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땡기는 제안 없어?
▲ 영화 <이클립스>. |
연애를 잘 못하는 남자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데이트 신청에 서투르다는 점이다. “혹시, 영화 좋아하세요?” “어떤 영화 좋아하세요?” “액션 영화는 어떠세요?” “언제 시간이 괜찮으세요?” 등 영화 한 편 보자고 제안하는데도 이렇게나 많은 질문을 늘어놓는다. 다짜고짜 섹스하자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나? 그런데 연애를 잘하는 남자는 다르다. 일단, 여자가 원하는 것을 제대로 알고, 좀 더 행동을 이끌 수 있도록 제안을 한다. 말하자면 “영화 좋아하세요?”가 아니라 “재밌는 영화 보러 가요”라고. 물론 연애 잘하는 남자는 첫 데이트에 ‘영화’보다 좀 더 특별한 것을 제안하는 경우가 더 많지만 말이다.
얼마 전 나에게 데이트를 청했던 남자는 “펜타포트 페스티벌에 같이 가요!”라고 제안했다. 최근 문화 관련 종사자들에겐 세계적인 뮤지션들이 대거 등장하는 뮤직 페스티벌이 화제다. 그가 이 사실을 알았는지, 아니면 모르고도 펜타포트 페스티벌에 가자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나는 그의 제안에 끌렸다. 그에게 끌린 게 아니라 펜타포트에 편하게 가고 싶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너무 추남도, 완전 무매력도 아니었으니, 나의 대답은 당연히 “YES”였다. 차가 없던 시절에는 “가까운 교외로 드라이브나 갈까요?”라는 말만 들으면, 상대와 상관없이 ‘한번 나가볼까’ 했던 적도 많다. 와인에 한창 빠졌을 때에는 내 입맛에 맞는 와인을 권하는 남자가 그토록 멋져 보였다. 그때 나는 그가 추천하는 와인을 맛보고 싶어서 한창 데이트를 하곤 했다. 와인을 통해 나누는 그와의 대화가 즐거웠던 것이다.
한번은 이런 적도 있다. 5년 넘게 전화로 통화만 하던 모기업의 홍보팀 남자가 미팅을 요청했다. “이렇게 오래 통화를 하니 친한 것 같은데 얼굴도 모르는 건 웃기잖아요. 한번 뵈어요. 제가 모시러 갈게요”라는 것이 그의 얘기였다. 회사 앞까지 데리러 온다는데 마다할 필요가 있나. 역시 OK. 그런데 막상 나타난 그는 키가 160cm도 안 되는 추남이었다. 마음 속으로 ‘앗, 실망’을 외치고 있을 때, 그가 말했다. “일산에 가서 초밥 먹을까요?” 그러더니 자유로로 들어서는 게 아닌가. 낭패스러웠다. 머릿속에서 ‘웬일이야. 논현동인 집까지 가려면 이 남자와 적어도 4시간 이상은 데이트를 해야 하는 거야? 게다가 이 남자, 입만 열면 왜 이렇게 썰렁해. 오, 마이, 갓!’이라고 독백을 하고 있는데, 그가 갑자기 차를 세웠다. 그리고 차 천정을 열었다. 차가 컨버터블 카였던 것. 갑자기 자유로의 드라이브가 즐거워졌다. 썰렁한 농담 대신 바비킴의 ‘고래의 꿈’을 들려준 그에게 고마웠다고 하면 너무한가? 어쨌든 다음날 “선배, 그 남자 어땠어요?”라고 묻는 후배의 질문에 내 대답은 “페라리 컨버터블이 즐거웠어”였다. 내가 끌렸던 것은 그가 아니라 페라리였던 것이다.
데이트 초기, 상대의 마음을 사는 것은 자신의 외모일 수도, 패션 센스일 수도, 상대를 웃기는 말발일 수도, 아니면 비싼 선물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내가 가지고 있을수록 성공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다. 몸매가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를 위해 가슴 수술 대신 쌍꺼풀 수술을 해봤자 소용없다는 말씀. 쭉쭉빵빵 몸짱을 좋아하는 남자를 얻기 위해서는 가슴 수술, 즉 그가 끌릴 만한 제안을 해야 하지 않겠나. 섹스도 마찬가지다. 권태로운 섹스에 지친 여자에게 평소와 비슷하게 접근해서 애무를 해봤자 여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런데 뭔가 여자가 ‘아, 이거 해보고 싶다’라고 생각할 만한 이벤트가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것이 포르노에서 본 신기한 장면일 수도 있고, 새로 발견한 호텔급 모텔일 수도 있고, 소소하게는 평소 해보지 않은 체위의 제안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남자가 뭔가 새로운, 그리고 여자가 끌릴 만한 제안을 할 때, 여자는 외면하기 어려우니까. 여자가 어떤 애무에, 어떤 섹스에 끌리는지 전혀 감을 못 잡겠다면, 잡지를 이용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다.
“오늘 밤, 어때?”라는 평범한 제안은 불충분하다. “오늘 밤, 특별한 서비스를 해줄게” 정도는 되어야 여자도 오늘의 섹스를 기대하게 마련. 몸이 피곤하여 ‘NO’라고 말하고 싶다가도, ‘특별한 서비스?’에 솔깃해 ‘그럼 한번 해볼까’라고 생각하게 될 테니까. 섹스를 하고 싶다고? 여자가 끌릴 법한 제안, 애티튜드가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막상 섹스에 별 특별한 게 없다 하더라도, 섹스를 기다리는 동안의 그 기대감 자체가 자극적이니, 그것으로도 좋지 아니한가. 물론 양치기 소년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서비스라도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박훈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