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 다수 10대, “돈 주면 다 한다” 괴로워하는 BJ 보며 열광…청소년들도 “규제 필요”
#“문제 방송 녹화해 제출해라”
한 모바일 개인방송 플랫폼에서 ‘고문’ 콘텐츠 진행 중인 BJ.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유명한 A 모바일 방송 플랫폼에서는 복수의 BJ들이 ‘고문 맛집’을 자처하고 있었다. 이 플랫폼 BJ들은 방송 제목을 ‘고문 맛집’ ‘고문해줘’ 등으로 해놓고 시청자를 모았다. 입장하면 BJ들은 두 팔을 머리 위로 들거나 머리를 두 다리 사이로 집어넣은 채 ‘얼음’ 상태로 멈춰있었다. 한겨울 밖에서 버피테스트(유산소성 근력운동)를 반복하는 BJ도 있었다. 이러한 행동은 또 다른 시청자가 풀어줄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방송 속 BJ들은 괴로움에 소리를 지르거나 “제발 풀어달라”며 애원하기도 했다.
방송에 입장하자마자 시청자의 외모와 몸매에 대한 평가를 하는 BJ도 적지 않았다. 한 BJ는 “OO님은 몸매가 좋고 얼굴도 예쁘다. 몇 살이며 사는 곳은 어디냐”고 물었다. 이 시청자가 지역명을 말하자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라고 되묻기도 했다. 또 다른 BJ는 “사진을 보니 아무개는 미드(여성의 가슴을 부르는 은어) 사이즈가 큰데 속옷 사이즈가 어떻게 되냐”고 묻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초면이었다.
개인방송의 원조 격인 또 다른 B 플랫폼에서는 BJ에게 삭발을 시키기도 했다. 한 시청자가 50대 주부 BJ에게 “100만 원을 줄 테니 머리 한 가운데를 이발하라”고 한 것. BJ는 곧바로 미용실로 가 이발을 했고 이 과정은 고스란히 방송됐다. 해당 방송 이후로도 이 BJ는 50만 원과 30만 원을 받고 삭발을 두 번 더 반복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이에 일부 시청자는 “상대가 누구든 돈을 주면 무엇이든 한다는 사실이 실시간 방송으로 보이니 인간의 존엄성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는 댓글을 남겼다.
여러 BJ의 방송을 보고 있다는 한 시청자는 “고문 콘텐츠를 운영하는 방식은 BJ마다 다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군대 유격 훈련과 같다. 버피테스트나 기마자세 등을 하라고 시킨 뒤 풀어주지 않는다. BJ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고문할 때보다 더 큰 돈을 주거나 비슷한 돈을 주면 BJ에게 방어권을 줄 수도 있다. 비용은 플랫폼에 따라 다른데 1회 1만 5000~5만 원이다. 주로 팬들이 많이 방어해준다”고 설명했다. BJ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시청자나 이를 견디기 힘든 팬들 양쪽에게 결제를 유도하는 셈이다.
문제는 시청자 가운데 상당수가 미성년자라는 점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2017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12~19세의 청소년 가운데 73.5%가 인터넷 개인방송을 시청한 경험이 있고, 63.5%가 스마트폰을 이용해 시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청소년층 상당수가 모바일 플랫폼을 통한 개인방송을 즐기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런 개인방송에 고문과 같은 극도로 자극적인 요소까지 가미됐다. 성장단계에 있는 청소년들이 가학적이고 선정적인 메시지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사회화 과정에서 그들의 현실 세계관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 한 BJ는 자신의 방송에서 “현존하는 대다수의 플랫폼에서 방송을 해봤지만 특히 최근 생긴 모바일 방송 플랫폼의 시청자 연령대가 어리다. ‘오늘 뭐했냐’고 물어보면 ‘중간고사 봤다’ ‘수행평가 못 봐서 속상하다. 애교 보여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았다. 반면 인터넷 방송의 경우 시청자 연령대가 높은 대신 입이 거친 편”이라며 시청자의 특징을 설명하기도 했다.
플레이스토어에 올라온 A 앱 이용자들의 항의 모음. 2020년 11월과 12월에 방송 중 음란물과 욕설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사진=플레이스토어 캡처
참다 못한 일부 이용자가 방송 중 일어난 문제에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으나 회사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플레이스토어에 올라온 A 모바일 방송 플랫폼 이용 후기에는 ‘방송 중 부적절한 행위’ ‘시청자의 음란한 행동 요구’ ‘욕설’ 등에 대한 불만 등이 올라와 있었다.
이에 A 앱 운영사는 12월 16일 서면을 통해 “인력 및 AI(인공지능) 시스템 등으로 24시간 모니터링을 통해 방 제목을 포함한 키워드, 이미지, 유저닉네임 등을 필터링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을 넘어설 경우 강하게 처벌한다”고 해명했다. 이어 “이용자가 불편함을 겪은 상황에 대해서는 녹화나 캡처를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면서도 “음성으로 불편함을 겪는 경우 더 좋은 조치를 위해 AI 기반의 모니터링을 2021년 도입 목표로 개발 중”이라며 “향후에도 서비스 관련 ‘건강하지 않은 이용’ 등의 의견에 적극 대처하기 위해 자사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용자들은 현실적이지 못한 대응책이라고 비판했다. 해당 플랫폼의 이용자 C 씨는 “방송 중 문제가 되는 말이 언제 나올 줄 알고 캡처나 녹화를 하겠나. 모든 방송을 녹화하며 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또 BJ 동의 없이 녹화를 할 경우 초상권 문제는 없는지 걱정돼 마음대로 녹화를 할 수도 없다. 차라리 회사 차원에서 불쾌한 콘텐츠는 하지 못하도록 규제를 좀 더 강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프라인 유대감 부족이 문제
전문가들은 미성년자의 온라인 개인방송 의존의 원인은 오프라인에서의 유대감 부족에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대학교산학협력단 연구결과에 따르면 10대 청소년들의 개인방송 시청 동기는 ‘재미’ ‘정보’ ‘또래 집단 내 의사소통’ ‘시간 때우기’ ‘대리 만족’, ‘심리적 위안’ 등이었다. 이 가운데에서도 10대 청소년들의 인터넷 개인방송 속 BJ와의 상호작용에 대한 욕구는 기부 금액의 크기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실제로 시청 시간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는 요소는 ‘재미’보다는 ‘BJ와의 심리적 거리’인 것으로 나타났다. BJ나 방송을 즐겨보는 시청자와의 유대감에 따라 개인방송 시청 시간이 늘어나고 기부 금액도 커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현재 청소년들은 오프라인 현실 세계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사람 대 사람의 소통과 관계 형성, 그리고 그것들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을 온라인 세계 속 개인방송에서 찾고 있다는 뜻이다.
흥미로운 점은 청소년들도 유해 콘텐츠를 인식하고 이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연구 조사결과에 따르면 개인방송 규제를 반대하는 청소년은 전체의 7.56%밖에 되지 않았다. 반대로 개인방송 심의제 도입 관련 찬성 비율은 청소년 응답자의 60%에 이른다. 이는 실제 개인방송을 이용하고 있는 청소년 이용자들 입장에서도 현재의 인터넷 개인방송은 문제가 많고 유해한 매체로 인식되고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이두황 경기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를 비롯한 연구진은 “젊은 세대들은 일반적으로 규제, 특히 정부 기관의 규제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인 의견을 고수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인터넷 개인방송의 심의를 통한 내용 규제는 오히려 규제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압도적이었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밝혔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