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도 우직하게…그것이 내 스타일”
▲ 7·28 재보선 태백·영월·평창·정선 선거구에서 당선된 민주당 최종원 당선자. 그는 “주민들과 함께 신명나는 지역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연합뉴스 |
―먼저 당선 소감을 밝힌다면.
▲지역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달라는 지역민들의 강한 바람으로 당선된 것이라 본다. 앞으로 지역을 위해 국회에서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박지원 원내대표를 만나고 나오는 길이라고 들었다. 어떤 얘기가 오갔나.
▲축하말씀과 앞으로 열심히 해보자는 얘기를 해주셨다. 또 상임위 배정이 있었는데 문광위로 배정되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특성을 살려서 해볼 생각이다.
―선거운동 기간 중 당선에 대한 확신이 들었나.
▲공천을 늦게 받아서 자신감이나 확신보다는 주변정리도 제대로 못하고 갑작스럽게 뛰어들었다. 상대 후보는 벌써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표밭을 다져온 상태였기 때문에 사실 승리에 대해 희망적 느낌보다는 불안감이 컸다.
최종원 당선자가 출마를 결심하기까지는 이곳의 지역구 의원이던 이광재 강원지사의 노력이 컸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번 재보선 과정에서 민주당은 외부인사 영입에 어려움을 겪었고 최 당선자가 출마했던 강원 태백·영월·평창·정선의 경우에도 엄기영 전 MBC 사장의 영입설이 나돌았으나 결국 본인의 고사로 불발되었던 상황. 최 당선자는 “이광재 지사가 여러 번 부탁을 해 결국 마음을 바꾸게 되었다”고 밝혔다.
―출마를 결심하기까지 고심이 컸을 것 같은데.
▲애초엔 선거에 나가자는 생각이나 욕심이 전혀 없었다. 처음 부탁을 받고서도 ‘난 그냥 이대로 살고 싶다’고 그랬는데 이광재 지사가 거듭 부탁을 해서 마음이 움직인 게 사실이다. 내 평생에 이런 선거는 처음이고 내 나이가 젊은 것도 아니고 환갑 나이에 출마하는데 ‘만약 떨어지면 무슨 망신이냐’ 하는 걱정도 컸다. 지역의 여러 어르신들도 ‘왜 그냥 배우 하지 정치를 하려고 하느냐’고 그러셔서 갑갑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배우로서 여러분들께 기쁨도 슬픔도 다 드렸으니까 이제는 다른 모습으로 어르신들을 모시려고 한다는 말씀으로 설득해 갔다.
―직무 정지를 당한 이광재 지사에 대한 동정론이 선거 승리에 작용했다고 보나.
▲아무래도 그렇지 않았겠나. 이광재 지사는 정치인으로서 나의 ‘모델 케이스’이다. 2004년 총선에 출마했을 때 이 지사가 협조를 요청했고 그 때 내가 정치인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많은 젊은 층을 위주로 선거운동을 많이 해줬다. 만약 이 지사가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잘못했다면 나도 반대 입장에 섰을 텐데, 이 지사가 너무 열심히 최선을 다해 2선이 되는 걸 지켜보면서 나라를 위하고 지역을 위할 수 있는 근본적 자질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지역구뿐만이 아니라 강원도를 위해서 많은 일을 했으니까 도민들의 전폭적 지지로 도지사가 된 것이 아니겠는가. 이 지사의 부탁을 받고 며칠을 고민하다가 ‘내가 40년 배우 인생을 ‘턴’할 때는 무언가 의미가 있어야 하는데 그 명분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내가 그동안 내 고향을 바라보며 느꼈던 점들, 아직도 폐광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고향의 친구들이나 여러 어르신들을 위해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결심할 수 있었다.
최종원 당선자는 엄기영 전 MBC 사장의 최근 행보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내놓았다. 민주당의 러브콜을 고사했던 엄 전 사장은 재보선 선거운동 기간 중 강원 지역에 출마한 한나라당 후보들의 선거사무실을 잇달아 방문해 눈길을 끈 바 있다. 7월 25일엔 최 당선자가 출마했던 태백·영월·평창·정선의 한나라당 염동열 후보의 선거사무실을 찾기도 했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이광재 강원지사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도지사직에서 물러날 경우 강원지사 보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한 행보라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엄기영 씨가 사장을 관두기까지 여러 가지 문제가 많지 않았나. 그런 상황에서 내가 ‘날 도와 달라’고 전화할 이유도 없었지만…그렇게 (염동열 후보 사무실에) 나타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방송 일을 관둔 사람이 저런 행동을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개인적 친분관계 때문이라고는 했지만 그렇게 바라보는 이들은 아무도 없지 않나. ‘정치놀음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장 예민한 선거 막바지에 그렇게 처신했다는 건 정말 올바르지 않은 거였다.
―얼마 전 방송인 김미화 씨가 거론한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이런 일은 지금의 시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시대에 블랙리스트가 나돌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면 엄청난 민주주의의 후퇴 아닌가. 엄기영 씨도 피해를 본 당사자이고, 신경민 씨, 김제동, 문성근, 명계남, 윤도현, 권해효까지 모두 피해 보고 있는 상황이다. 누구나 인간은 자유가 있고 내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건 개인의 권리인데 이를 ‘좌파=공산당’으로 몰아붙이는 작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건 마치 해방정국과 같은 혼돈과 혼란 상황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가 하면 유인촌 장관을 비판해 주목을 끌기도 했는데. ‘만나면 한 대 때려주고 싶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정말로 사람이 왜 그렇게 변질됐는지 안타깝고 울분과 분노가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달리 표현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적 친분을 담아 ‘좀 패주고 싶다’ 그렇게 말한 거다. 문화예술계 사람들은 ‘쌍소리’까지 섞어가며 ‘유인촌이 왜 저렇게 변했느냐’고들 한다. 3년이 채 못 되었지만 최장수 문광부 장관으로 있는 동안 여러 문화정책들이 굉장히 후퇴하고 있다.
최종원 당선자는 유인촌 장관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거친 표현으로 그를 비판했다. 그는 “9월 국정감사에서 유인촌 장관의 폐해에 대해 면밀히 조사하고 따질 것”이라는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무대 위의 연예인 동료에서, 이제는 국회에서 감사자와 피감자로 마주치게 될 두 사람의 관계는 ‘가깝고도 먼’ 사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종원 당선자는 앞으로 펼쳐질 정치인으로의 새 삶에 대해 “굳이 정치인으로 변신한다기보다는 내가 살아온 조금은 우직하고 모자랄지 모르는 인생이지만 계속해서 ‘인간 최종원’으로 남고 싶다”고 밝혔다. 앞서의 많은 연예인 출신 정치인들을 바라보며 “만약 내가 한다면 저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다는 최 당선자. 그가 험난한 대한민국의 정치판에 ‘물들지’ 않고 지금의 초심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
또 한 명의 화제 인물 윤진식 당선자
‘배꼽인사’ 터득한 ‘경제브레인’
대선 경선이 끝난 뒤 본선이 한창이던 지난 2007년 10월. 한나라당 여의도 당사 기자실에 깔끔하게 옷을 차려 입은 중년 신사 두 명이 쭈뼛쭈뼛 들어섰다. 당시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 선언을 하기 위해 각종 단체며 유명인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 왔기 때문에 기자들의 시선은 여전히 모니터에 꽂혀 있었다. 그 두 사람은 바로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과 황영기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민생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경제공약에 반영하기 위해 설치된 경제살리기특위 부위원장 자격으로 한나라당을 찾은 것이다. 이 후보가 직접 사령탑을 맡은 경제살리기특위에 대한 간단한 소개 후 기자들에게 점심 식사를 함께하자고 청했다. 당사 인근 설렁탕집에 모인 기자는 고작 10명 안팎이었다.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받고 말 한마디가 대서특필되던 ‘고위 관료’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윤진식 전 장관의 여의도 신고식은 이처럼 조촐했다. 그러던 그가 7·28 재보선을 통해 화려하게 여의도에 입성했다. 윤진식 당선자(의원)는 선거결과가 나온 직후 “이번 선거가 인물론과 정권심판론의 대결이었지만 낙후된 충주 발전에 실망했던 충주시민들은 결국 인물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에 정치인 냄새가 물씬 풍겼다.
노무현 정부 초대 산업자원부 장관을 역임한 윤진식 당선자는 2007년 대선 이후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국가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고, 18대 총선에선 한나라당의 권유로 충북 충주에 나가 낙선하기도 했다. 그 뒤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으로 모처럼 여유로운 삶을 즐기다(?)가 이명박 대통령의 강권으로 지난해 1·19 인사에서 경제수석비서관으로 ‘나 홀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윤 당선자는 청와대 경제수석을 맡은 지 불과 7개월여 뒤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승진’했다. 대통령실장이 정무라인을 챙겼다면 윤 당선자가 정책라인을 챙겨 사실상 ‘MB 노믹스’의 최고 집행자 역할을 맡은 것이다.
경제수석과 정책실장 시절 윤 당선자는 ‘월화수목금금금’으로 표현되는 워커홀릭으로 유명했다. 일요일에 정상 출근하는 것은 물론, 청와대 공식 휴일인 토요일에도 점심때가 되면 어김없이 출근 도장을 찍었다. 저녁때도 마찬가지였다. 모처럼 잡힌 저녁 약속에서 ‘소폭’(소주·맥주 폭탄주)이 몇 순배 돌았더라도 꼭 다시 청와대로 복귀해 그날 일을 마무리했다.
큰소리를 내지 않는 윤 당선자지만 업무에서만큼은 집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번 일을 맡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고 해서 붙여진 ‘진돗개’라는 별명에 걸맞게 논란이 이는 정책이 있으면 당사자들을 불러 몇 시간씩 회의를 해서라도 결론을 냈다고 한다.
입이 무겁기로도 유명하다. 기자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지만 점심 또는 저녁 식사를 하더라도 기삿거리가 되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아 취재원으로선 인기가 없었다. 오히려 기자들이 식사 자리에 경제수석실 산하 비서관들과 함께 와 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그는 사석에서 편하게 얘기하다가도 정치가 화제가 되면 손사래를 쳤다. 가끔 18대 총선에서 낙선한 것을 언급하며 “정치, 쉬운 게 아니더라”라고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청주고 동기인 민주당 이시종 의원과 박빙의 승부를 펼쳤으나 1582표 차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윤 당선자는 “사실 선거에 나가긴 나갔는데 어떻게 했는지 잘 모르겠다. 여기서 오라고 하면 여기로 가고, 저기서 오라면 거기로 가고…. 선거기간 내내 붕붕 떠 다녔다. 선거를 돕겠다고 사람들이 몰려왔는데 진짜 돕는 줄 알았다. 아군과 적군을 구별도 못했을 정도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런 그가 그로부터 2년여 만에 이시종 전 의원의 충북도지사 당선으로 ‘주인’을 잃은 충주를 접수했다. 윤 당선자가 충주 보궐선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당시 이시종 의원이 지방선거 출마를 저울질하면서부터다. 이시종 지사는 지난 2월 11일 충북지사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직후 후임을 뽑는 보궐선거에 세간의 관심이 쏠렸으며 윤 당선자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당시 청와대 안팎에선 경제 브레인인 윤 당선자를 대통령이 과연 놓아줄 것인지에 시선이 쏠렸다.
한 달 보름 후인 3월 23일 청와대가 윤 당선자가 겸임하던 경제수석을 신설하는 직제 개편을 단행하면서 윤 당선자의 재보선 출마가 사실상 공식화됐다. 청와대는 “윤 실장의 거취와 관련돼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밝혔지만 경제수석에 최중경 차관이 발탁되면서 윤 당선자의 재보선 출마를 이 대통령이 허락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윤 당선자가 선거에 나설 경우 중량감 있는 인물이 경제수석에 임명될 가능성이 크고, 반대일 경우 윤 당선자와 호흡을 맞춘 비서관들 중에서 발탁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결국 최중경 수석이 낙점되면서 그는 청와대 업무에서 사실상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지난 5월 25일 윤 당선자는 재보선 출마를 위해 공식 사의를 표명하고 충주로 내려갔다. 그는 충주에 내려가자마자 맹정섭 당시 무소속 후보에게 “양의 탈을 쓴 정치 사기꾼”이라는 비난을 받았으며, 선거기간 맹 후보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당초 한나라당에 공천 신청을 하기도 했던 맹 후보와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가 진행되고 한나라당발 각종 악재로 선거 결과는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이처럼 18대 총선 때보다 더 상황이 열악함에도 윤 당선자가 여의도 입성에 성공한 요인 중 하나는 바로 ‘변신’이었다. 그의 ‘배꼽인사’가 대표적인 예. 윤 당선자의 선거 참모들은 “18대 총선에선 유권자들이 다가와도 쉽게 손을 내밀지 못하는 수줍음 많은 관료 출신이었다면, 이번 재보선에선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것은 물론 눈만 마주치면 득달같이 다가가 손을 잡는 ‘반 정치인’으로 변해 있었다”고 전했다.
윤 당선자는 당선 소감으로 “충주의 새로운 도약을 갈망하는 시민 여러분의 여망에 부응하기 위해 서민을 먼저 챙기고 지역 발전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겠다”면서 “그 결과로 2년 뒤 충주 시민들에게 심판을 받겠다”고 말했다. 그의 눈은 벌써 19대 총선에 가 있을 정도로 어느덧 ‘진짜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이다.
전용기 파이낸셜뉴스 기자 courage@fnnews.com
‘배꼽인사’ 터득한 ‘경제브레인’
▲ 윤진식 당선자와 부인 백경애 씨가 28일 충주 재선거에서 승리를 확정지은 뒤 손을 들어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받고 말 한마디가 대서특필되던 ‘고위 관료’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윤진식 전 장관의 여의도 신고식은 이처럼 조촐했다. 그러던 그가 7·28 재보선을 통해 화려하게 여의도에 입성했다. 윤진식 당선자(의원)는 선거결과가 나온 직후 “이번 선거가 인물론과 정권심판론의 대결이었지만 낙후된 충주 발전에 실망했던 충주시민들은 결국 인물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에 정치인 냄새가 물씬 풍겼다.
노무현 정부 초대 산업자원부 장관을 역임한 윤진식 당선자는 2007년 대선 이후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국가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고, 18대 총선에선 한나라당의 권유로 충북 충주에 나가 낙선하기도 했다. 그 뒤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으로 모처럼 여유로운 삶을 즐기다(?)가 이명박 대통령의 강권으로 지난해 1·19 인사에서 경제수석비서관으로 ‘나 홀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윤 당선자는 청와대 경제수석을 맡은 지 불과 7개월여 뒤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승진’했다. 대통령실장이 정무라인을 챙겼다면 윤 당선자가 정책라인을 챙겨 사실상 ‘MB 노믹스’의 최고 집행자 역할을 맡은 것이다.
경제수석과 정책실장 시절 윤 당선자는 ‘월화수목금금금’으로 표현되는 워커홀릭으로 유명했다. 일요일에 정상 출근하는 것은 물론, 청와대 공식 휴일인 토요일에도 점심때가 되면 어김없이 출근 도장을 찍었다. 저녁때도 마찬가지였다. 모처럼 잡힌 저녁 약속에서 ‘소폭’(소주·맥주 폭탄주)이 몇 순배 돌았더라도 꼭 다시 청와대로 복귀해 그날 일을 마무리했다.
큰소리를 내지 않는 윤 당선자지만 업무에서만큼은 집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번 일을 맡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고 해서 붙여진 ‘진돗개’라는 별명에 걸맞게 논란이 이는 정책이 있으면 당사자들을 불러 몇 시간씩 회의를 해서라도 결론을 냈다고 한다.
입이 무겁기로도 유명하다. 기자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지만 점심 또는 저녁 식사를 하더라도 기삿거리가 되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아 취재원으로선 인기가 없었다. 오히려 기자들이 식사 자리에 경제수석실 산하 비서관들과 함께 와 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그는 사석에서 편하게 얘기하다가도 정치가 화제가 되면 손사래를 쳤다. 가끔 18대 총선에서 낙선한 것을 언급하며 “정치, 쉬운 게 아니더라”라고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청주고 동기인 민주당 이시종 의원과 박빙의 승부를 펼쳤으나 1582표 차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윤 당선자는 “사실 선거에 나가긴 나갔는데 어떻게 했는지 잘 모르겠다. 여기서 오라고 하면 여기로 가고, 저기서 오라면 거기로 가고…. 선거기간 내내 붕붕 떠 다녔다. 선거를 돕겠다고 사람들이 몰려왔는데 진짜 돕는 줄 알았다. 아군과 적군을 구별도 못했을 정도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런 그가 그로부터 2년여 만에 이시종 전 의원의 충북도지사 당선으로 ‘주인’을 잃은 충주를 접수했다. 윤 당선자가 충주 보궐선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당시 이시종 의원이 지방선거 출마를 저울질하면서부터다. 이시종 지사는 지난 2월 11일 충북지사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직후 후임을 뽑는 보궐선거에 세간의 관심이 쏠렸으며 윤 당선자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당시 청와대 안팎에선 경제 브레인인 윤 당선자를 대통령이 과연 놓아줄 것인지에 시선이 쏠렸다.
한 달 보름 후인 3월 23일 청와대가 윤 당선자가 겸임하던 경제수석을 신설하는 직제 개편을 단행하면서 윤 당선자의 재보선 출마가 사실상 공식화됐다. 청와대는 “윤 실장의 거취와 관련돼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밝혔지만 경제수석에 최중경 차관이 발탁되면서 윤 당선자의 재보선 출마를 이 대통령이 허락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윤 당선자가 선거에 나설 경우 중량감 있는 인물이 경제수석에 임명될 가능성이 크고, 반대일 경우 윤 당선자와 호흡을 맞춘 비서관들 중에서 발탁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결국 최중경 수석이 낙점되면서 그는 청와대 업무에서 사실상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지난 5월 25일 윤 당선자는 재보선 출마를 위해 공식 사의를 표명하고 충주로 내려갔다. 그는 충주에 내려가자마자 맹정섭 당시 무소속 후보에게 “양의 탈을 쓴 정치 사기꾼”이라는 비난을 받았으며, 선거기간 맹 후보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당초 한나라당에 공천 신청을 하기도 했던 맹 후보와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가 진행되고 한나라당발 각종 악재로 선거 결과는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이처럼 18대 총선 때보다 더 상황이 열악함에도 윤 당선자가 여의도 입성에 성공한 요인 중 하나는 바로 ‘변신’이었다. 그의 ‘배꼽인사’가 대표적인 예. 윤 당선자의 선거 참모들은 “18대 총선에선 유권자들이 다가와도 쉽게 손을 내밀지 못하는 수줍음 많은 관료 출신이었다면, 이번 재보선에선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것은 물론 눈만 마주치면 득달같이 다가가 손을 잡는 ‘반 정치인’으로 변해 있었다”고 전했다.
윤 당선자는 당선 소감으로 “충주의 새로운 도약을 갈망하는 시민 여러분의 여망에 부응하기 위해 서민을 먼저 챙기고 지역 발전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겠다”면서 “그 결과로 2년 뒤 충주 시민들에게 심판을 받겠다”고 말했다. 그의 눈은 벌써 19대 총선에 가 있을 정도로 어느덧 ‘진짜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이다.
전용기 파이낸셜뉴스 기자 courage@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