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윤 의원 잔디구장서 본회의 하면 갈등 싹~?
▲ 정갑윤 윤리특별위원장이 지난 9일 여의도 국회운동장에서 가진 국회의원축구팀과 실버양지축구팀의 친선 경기에서 열정적인 경기를 펼치고 있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국회에서 손꼽히는 축구 마니아, 남경필 의원(현 국회의원 축구연맹 회장). 그의 스케줄 표엔 박지성 박주영 등 해외파 선수들의 경기 일정이 빠짐없이 적혀있다. 경기 승패를 아는 건 기본, 꼭두새벽에 일어나 경기가 끝나는 마지막 1초까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특히 지난 3월 박지성이 리버풀을 상대로 역전 헤딩골을 넣는 순간 가슴이 터질 뻔했다고. 의정활동에 지장이 없느냔 기자의 질문에 남 의원은 “피곤을 모르고 축구장을 휘젓고 다닌다. 그런 날 보고 의원들이 박지성 선수의 ‘두 개의 심장’을 본 따 ‘두 개의 간’이란 별명을 붙여줬다”며 너털웃음을 보인다. 실제로 남 의원은 2년 전 박지성 아버지로부터 중매 부탁을 받은 바 있다. “이상형을 물으니 ‘부모님 잘 모시고 착한 여자면 된다’고 답하더라. ‘역시 박지성’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못하겠단다. 괜히 소개시켜줬다가 경기력 떨어지면 큰일이라며 고개를 내젓는다.
축구는 보는 것만큼이나 하는 것도 좋아한다. 16대 의원 시절 일본 국회와의 친선 축구 경기에 나선 남 의원은 세계적인 축구 스타 출신 가마모토 쿠니시케 의원의 발을 꽁꽁 묶었다. “김민석 의원과 둘이서 밀착마크하고 반칙도 많이 했다. 벌떼 방어 전술을 구사하기 위해 두 달을 준비했다. 가마모토 의원이 생각처럼 잘 안됐는지 짜증을 내더라.”
인터뷰 말미에 재미난 질문을 하나 던졌다. 인재영입위원장인 남 의원에게 한국 축구에 영입하고픈 인재를 꼽아달라는. 남 의원은 망설임 없이 두 선수를 꼽는다. “호날두처럼 파괴력 있는 선수와 비디치 같은 철벽 수비수를 영입한다면 한국 축구가 더 재미있어지지 않을까요?”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은 국회 내에서 축구 실력자로 통한다. 초등학교 때 축구 선수를 꿈꿨다는 조 의원은 “잘한다고 하기엔 부끄러운 실력이다. 그냥 좋아하는 정도”라며 자세를 낮춘다. 그의 트레이드마크는 머리띠다. 축구 경기가 있을 때면 이마에 빨간 천을 돌돌 말아 만든 머리띠를 묶고 나타난다. 땀이 많은 체질이라 흡수를 위해 하게 된다고. 조 의원은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상대 수비수를 진땀나게 만든다. 지난 9일 열린 실버축구팀(60년대 국가대표 선수단)과의 경기에선 강력한 중거리 슛을 세 차례나 쏘아 올리며 화려한 실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축구는 물론 등산 마라톤까지 섭렵했다. 바쁠 땐 밤중에라도 시간을 내어 한강 둔치를 9㎞씩 걷곤 한다.
그러나 조 의원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는 역시 축구다. “축구는 공만 있으면 어디서든, 누구든 할 수 있는 서민 스포츠다. 복잡한 장비를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다. 또한 축구는 모든 선수가 하나 되어 함께 뛰는 스포츠라는 점에 매력이 있다.”
정치를 축구에 비유해보자. 그는 진보신당 내에서 어떤 포지션을 감당하고 있을까.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진보신당의 미드필더(MF)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싶다. 경기의 흐름을 원활히 조절하며 팀의 장점을 잘 살려내는 유능한 미드필더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 사진 왼쪽부터 조승수 남경필 황영철 의원. |
정 의원은 “그라운드야말로 화합과 소통의 장”이라며 자신이 축구에 푹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탄핵 미디어법 사학법 등 굵직굵직한 사안들이 터졌을 땐 여·야간 갈등이 말도 못했다. 본회의장 안에선 서로 다신 안 볼 것처럼 하던 의원들도 축구장에선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공을 주고받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본회의가 잔디구장에서 열리면 국회에 갈등이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2010 월드컵 땐 남아공으로 직접 날아가 태극전사들을 응원하고 왔다. 이윤성 한선교 강기정 의원 등과 함께였다. 정 의원은 아르헨티나전을 가장 아쉬웠던 경기로 꼽았다. 이과인의 두 번째 골은 그가 보기에도 분명히 오프사이드였다는 것. 공정치 못한 심판의 판정에 화도 났지만 원정 첫 16강 진출을 이룬 태극전사들 덕분에 기쁜 맘으로 돌아올 수 있었단다.
그렇다면 국회의원들 중 최고의 스트라이커는 누굴까. 기자가 만난 의원들 대부분이 황영철 의원을 꼽았다. 국회 내에선 ‘황명보’로 불린다고. 알아보니 황 의원은 중학교에 진학하기 전까지 축구선수로 활약했다고 한다. 가장 좋아하는 선수 역시 홍명보라고. 그는 “2002년 월드컵 스페인전 승부차기에서 골을 넣고 환하게 미소 짓던 홍명보 선수 얼굴을 잊을 수 없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한때 축구 선수의 꿈을 품고 그라운드를 누비던 황 의원에게 월드컵은 행복한 축제였다. 고2 때 월드컵 경기 보느라 성적이 엄청 떨어진 적도 있다고. 그래도 마냥 축구가 좋기만 했단다. 황 의원에게 ‘그라운드에 나선 축구 선수들에게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축구를 정치에 빗댄 묵직한 답변이 들려왔다. “선수들은 관중에게 신뢰와 재미를 선사해야 한다. 정치 역시 ‘국민들로부터 박수받는 국회’를 목표로 의원 모두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
▲ 지난 2003년 코엘류 전 국가대표 감독과 친선게임에서 정몽준 의원. |
공격-수비 다하는 멀티 플레이어
“축구에 대한 관심, 열정만큼은 100점을 주고 싶다.” 한국 축구의 든든한 버팀목, 정몽준 의원. 본인 축구 실력에 점수를 매겨보란 질문에 “동네 축구 수준이라 점수를 매기기도 뭐하다”며 손사래를 친다. 대신 “축구협회 회장으로 있을 땐 골을 많이 넣었다. 나에게 패스를 많이 해주더라”는 재치 만점 답변을 내놓는다. 지난 16년 동안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 대한축구협회(KFA) 회장, 동아시아축구연맹 명예회장직 등을 맡으며 숨 돌릴 틈 없이 달려온 그다. 축구공과 함께 그라운드에 들어설 때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라고. 학창시절 축구는 물론 농구 야구 등 종목을 불문하고 운동이라면 뭐든 좋았단다. 덕분에 다리와 어깨 등에 심한 골절상만 무려 5번을 입었다. 정 의원은 ‘공정한 사회’의 올바른 정립이 스포츠에도 필요하단 입장이다. “공정한 사회가 토론한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닌 것처럼 페어플레이 역시 교실 안에선 가르칠 수 없는 것이다. 그라운드 위에서 배우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 속한 체육행정이 교육과학기술부로 이관된다면 더욱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지지 않을까.”
정치를 축구에 비유했을 때 정 의원은 당 내에서 어떤 포지션을 맡고 있느냔 질문을 던졌다. 한국 축구의 대부다운 의미심장한 답변이 돌아왔다. “세계 축구의 흐름이 ‘토털 사커’로 가고 있다. ‘전원 공격, 전원 수비’, 즉 포지션의 파괴가 필요하다. 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포지션을 맡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모든 의원이 공격과 수비를 다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그라운드 위 여전사 조배숙 의원
전당대회선 공격형 미드필더로
2006년 한·일 국회의원 친선 축구대회에선 인기상을 받기도 했다. 당시 조 의원은 부상 투혼을 발휘하며 마지막 일초까지 투지를 불살랐다. 그는 “홍일점에게 주어진 상이긴 했지만 축구 경기에선 처음 받아보는 트로피라 굉장히 기뻤다”며 그때의 감격을 떠올렸다. 세계 3위라는 대업을 달성한 U-20여자 대표팀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단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기적을 빚어낸 선수들의 열정에 눈물이 났다고. 조 의원은 “여자 축구 인프라 확보와 지원을 위해 힘써야겠다고 다짐했다”며 주먹을 불끈 쥔다.
그는 현재 자신의 당 내 위치를 수비형 미드필더에 비유한다. “민주당 3선 중진의원으로서 팀의 공격과 수비를 조율하는 허리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전당대회를 계기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거듭나고 싶다. 민주당이 국민들과 소통하고 하나가 되기 위해선 변화와 개혁이 절실하다. 이번 전당대회를 시발점으로 온 국민이 환호하고 감동할 수 있는 경기를 보여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홍재형 국회부의장의 야구사랑
9회말 투아웃서도 역전 짜릿
-다른 스포츠에선 볼 수 없는 야구만이 가진 매력은 무얼까.
▲야구는 참 공평한 스포츠다. 각 팀에 공격과 수비 기회가 동일하게 주어진다. 이 점이 축구나 농구와는 다르다. 그러면서도 9회말 투아웃 상황에서 역전하는 짜릿한 승부가 펼쳐지기도 한다. 공평함 속에 감춰진 의외성이야말로 야구의 참 매력이 아닐까.
-오랜 기간 청주의 일꾼으로 일해왔다. 한화 이글스 팬일 것 같은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를 꼽아본다면?
▲한화가 우승했던 99년도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당시 한화는 정규리그 4위 성적으로 한국시리즈를 제패했다. 3승 1패로 1승만 더 거두면 우승하는 상황에서 손에 땀을 쥐는 경기를 연출했다. 9회 초 2 대 3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로마이어와 장종훈의 역전타로 우승했던 그 감격을 잊을 수가 없다.
-KBO 총재 시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소개해 달라.
▲외국인 선수기용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당시 서울과 지방 팀 사이 실력 차가 심각했다. 선수층을 균등하게 맞추고 한국 프로야구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외국인 선수를 영입토록 했다. 처음엔 구단의 반대가 심했지만 설득을 거듭해 야구 발전을 위해 서로가 윈윈(win-win)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 한 가지, 경기위원제도를 도입했다. 판정 오해를 불식시키고 경기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도입했다. 경기 시간이 계속 길어지자 방송사에서 중계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일었기 때문이다.
-아쉬움이 남는 부분은 없나.
▲내가 총재로 있을 때 월드컵 여파로 프로야구 관중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관중을 중심으로 한 흥행 마케팅에 주력하지 못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정치를 야구에 비유해보자. 본인은 당 내 어떤 포지션을 담당하고 있고, 또 앞으로 어떤 역할을 맡고 싶나.
▲감독은 국민이다. 의원들은 선수로서 감독의 지시에 잘 따라야 한다. 난 나이도 있고, 중진의원이기 때문에 포수로서 민주당의 ‘엄마’ 역할을 잘해내고 싶다.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에 비해 야구 역사가 짧다. 민주주의 정치도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고 더 나아가 존경을 받는 국회가 되도록 차근차근 노력해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