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사회인야구장 한국에 짓는 게 꿈”
▲ 홍순국 메이저리그 사진전문기자 |
프로그레시브필드를 찾은 클리블랜드 팬들의 대부분은 ‘추신수’와 ‘사이즈모어’의 백넘버가 새겨져 있는 유니폼을 입었다. 야구용품을 파는 용품점에는 등번호 ‘17’ CHOO의 유니폼이 쉽게 눈에 띄었다. 경기장 주변을 돌아보면 추신수가 팀의 간판스타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얼굴이 담긴 포스터나 광고 간판, 깃발 등이 여기저기 선을 보인다. 모두가 클리블랜드에서 한국인 메이저리거 추신수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는 장면들이었다. 그러나 추신수는 팬들에게 사랑을 받은 만큼 성적으로 보답해야 하는데 요즘 실상이 그렇지 못해 답답하다고 말한다.
―올 시즌 자신의 플레이에 대해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 정도가 나올까.
▲60점도 후하게 주는 것이다. 클리블랜드의 선수들이 많이 바뀌고 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부분이다. 오늘 상대팀으로 만났던 조 마우어 같은 선수가 우리 팀에 있었다면? 푸홀스 선수랑 같이 뛰었다면? 하는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그들과 같은 팀에서 뛰었다면 성적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들과 다른 건 똑같이 집중 견제를 받아도 그들은 자신의 플레이를 하지만 난 의욕을 앞세운 나머지 안 좋은 공에 방망이가 나간다는 사실이다. 야구하며 항상 가슴 속에 새긴 목표가 ‘작년보다 나은 올해, 올해보다 나은 내년’이었는데 올 시즌은 그냥 그 자리에 머문 것 같아 굉장히 속상하다.
―자신의 야구가 나아지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문 것 같은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가.
▲손가락 부상으로 20일을 쉰 부분이 보이지 않는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건 핑계일 뿐이다. 내 커리어나 나이를 고려했을 때 다른 팀이라면 이제 막 메이저리그를 알게 된 신참에서 중참으로 넘어가는 선수다. 그러나 클리블랜드에서는 내가 고참급에 속한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위에 선배들이 없다보니 긴장감도 적어지고 야구를 하는 태도가 느슨해진 면도 있다. 어제 더그아웃에서 내 분에 못 이겨 쓰레기통을 내리친 일도, 만약 선배가 있었다면 그런 행동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년 시즌에는 이 부분을 잘 극복해 나가야 할 것 같다.
▲ 리터칭=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뉴욕 메츠의 카를로스 벨트란 같은 선수가 부럽다. 타자라면 치고 뛰고 잡고 던지는 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각 부분에서 모두 최고로 꼽히는 타자는 흔치 않다. 좋은 선수는 오늘 안타를 못 쳐도 팀에 도루나 멋진 수비로 도움이 되는 선수다.
―요즘 자신이 평가하는 추신수의 야구를 얘기한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메이저리그에서는 직구를 놓치면 안 된다. 90~91마일 나오는 공을 놓친다면 정말 돈 받고 야구하는 게 미안해질 정도다. 요즘 난 타석에 들어서서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많은 걸 보여주려다보니 안 해야 할 실수를 연발한다. 자꾸 야구가 어려워지기만 한다.
―상대하기 까다로운 투수가 있나.
▲지금은 ‘전부 다’ 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한국에선 이대호, 류현진 선수의 진로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특히 내년 시즌 이후 FA가 되는 이대호 선수가 메이저리그 또는 일본으로 진출하는 데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이대호와 연락해 본 적이 있나.
▲대호랑 지난주에 통화했었다. 대호한테 FA되면 미국으로 와서 같이 야구하자고 했더니 대호가 이런 말을 하더라. ‘친구야, 네 말도 고마운데 내가 한두 살 먹은 나이가 아니다보니 내가 몸 담고 있던 무대를 떠난다는 게 쉽지 않다. 나한테는 가족들도 있기 때문에 더더욱 어렵다.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무대이지만 대우받고 야구할 수 있는 한국이 더 좋다’라고 얘기했다. 정말 백퍼센트 공감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아직도 한국 야구를 제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친구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홈런을 잘 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물어봐도 실실 웃기만 하고 잘 가르쳐 주지 않는다.
―이 질문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다. 얼마 전 광저우아시안게임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포함됐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어떤 생각이 먼저 떠올랐나.
▲메이저리그 기자들이 이런 질문을 하더라. ‘아시안게임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뛸 것이냐’고. 그분들한테 이렇게 대답했다. 난 병역도 중요하지만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어떻게 생각하면 같은 대답인 것 같지만 출발선이 다르다. 지난 번 WBC대회를 통해서 느낀 점은 국제무대에서 한국 야구가 강하다는 걸 보여줬을 때의 희열이 엄청나다는 사실이었다. 그건 우승밖에 없다. 그렇다면 개인적인 문제도 자연스럽게 진행되지 않겠나. 많은 사람들은 내 진로에 대해 확실한 입장을 알고 싶어 하는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는 이게 전부다. 재미있는 건 미국 야구팬들도 사인 요청을 하면서 군대 문제가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다는 점이다.
추신수는 82년 개띠생들이 야구를 잘한다면서 현재 프로야구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 이름을 나열했다. 김태균, 이대호, 정근우, 채태인, 조영훈….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82년생들이 어떤 활약을 펼치는지 지켜봐달라는 당부도 곁들인다.
―좀 가벼운 질문을 해보겠다. 만약 클리블랜드를 떠나게 된다면 어느 팀에서 뛰어보고 싶은가.
▲LA 에인절스나 시카고 컵스가 매력적으로 보인다. 솔직히 돈보다 앞으로는 이기는 팀에서 뛰고 싶다. 이기는 팀에 있다보면 성적도 달라진다. 한 시즌 동안 162경기를 치르다보면 잘할 때도, 못할 때도 있다. 그러나 4타수 무안타를 치느냐 4타수 무안타 1타점을 치느냐는 큰 차이다. 항상 안타만 쳐서 타점을 올릴 수는 없다. 땅볼을 쳐서, 플라이볼을 쳐서도 타점을 올릴 수 있는 게 야구인데 지금 클리블랜드에선 안타 아니면 타점 올리기가 쉽지 않다. 어떤 선수가 이런 말로 날 위로하더라. 클리블랜드에서 70타점이면 다른 팀에선 100타점이라고.
―야구 그만두면 야구와는 관련 없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고 들었다. 사실인가.
▲지금까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야구하는 동안에는 가족들한테 나쁜 남편, 나쁜 아빠가 될 수밖에 없다. 은퇴 후까지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후회없이 선수 생활을 마친 뒤에는 가족들을 위해 남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야구선수로서 성공하는 것 외에 꿈이 있다면?
▲이 질문을 꼭 해주길 바랐다(웃음). 나한테는 정말 큰 꿈이 있다. 한국에 사회인야구팀이 많은데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운동장이 거의 없다고 들었다. 한국의 외곽 쪽에 넓은 땅을 구입해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장처럼 6~7개의 야구장을 짓고 웨이트트레이닝장, 샤워실 등을 구비한 사회인 야구장을 세우는 것이다. 거기에서 생기는 수익금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기금으로 모을 계획이다. 어렵게 살아봤고, 돈의 중요성도 절감하고 있다. 아직까진 단지 ‘꿈’에 불과하지만 내가 야구를 열심히 해나간다면 굳이 못 이룰 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팬이 ‘왜 일찍 결혼했느냐’라고 물었다.
▲일찍 결혼했기 때문에 지금의 추신수가 있다고 믿는다. 연기자 최민수 씨가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얼굴 보고 5초 만에 결혼을 결심했다고 들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외모부터 모든 게 다른 여자랑 달랐다. 아내 같은 여자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좀 심한 거 아닌가. 손발이 오글거리려고 한다.
▲난 지금도 아이들보다는 아내가 훨씬 더 많이 보고 싶다
추신수의 가족들은 애리조나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시즌 중에는 떨어져 지내는 시간들이 많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애리조나 생활을 정리하고 클리블랜드로 돌아와 함께 생활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 이유를 묻자, “원미(아내)가 너무 보고 싶어서 야구하기가 힘들다”라는 대답을 내놓는다. 내년 시즌 고액 연봉을 받게 되면 아내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주고 싶다는 추신수. 클리블랜드와 장기계약을 할 경우 홈구장에서 정식 결혼식을 올리겠다는 ‘초절정 애처가’ 멘트에 기자도 두 손 들었다.
―마지막으로, 추신수한테 롯데 자이언츠란?
▲야구선수의 꿈을 키워준 팀.
미국에서 생활한 지 10년이 넘어가는 추신수한테 명절은 없었다. 특히 추석은 10년 동안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명절에 대한 감흥이 크지 않지만 어린시절 추석을 앞두고 온가족이 모여앉아 송편을 빚고 전을 부치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가는 분위기는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인터뷰 말미에 추신수가 <일요신문> 독자들을 위해 추석 인사를 전했다.
‘풍성한 한가위 보내시고,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그리고 전 10월 초 귀국합니다. 좋은 모습으로 인사드릴 수 있도록 마지막 경기까지 열심히 뛰겠습니다.’
클리블랜드=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
팬들은 나의 힘!
추신수가 말하는 팬클럽 ‘레일로더스’
추신수와의 인터뷰 질문을 모아준 팬카페 ‘레일로더스’는 이번 시즌을 마치고 귀국하는 추신수를 위해 대대적인 팬미팅 행사를 계획 중이다. 추신수 또한 아무리 바빠도 팬미팅은 꼭 하겠다고 밝혔다. 형식적인 팬미팅이 아니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얘기를 나누고 맥주도 한잔하면서 서로의 애정을 돈독히 하고 싶다고 말한다.
추신수는 지난 손가락 부상 때 ‘레일로더스’ 회원들의 엄청난 응원과 격려의 글에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어느 분이 내가 부상당했다고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는 글을 올려놓은 걸 보고 가슴이 아팠다. 나란 사람을 보고 모임도 갖고 야구도 즐기고 메이저리그를 시청하면서 희로애락을 나누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행복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얼마만큼 사람을 좋아하면 이 정도의 애정이 생길까 싶기도 하다. 난 가족들 말고 그 정도로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이 없어서 사실 그 감정을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그들의 응원이 나한테 엄청난 에너지를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추신수는 가장 기억에 남는 닉네임으로 ‘달콤한 걸’을 꼽았다. 부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그 팬이 공들여 만든 음악과 글, 사진들을 보고 감동을 맛보았던 것.
“여성 분일 거라고 믿는다(웃음). 그래서 더 관심이 많은 건 아닌데 그걸 만든 정성이 엄청났고 그 정성을 생각해서 더 열심히 재활을 한 부분도 있다. 이번에 귀국하면 많은 팬들을 만나보고 싶다.”
‘레일로더스’는 단순히 추신수를 후원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역소외계층 아이들을 돌보거나 독거노인들을 위해 ‘연탄은행’을 운영하는 등 봉사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추신수가 말하는 팬클럽 ‘레일로더스’
추신수와의 인터뷰 질문을 모아준 팬카페 ‘레일로더스’는 이번 시즌을 마치고 귀국하는 추신수를 위해 대대적인 팬미팅 행사를 계획 중이다. 추신수 또한 아무리 바빠도 팬미팅은 꼭 하겠다고 밝혔다. 형식적인 팬미팅이 아니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얘기를 나누고 맥주도 한잔하면서 서로의 애정을 돈독히 하고 싶다고 말한다.
▲ 추신수와 아내가 팬들의 응원글을 펼쳐 보이고 있다. |
“어느 분이 내가 부상당했다고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는 글을 올려놓은 걸 보고 가슴이 아팠다. 나란 사람을 보고 모임도 갖고 야구도 즐기고 메이저리그를 시청하면서 희로애락을 나누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행복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얼마만큼 사람을 좋아하면 이 정도의 애정이 생길까 싶기도 하다. 난 가족들 말고 그 정도로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이 없어서 사실 그 감정을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그들의 응원이 나한테 엄청난 에너지를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추신수는 가장 기억에 남는 닉네임으로 ‘달콤한 걸’을 꼽았다. 부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그 팬이 공들여 만든 음악과 글, 사진들을 보고 감동을 맛보았던 것.
“여성 분일 거라고 믿는다(웃음). 그래서 더 관심이 많은 건 아닌데 그걸 만든 정성이 엄청났고 그 정성을 생각해서 더 열심히 재활을 한 부분도 있다. 이번에 귀국하면 많은 팬들을 만나보고 싶다.”
‘레일로더스’는 단순히 추신수를 후원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역소외계층 아이들을 돌보거나 독거노인들을 위해 ‘연탄은행’을 운영하는 등 봉사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