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은 충만한데 장소가…
▲ 영화 <스텝업> |
바야흐로 페스티벌 시즌. 인천에서 열린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을 시작으로 지산 록페스티벌, 낙산해수욕장에서 열리는 ‘써머 위크앤티 2010’이 이미 열렸고, 오는 10월에 도심 속 음악축제인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과 ‘글로벌 개더링’ 등 우리나라에도 페스티벌 문화가 자리 잡았다. 페스티벌의 라인업이 발표될 때마다 록음악을 좋아하는 음악팬들만 술렁인 것은 아니다. 록음악을 그다지 즐겨 듣지 않는 나마저도 “후바스 탱크가 온다고? 코린 베일리래? 우와 카니예 웨스트? 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든 걸 보면, 대한민국 대다수가 마음속에 페스티벌에 대한 갈망이 있었지 않았나 싶다. 음악을 좋아해서라기보다 어른들에게도 핑계 삼아 놀 거리가 필요하니까.
페스티벌은 역시 화끈했다. 폭염의 날씨가 화끈했고 브래지어가 훤히 보일 정도로 구멍이 숭숭 뚫린 티셔츠를 입은 여자들의 옷차림 역시 화끈했다. 해수욕장도 아닌데 비키니에 쇼트팬츠를 입고 돌아다니는 외국인도 보였고, 남자들 역시 상당수가 상의를 탈의한 반나체 차림이었다. 어찌나 잘생기고 멋진 남자들이 많은지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가장 화끈했던 것은 해외 뮤지션들의 공연이었다. 그들의 음악과 쇼맨십, 그리고 무대 장치는 감탄할 만한 것이었다. 그들의 음악에 맞추어 춤추고 뛰다보면 몸은 어느새 땀으로 흠뻑 젖어버렸다. 그런데 그것이 또 묘한 것이어서 땀 흘리는 남자를 보니 어쩐지 성욕이 생겼다. 평소 땀 냄새를 풍기는 남자는 비호감이지만 페스티벌에서만큼은 달랐다. 심지어 평소 남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A마저 달라보였다. 페스티벌에 가면 업계 사람을 만나는 일이 종종 있는데, 그 남자 역시 그곳에 있었다. 그런데 땀에 젖은 그를 보면서 나는 ‘아, 이 남자, 이렇게 섹시한 남자였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태양의 열기에 약간 탄 피부하며, 땀 흘린 머릿결하며, 땀에 밴 티셔츠를 보니 그가 어쩐지 섹시해 보였다고 할까. 나는 결국 그를 우리 숙소로 초대했다. 그와 함께 온 친구까지 함께. 마침 나의 일행들이 바비큐 파티를 열어 그를 유혹하기에 아주 좋은 빌미를 주었다. 그래서 그와 잤냐고? NO. 잘 만한 곳이 없었다. 우리 펜션엔 내 일행이 8명이나 있어서 들키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의 숙소에도 룸메이트가 있어서 옷을 채 벗기도 전에 들이닥칠 판이었다. 다른 데 가서 자면 된다? 페스티벌 근처의 숙소는 모두 예약되어 있어서 급조할 곳이 없었다. 페스티벌 기간의 인천과 지산은 방값이 금값이 될 정도로 방이 귀하다. 그러니 포기하는 수밖에. 하지만 그날 이후 그와 내가 묘한 감정을 갖게 되었고 전화 통화 횟수가 늘었으며 머지않아 술자리를 가질 약속을 했다. ‘다음 기회’를 노리게 된 것이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취재를 한 13년차 사진기자인 B는 내게 “지방에서 좋은 숙소를 고르는 법 알려줄까?”라며 살짝 귀띔을 해준 적이 있다. 택시를 타고 “러브호텔촌으로 가주세요”라고 하면 된다나? 그리고 그는 “좀 저속해 보이긴 해도 그만큼 깔끔한 곳이 없어. 지방에 으리으리한 호텔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겉으로 봐서는 모텔의 시설을 전혀 알 수가 없잖아. 그러니 연인들이 자주 가는 러브호텔로 가달라고 하면 딱 좋은 곳으로 안내하는 거지. 가끔 러브체어나 물침대, 거울 천장이 있는 곳이어서 웃기긴 하지만 말야”라고 덧붙였다.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바캉스 시즌에 동해로 서해로 놀러갔다가 바가지만 쓰고 여인숙 같은 방에서 머물렀던 적이 한두 번이던가. 퀴퀴한 냄새가 나는 이불을 덮고 무슨 로맨틱한 분위기가 생기겠나. 나는 충동적인 성욕 때문에 대학 동창과 모텔에 갔다가 그 허름한 분위기에 정신이 바짝 차려져 “야, 도저히 안되겠다. 우리 여기서 그만두자”라는 말을 건네고 나온 적도 있었다. 그때 그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도저히 거기서는 그와 섹스할 맛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러브호텔은 오히려 섹시하다. 자쿠지에서의 혼욕은 얼마나 짜릿한가. 러브체어의 실험적인 섹스는 또 어떻고. 심지어 나는 물컹물컹해서 자세가 잘 안 잡힌다는 물침대를 경험해보고 싶기도 하다. 러브호텔? 왜 안 돼? 한 번 가보는 거야!
마지막 사족! ‘최고의 섹스 장소를 꼽으라’는 주문에 한 친구는 “산에서의 카섹스”라고 단호하게 말한 적이 있다. 컨버터블 카의 천장을 열고 밤하늘을 바라보며 즐겼던 섹스가 최고라나. 과연 우연이었을까? 인적이 드문 산길을 찾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남자의 준비가 없었다면 분명 망신으로 끝났을 지도 모를 일. 나는 그의 철저한 준비에 박수를 치고 싶다.
박훈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