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 1위에도 해외사업 타격 주가 제자리…정 회장 지분 많은 현대엔지니어링 합병은 주주 반발 가능성
정의선 회장 체제가 본격화하면서 현대건설의 주가와 움직임이 주목받는다.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건설 본사. 사진=연합뉴스
현대건설이 주식시장에서 좀처럼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1월 현대건설 주가는 종가 기준 4만 원대 안팎을 유지했으나, 확산이 본격화한 3월 2만 원대로 떨어지더니 4월부터 줄곧 3만 원대 초중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 한남3구역 재개발 등 굵직한 사업 수주로 국내 도시정비사업 수주액 1위를 기록하고 해외건설협회 기준 해외 수주계약에서도 1위에 오른 실적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특히 코스피 지수가 지난 23일 2600을 돌파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3월 이후 고공 행진한 점을 고려하면 매우 부진한 모습이다.
현대건설의 주가에 대해서는 코로나19로 해외사업에서 타격을 받아 저평가됐다는 의견이 많다. 올 3분기 연결기준 매출과 영업이익도 각각 4조 425억 원, 1398억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1%, 41.6% 줄었다. 건설사마다 해외사업이 막힌 가운데 GS건설, 대림산업 등 주택사업 비중을 넓힌 건설사는 성장했다. 현대건설도 주택사업은 호조세였으나 매출 비중 높은 해외사업에서 코로나19에 따른 공사 지연으로 수익성이 떨어졌다는 설명.
장문준 KB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 영향으로 신규 프로젝트 착공이 늦어지고, 공기 지연에 따른 추가원가 반영으로 올해 실적은 기대 이하”라며 “양호한 주택공급과 해외수주에도 해외부문 이익률이 개선되지 못해 주가도 부진하다”고 분석했다. 박형렬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건설업계 평균 해외 매출은 10%대지만 현대건설은 연결기준 전체 매출 중 35%가 해외다. 해외 현장 공기 지연에 따른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와중에 현대차그룹이 지난 10월부터 정의선 회장 체제로 들어서면서 지배구조 재편 필요성과 함께 현대ENG와 현대건설 합병설이 다시 고개를 든다. 정 회장 보유 지분이 많은 현대ENG 지분을 활용하기 위해 현대건설과 합병해 우회상장하거나 자체 IPO로 현금을 마련한다는 시나리오다.
정 회장은 회장직은 물려받았지만 경영권 확보의 핵심인 지분은 승계하지 못했다.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를 끊어내는 동시에 모비스 지분을 늘려 최대주주로 올라서고, 정몽구 명예회장 지분도 넘겨받아야 한다. 현재 보유한 모비스 지분은 0.32%에 불과하다. 방식은 다양하지만 자신이 최대주주인 현대글로비스를 현대모비스와 합병하고 현대제철과 기아차가 보유한 모비스 지분을 사들이는 방안이 유력하게 꼽힌다.
정의선 회장은 모비스 지분을 늘리고자 글로비스(23.29%), 현대차(2.62%) 등 계열사에 대한 개인 지분을 활용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지분 11.72%를 보유한 비상장사 현대ENG도 자금줄 역할을 할 수 있다. 현대ENG 지분을 현금화하면 모비스 지분을 추가 확보하고 아버지 주식을 증여받을 때 세금 재원으로 쓸 수 있다.
정의선 체제로 들어서면서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현대ENG) 합병설이 다시 주목을 받지만, 가능성에는 회의적 시선이 많다. 정의선 회장이 수석부회장 시절이던 2019년 2월 경기 현대기아차 기술연구소에서 회사 사업과 관련해 설명하는 모습. 사진=일요신문DB
현대ENG 지분으로 현금을 쥐려면 상장사로 전환해야 한다. 현대건설과 합병을 통한 우회상장은 자체 IPO에 드는 시간을 줄여 더 빨리 상장주식을 취득할 수 있다. 특히 현대건설은 현대ENG 지분 38.62%를 가진 최대주주다. 합병시 정 회장의 현대ENG 지분 11.72%는 합병회사 지분으로 바뀌면서 주식 교환 및 현금화가 용이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최근 현대건설 주가 부진이 현대ENG와 합병에서 정의선 회장 지분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눈여겨볼 만하다. 정 회장 입장에서 유리한 합병 비율을 산정하려면 지분이 많은 현대ENG 가치는 높을수록, 현대건설 가치는 낮을수록 좋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사측이 현대건설 주가를 부양할 생각이 없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현대건설 주가가 낮은 상태에서 합병을 추진하면 주주 반발 가능성이 높다. 상장사와 비상장사 간 합병에서 상장사는 시장 가치인 주가를 기준으로 합병비율이 산정되지만, 비상장사는 수익과 자산 등 다양한 요인으로 평가받는다. 주가가 낮은 현대건설 가치는 저평가될 수 있고, 현대ENG도 장외 거래가는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해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합병 비율을 오너 일가에 유리하도록 산정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현대차 계열사와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현대건설 지분은 34.92%지만, 지난 25일 기준 외국인과 국민연금 보유 지분도 각각 20.08%, 9.97%나 된다.
현대차그룹은 2018년 모비스를 존속법인과 분할법인으로 나누고, 분할법인을 글로비스와 합병하는 개편안을 내놨다가 철회한 전례가 있다. 합병 비율이 모비스 주주에게 불리하게 책정됐다는 이유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와 기관 투자자 등 주주들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같은 상장사로서 시장 가격을 책정해 합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도 삼성물산이 저평가된 상태에서 추진됐다는 문제제기로 지금까지 재판을 받고 있다.
금융투자(IB)업계 관계자는 “시장 거래가에 따른 상장사 간 합병도 대주주 전횡 지적이 나오는데, 거품이 더 낄 수 있는 비상장사와 합병은 더 많은 잡음을 낼 수 있다”며 “현대건설 주주들이 합병 비율 산정 문제로 반대할 가능성이 높고, 대주주 사익 편취나 주주이익 탈취 등 비난 여론과 소송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주가 하락과 관련해 “주가는 시장의 흐름이나 남북관계 등에 따라 움직이기에 사업 성과와 크게 관계없다”고 답했다. 현대ENG와 합병 가능성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논의된 바 없다”고 일축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