회부터 우리도 바둑 관광단을 한번 모집해 보는 것은 어떨까. 쑤저우는 그냥이라도 가 볼만한 곳이니까 말이다.
이광구 바둑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