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안 무조건 관철보다 균형 잡힌 법안으로…금산분리 지고지순한 가치 아냐”
국회 정무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재계와 야당의 입장을 반영한 균형 있는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박은숙 기자
―금융맨 출신이자 당 자본시장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어떤 활동을 했나.
“정부는 소득세법의 대주주 주식보유액 기준을 10억 원에서 3억 원으로 낮추려 했는데 현재 주식시장 상황과 여론을 생각할 때 받아들이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제가 위원장으로서 정부에 이의를 제기했고, 결국 10억 원으로 그 기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 지난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국내 증시가 폭락할 때 공매도 금지를 요구했고 정부가 이를 받아들여 6개월간 시행했다. 종료되기에 이르다고 판단해 연장 의견을 개진했고 금융위원회가 이를 받아들였다.”
―개인투자자들은 공매도 폐지를 요구하고 있는데.
“공매도는 가격의 거품을 방지하는 순기능도 있고 국제시장 어디에서든 허용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만 폐지할 수는 없다.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은 기존 공매도 제도를 개선해서 해결해야 한다. 공매도 종목 제한 법적 근거 마련, 불법 공매도 과징금 상향, 무차입 공매도 관련 거래 내역 보관 규정, ‘업틱룰(호가제한 규정)’ 12개 예외조항 축소, 시장조성자 제도 개선, 개인투자자 공매도 투자 허용 범위 등, 이 중 일부는 이미 법안으로 통과되기도 했지만 더 논의하고 살펴봐야 한다.”
―정기국회 때의 정무위를 평가하자면?
“정책 중심으로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상임위를 잘 이끌어왔다고 생각한다. 국정감사 기간 동안 라임‧옵티머스 사태 등 예민한 사안이 있었음에도 단 한 번도 파행되거나 회의가 연기된 적이 없다. 저 역시 ‘기업인은 부르지 않겠다’고 선언했는데, 괜히 ‘신사 상임위’가 아니다. 좋은 법도 많이 통과됐다.”
―라임‧옵티머스 사태라는 이슈에도 왜 정무위 국감은 조용했을까.
“언론에서는 이를 권력형 비리로 전제하고 보도했지만 사실은 ‘사기형 펀드’밖에 안 된다. 권력과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고 추측성 주장만 있었을 뿐이다. 야당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눠 봐도 더 나오는 게 없었다.”
―그래도 정기국회에서 아쉬운 점을 꼽자면?
“정부의 ‘K-뉴딜’ 예산 통과할 때 야당의 반발이 조금 아쉬웠다. 또 ‘공정경제3법’ 통과 과정에서 야당과 대화가 부족했던 것 같다. 시간을 요구하는 야당과 기다릴 만큼 기다린 우리는 평행선을 달렸고 결국 단독 처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처리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는데 내년부터는 더 모범적인 상임위로 거듭나겠다.”
―입법독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데.
“저희는 나름 균형을 잡으려 많이 노력했다. 정부는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 폐지’를 도입하려 했지만 정무위는 중소기업들의 우려를 받아들여 ‘유지’하는 방향으로 법안을 수정했다. 일반 지주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보유 허용 법안(공정거래법 개정안) 역시 재계의 오랜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여당 간사로서 공정거래 질서를 찾기 위한 노력과 성장을 위한 제도개혁을 동시에 끌어내려 균형을 유지한 셈이다. 형식적으로는 합의가 아닌 단독 처리였지만 재계와 야당의 요구를 잘 반영했다고 평가한다. 정무위는 여야 간, 특히 간사 간 호흡이 좋은 편이니 앞으로도 정책 법안 처리를 잘 해낼 것이라고 본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 폐지’는 국회에서 ‘유지’로 수정된 채 통과됐다. 이에 김병욱 의원은 “중소기업들의 어려움과 검찰 별건 수사에 대한 우려가 남아 있으니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박은숙 기자
“공정위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면 법적 대응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들이 어려워질 수 있다. 또 검경수사권 조정이 이뤄지고 있는 시점에서 검찰의 별건 수사에 대한 우려도 남아 있으니 전속고발권을 유지하는 쪽으로 법안을 수정한 것이다. 여야 3명씩 6명으로 구성된 안건조정위는 3분의 2의 동의를 얻어야만 안건을 의결할 수 있기 때문에 통과를 위해 다른 당 의원의 협조가 필요하다. 그래서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정부안’을 내걸었던 것이고, 다음 단계인 정무위 전체회의에서는 과반수 의결이기 때문에 정부안보다 현실적인 ‘수정안’을 제출해서 통과시킨 것이다. 국회법에 따라 의결한 것이다.”
―상법 개정안의 ‘3%룰(감사위원 선출시 최대주주 의결권을 주주별로 3%까지 제한)’ 역시 ‘합산’이 아닌 ‘개별’ 적용으로 법안이 수정되며 개혁 취지가 퇴색됐다는 비판이 있다. 민주당이 재벌의 눈치를 봤다는 주장도 나온다.
“3%룰 개별 적용이 재계를 위한 것도 아니고, 모든 재계가 이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재계는 단지 ‘3% 제한’ 자체에 불만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대한 재계의 이견을 받아들이고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조정하려 노력했다. 무조건 정부안을 관철할 것이 아니라 재계의 우려를 반영할 필요가 있었다. 균형 잡힌 법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편법도 우려되는데.
“숫자적인 한계는 어쩔 수 없다. 특정 숫자로 의결권을 제한하면 이걸 어떻게든 극복하려 또 다른 방법을 만들어낼 것이다. 우려한 대로 수많은 계열사를 만들어 2.99%씩 지분을 쪼개는 등 편법을 저지를 수도 있지만 이에 쓰이는 막대한 증여세,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그렇게 세금을 낼 바에야 경영을 잘하는 게 낫다.”
―CVC 허용 법안 통과로 금산분리가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가 여전하다.
“우리나라에서 금산분리 원칙이 완벽하게 지켜지는 것도 아니다. 삼성전자는 삼성벤처투자라는 VC(벤처캐피털)를 운영 중이고 2018년 인터넷전문은행법 통과로 ICT(정보통신기술) 기업은 은행을 소유할 수 있다. 일반 제조기업은 VC를 차릴 수 있는데 지주회사는 못한다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 지주사에는 다양한 회사들이 있고 여러 기술을 모아 융‧복합이 가능하다. 기술적 우월성은 물론 해외 네트워킹을 활용해 기업이 주도하는 벤처캐피털을 만들자는 것인데 금산분리 원칙 때문에 가로막히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금산분리 원칙이 훼손돼야 한다는 건 아니다. 더는 지고지순한 가치가 아니라는 의미다. 금산분리의 취지는 재벌총수의 문어발식 확장을 저지하고 소수의 지분으로 경영을 장악하거나 금융기관의 사금고화를 방지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CVC 허용 법안에서 총수 일가 사익편취 등 부작용을 차단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공정경제 3법’ 가운데 상법 개정안의 ‘3%’룰이 재계와 정치권의 큰 화두로 떠올랐다. 3%가 합산이 아닌 개별로 적용되는 것에 대해 김병욱 의원은 “최대한 재계의 이견을 받아들이고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박은숙 기자
―정부의 주식 시장 정책에 이견을 내고 대통령의 공약을 담은 정부법안을 수정했다. 혹시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는지.
“여당 간사라서 항상 정부의 입장이 어떨지 생각은 한다. 그러나 누구보다 자본시장에 관심이 크고 나름의 확신도 갖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당 지도부와 정부를 설득시키고 있다.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받아들여 줄 것이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