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한 문자, 속옷 사진 보낸 사실도 인정…피해자 측 “조금이나마 위안”
법원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으로 인한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인정하는 판단을 처음으로 내놨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2020년 6월 장기미집행 도시공원 관련해 기자설명회를 하는 모습으로 본 기사와 무관함. 사진=서울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조성필 부장판사)는 14일 준강간치상 혐의로 기소된 전직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 A 씨에게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이 사건 피해자는 박 전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와 동일 인물이다.
A 씨는 서울시장 비서실에서 근무하던 지난해 4월 동료 직원들과 술자리를 가진 뒤 여성 직원을 모텔로 데려가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 씨는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겪었다는 6개월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자신이 아닌 박 전 시장의 성추행에 따른 상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를 강간했다는 객관적 증거가 없다는 취지로 주장하나 성범죄 사건은 본인이 스스로 촬영·녹음을 하지 않는 이상 객관적 증거가 있을 수 없다”며 “피고인과 피해자의 기존 관계 등을 비춰보면 피해자가 경험하지 않은 사실을 꾸며냈다고 보기 어렵고 피해자 진술이 신빙하기 어렵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 이전에 발생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으로부터의 성추행 피해 등으로 이 사건 외상 후 스트레스(PTSD)가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며 “여러 차례의 피해자 진술에 비춰보면 피해자가 박 전 시장의 성추행으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입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피해자가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이 사건 범행”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의 해당 발언은 근본적 원인은 A 씨의 범행이라는 의미지만, 박 전 시장의 성추행을 사실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박 전 시장은 지난해 7월 피해자로부터 강제추행 등 혐의로 고소됐으나 이튿날 실종된 뒤 북악산 인근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경찰은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5개월여 동안 조사했지만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서울시 관계자들의 성추행 의혹 방조 사건에 대해서도 무혐의로 판단했다.
피해자 측 김재련 변호사는 “피해자가 박 전 시장을 고소했지만 피고소인의 사망으로 법적 호소의 기회를 잃었다”며 “피해자가 입은 피해에 대해 재판부가 일정 부분 판단을 해주셔서 피해자에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