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성은 필수? 대호도 실은 ‘뻣뻣’
▲ 이대호가 8월 14일 무등경기장에서 열린 KIA와 경기에서 2회초 투런 홈런을 치며 9경기 연속 홈런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연합뉴스 |
홈런 타자는 타고 난다?
‘천부적인 타격감각이 돋보이는 홈런 타자.’ 이대호가 9경기 연속 홈런 기록과 한 시즌 40홈런을 돌파했을 때 대부분 언론은 ‘천부적’이란 단어에 악센트를 줬다.
하일성 KBS 해설위원은 이대호를 가리켜 “거구임에도 몸의 유연성이 대단한 타자”라며 “유연성은 타고나는 것이므로, 이대호는 ‘선천적 홈런 타자’가 맞다”라고 평했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미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홈런왕 베이브 루스는 “3할 타자는 땀으로 만들어지지만, 홈런 타자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결정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대호는 부산 수영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까지 재가해 할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다. 그 통에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체구는 다른 선수들보다 훨씬 컸다. 여기다 유연성까지 갖추며 중학생 때 이미 웬만한 고교선수를 능가하는 힘을 과시했다. 루스의 말대로 이대호는 야구를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대호를 가리켜 ‘후천적 홈런왕’으로 표현하는 이도 많다. 이들은 “홈런왕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며 놀랍게도 이대호를 대표적인 선수로 든다.
롯데 김무관 타격코치는 이대호의 유연성에 의문을 나타냈다. 김 코치는 “(이)대호는 알려진 것과 달리 결코 유연한 몸을 타고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연성 테스트에서 이대호는 매번 평범한 수치를 기록했다. 되레 일반인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대호 자신도 “내 몸은 유연하지 않다”며 “되레 뻣뻣한 편”이라고 고백했다. 강타자 양준혁(삼성)은 한발 나아가 “유연성은 홈런과 별로 연관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양준혁은 “홈런은 타격 시 얼마나 순간적으로 힘을 모아 강력하게 공을 때리느냐의 문제지 유연한 몸과는 별 상관이 없다”며 “거듭된 훈련으로 홈런타자에 적합한 스윙을 구축하고, 장타에 필요한 근육을 만드는 후천적인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광권 SBS 스포츠 해설위원은 과거 MBC 청룡(LG의 전신)에서 ‘로봇 3인’과 함께 선수생활을 했다. 로봇 3인은 김상훈(SBS 스포츠 해설위원), 이광은(전 연세대 감독), 윤덕규(LG 코치)였다. 이들은 MBC에서 중심타선을 이뤘다. 이 위원은 “현역시절 세 선수는 허리를 굽혀도 손이 발에 닿지 않는 극악한 유연성으로 ‘로봇’이란 놀림을 받았다”며 “그러나 세 선수 모두 피나는 노력으로 프로야구에서 이름난 강타자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홈런 타자는 타고난 게 아니라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이대호·이승엽 투수 출신
경남고 시절 이대호는 전국고교야구대회를 휩쓸었다. 2000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는 김태균(지바롯데), 추신수(클리블랜드)와 함께 우승을 일궈냈다. 그러나 그즈음 프로 스카우트들의 보고서엔 이대호를 ‘발전가능성이 풍부한 타자’가 아닌 ‘앞으로 2, 3년 내 1군 진입이 가능한 투수’로 적고 있었다. 당시 롯데 스카우트였던 윤동배 상동 훈련장 소장은 “경남고 3학년 시절 이대호는 좋은 체격 조건을 바탕으로 시속 140㎞ 초ㆍ중반대의 강속구를 뿌리는 투수 유망주였다”며 “잘 키우면 선발진의 한 축이 될 것으로 평가했다”고 회상했다.
2001년 이대호는 2억 1000만 원의 계약금을 받고 롯데에 2차 1순위로 입단했다. 입단 당시 롯데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대호를 투수로 소개했다.
그러나 ‘투수 이대호’는 오래가지 않았다. 고교시절의 혹사로 이미 어깨를 다친 상태였다. 결국 프로 입단 1년 만에 타자로 전향했다. 이대호가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할 때 많은 야구팬이 불안한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야구전문가들의 생각은 달랐다. 오히려 이대호의 성공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대체 이유가 뭐였을까.
조찬관 KIA 스카우트 팀장은 2011 신인 지명회의 1라운드에서 오른손 투수 한승혁(덕수고)를 지명했다. 시속 150㎞의 불 같은 강속구를 뿌리는 한승혁의 지명은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러나 당시 다른 팀 스카우트들은 “한승혁이 팔꿈치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KIA 스카우트팀도 모르지 않았을 것”이라며 연방 고개를 갸웃했다.
이에 조 팀장은 “한승혁의 팔꿈치가 좋지 않은 상태였지만 재활로 극복 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며 “설령 투수로 꽃을 피우지 못해도 타자로 충분히 대성할 수 있어 1라운드에서 자신 있게 지명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해답이 숨어 있다. 좋은 투수는 좋은 타자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승엽은 경북고 재학 시절 1993년 청룡기 대회에서 우수 투수상을 수상할 정도로 촉망받는 투수 유망주였다. 하지만 1995년 삼성 입단 후 타자로 전향했다. 추신수도 마찬가지였다. 부산고 시절 시속 150㎞에 육박하는 강속구 투수로 활약하다 2000년 시애틀에 입단하며 타자로 변신했다. 가까운 일본프로야구도 사정은 비슷하다. 개인통산 홈런 868개에 빛나는 오 사다하루(소프트뱅크 회장)는 와세대실업고 시절 천재 투수였다. 하지만, 요미우리에 입단하면서 아예 타자로 탈바꿈해 세계적인 홈런왕이 됐다.
채태인(삼성)은 부산상고 시절 에이스로 활약하다 2001년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했다. 그러나 어깨 수술을 받고서 2007년 삼성 복귀한 뒤 타자가 됐다. 채태인(삼성)은 “투수 출신 타자 가운데 홈런왕이 많은 건 당연하다”고 했다.
“우선 투수와 타자의 메커니즘이 비슷하다. 투수와 타자의 기본은 내딛는 발을 축으로 엉덩이를 강력하게 회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어깨만 쓰면 힘을 충분히 전달할 수 없다. 순간적인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투수는 천천히 투구동작을 취하다가도 릴리스 포인트에서 빠른 팔 스윙으로 임팩트 있게 투구해야만 좋은 공을 던질 수 있다. 타자 역시 부드럽게 타격동작을 취하다가도 배트에 공을 맞힐 때는 순간적으로 힘을 모아 빠른 스윙으로 임팩트 있게 쳐야 홈런을 생산할 수 있다.”
미국스포츠의학연구소와 미국야구재단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투구 스피드와 배트 스피드는 거의 일치한다. 그러니까 시속 145㎞ 이상의 강속구를 던진 경험이 있는 투수가 타자로 전향하면 시속 145㎞ 이상의 배트 스피드를 기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같은 연구결과에 따라 미국 야구계는 유소년 투수가 팔 부상을 당했을 시 타자로의 전향을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있다. 재미난 건 강속구 투수 출신의 유소년 선수 대부분이 교타자보다 강타자로 성장한다고.
홈런 타자는 거구?
193㎝, 135㎏. 체격 조건만 보면 씨름선수 같다. 그러나 아니다. 이대호의 키와 몸무게다. 흔히 ‘홈런왕’ 하면 이대호처럼 거구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장종훈(한화 타격코치), 심정수(전 삼성), 김태균은 거구 축에 끼는 선수들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거구=홈런왕’ 공식은 얼마나 유효할까?
1982년부터 지난해까지 역대 홈런왕 14명의 체격 조건을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야구연감과 각 구단 자료를 토대로 분석했다. 분석 결과 홈런왕들의 평균 신장은 181.3㎝였다. 175㎝의 이만수가 최단신, 193㎝의 이대호가 최장신 홈런왕이었다. 14명의 홈런왕 가운데 180㎝의 이하는 5명, 190㎝ 이상은 1명뿐이었다.
역대 홈런왕의 평균 체중은 88.7㎏이었다. 이만수가 78㎏으로 최경량, 135㎏의 이대호가 최중량이었다. 장종훈, 이대호, 심정수, 김태균을 제외하면 역대 홈런왕의 체중은 불과 80~85㎏ 사이였다. 키 181.3㎝, 몸무게 88.7㎏이라면 기대했던 홈런왕의 체구와는 거리가 멀다.
1983, 1984년 홈런왕이었던 이만수 SK 수석코치는 “홈런과 체구는 큰 상관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수석코치는 “현역시절 80㎏을 넘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도 개인통산 252홈런을 기록한 것은 힘보다 기술을 중시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이만수가 말하는 ‘홈런의 기술’
‘삼박자’ 맞아야 펑펑
이만수 SK 수석코치는 홈런 기술을 세 가지로 꼽았다. 첫째는 빠른 배트 스피드와 정확한 ‘스위트 스폿(Sweet Spot)’ 공략이다.
마운드에서 타석 사이의 거리는 18.44m다. 투수가 시속 150㎞로 던졌을 때 타자 앞까지 공이 오는 시간은 불과 0.44초. 타자가 홈런을 치려면 0.2초의 빠른 판단력과 시속 140㎞ 이상의 배트 스피드로, 배트 위쪽 끝에서 약 17.13㎝ 지점인 ‘스위트 스폿(Sweet Spot)’에 공을 맞혀야 한다. 그래야 타구를 멀리 보낼 수 있다.
둘째는 배팅 포인트가 앞에서 형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공을 끝까지 봐야 안타를 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홈런은 다르다. 일반적으로 홈플레이트 앞 30~60㎝ 사이에서 타격이 이뤄져야 홈런이 나온다. 그래야 배트의 가속력이 공에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셋째는 자신 있게 풀스윙을 해야 하며, 폴로 스루(뒷 매무새)가 완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간 야구계를 지배했던 속설 가운데 ‘안타의 연장이 홈런이다’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홈런 타자는 홈런과 안타는 별개라고 주장한다. 이 수석코치는 “스윙궤도가 짧으면 아무리 ‘스위트 스폿’에 맞아도 장타가 되기 어렵다. 자신 있게 풀스윙을 해야 타구 비거리가 늘어난다”며 “폴로 스루가 길어야 타격 후 힘의 분산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수석코치는 세 가지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타자로 이대호를 꼽았다. 시대가 변해도 홈런 타자의 조건은 변함이 없는 모양이다.
‘삼박자’ 맞아야 펑펑
이만수 SK 수석코치는 홈런 기술을 세 가지로 꼽았다. 첫째는 빠른 배트 스피드와 정확한 ‘스위트 스폿(Sweet Spot)’ 공략이다.
마운드에서 타석 사이의 거리는 18.44m다. 투수가 시속 150㎞로 던졌을 때 타자 앞까지 공이 오는 시간은 불과 0.44초. 타자가 홈런을 치려면 0.2초의 빠른 판단력과 시속 140㎞ 이상의 배트 스피드로, 배트 위쪽 끝에서 약 17.13㎝ 지점인 ‘스위트 스폿(Sweet Spot)’에 공을 맞혀야 한다. 그래야 타구를 멀리 보낼 수 있다.
둘째는 배팅 포인트가 앞에서 형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공을 끝까지 봐야 안타를 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홈런은 다르다. 일반적으로 홈플레이트 앞 30~60㎝ 사이에서 타격이 이뤄져야 홈런이 나온다. 그래야 배트의 가속력이 공에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셋째는 자신 있게 풀스윙을 해야 하며, 폴로 스루(뒷 매무새)가 완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간 야구계를 지배했던 속설 가운데 ‘안타의 연장이 홈런이다’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홈런 타자는 홈런과 안타는 별개라고 주장한다. 이 수석코치는 “스윙궤도가 짧으면 아무리 ‘스위트 스폿’에 맞아도 장타가 되기 어렵다. 자신 있게 풀스윙을 해야 타구 비거리가 늘어난다”며 “폴로 스루가 길어야 타격 후 힘의 분산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수석코치는 세 가지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타자로 이대호를 꼽았다. 시대가 변해도 홈런 타자의 조건은 변함이 없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